나의 노래, 나의 편지

(詩) 장마/진종일 한 달 열흘 나의 비를 기다린다 중병환자다

청솔고개 2020. 7. 15. 21:34

장마

        청솔고개

 

언젠가 아득한

어릴 때부터 나는

갈증에 시달렸다

병증의 이름은 나도

모른다 그냥 한없는 갈증이다

장마철 하늘을 뒤덮는 소나기를

맞으며 나는 나의 병을

치유하는 법을 배웠다 갈증을

풀었었다 진종일 한 달 열흘

나의 비를 기다린다 중병환자다

시인의 파초다 장마는

나의 집중 치료기간

지루하지 않은 것

한없이 기다려지는 것

흥건히 젖어드는 지붕

헤뭉개질 듯한

베리빡 흙담을 휘감아

돌아드는 호박잎의 질긴

생명의 힘이 비를 맞아

후두둑후두둑 진한 생명의

소리 모락모락 피어나는

생명의 기운 펄펄 날리는

먼지를 잠재운 마당의

물길은 내 작은

호수

미꾸라지도

용트림하고 송사리도

목감는다 허연 배때기를 뒤집는

송어의 자맥질

댓바람소리

댓바람에 비 뿌리는

소리에는 내 유년의

꿈이 영글고 천년의

비바람에 살찌운다

낮잠 겨운 한여름 오후

문득 서늘히 불어드는

 

하늘 바람에 혼곤하게

잠깨면 대청에서 내다보이는

번들거리는 감잎을

두드리는 소리 유난히

부드러운 대추 잎의

젖어 듦

물방아

건너 자목련 숲 속

불일암 가는 길 뽕 숲 밭

그늘 비안개는 피어오르는데

세찬 빗줄기에 온 몸이

젖어 뭉개 진 한 삿갓과

파라솔 밑으로 새어나오는

흐느낌과 탄식

산 꿩이

서럽게 목청을 돋우는데

빗줄기 사이로 탈고 안 된

전설 같은 이야기

그런

생명의 기운 한없는

부드러운 매만짐 내 갈증의

심장을 훑어가는 끓어오르는

내 안의 열불을

식히는

세찬 기운 줄기

[위의 시는 2002. 7. 14.에 쓴 것임.]

                                                2020. 7.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