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청솔고개
언젠가 아득한
어릴 때부터 나는
갈증에 시달렸다
병증의 이름은 나도
모른다 그냥 한없는 갈증이다
장마철 하늘을 뒤덮는 소나기를
맞으며 나는 나의 병을
치유하는 법을 배웠다 갈증을
풀었었다 진종일 한 달 열흘
나의 비를 기다린다 중병환자다
시인의 파초다 장마는
나의 집중 치료기간
지루하지 않은 것
한없이 기다려지는 것
흥건히 젖어드는 지붕
헤뭉개질 듯한
베리빡 흙담을 휘감아
돌아드는 호박잎의 질긴
생명의 힘이 비를 맞아
후두둑후두둑 진한 생명의
소리 모락모락 피어나는
생명의 기운 펄펄 날리는
먼지를 잠재운 마당의
물길은 내 작은
호수
미꾸라지도
용트림하고 송사리도
목감는다 허연 배때기를 뒤집는
송어의 자맥질
댓바람소리
댓바람에 비 뿌리는
소리에는 내 유년의
꿈이 영글고 천년의
비바람에 살찌운다
낮잠 겨운 한여름 오후
문득 서늘히 불어드는
하늘 바람에 혼곤하게
잠깨면 대청에서 내다보이는
번들거리는 감잎을
두드리는 소리 유난히
부드러운 대추 잎의
젖어 듦
물방아
건너 자목련 숲 속
불일암 가는 길 뽕 숲 밭
그늘 비안개는 피어오르는데
세찬 빗줄기에 온 몸이
젖어 뭉개 진 한 삿갓과
파라솔 밑으로 새어나오는
흐느낌과 탄식
산 꿩이
서럽게 목청을 돋우는데
빗줄기 사이로 탈고 안 된
전설 같은 이야기
그런
생명의 기운 한없는
부드러운 매만짐 내 갈증의
심장을 훑어가는 끓어오르는
내 안의 열불을
식히는
세찬 기운 줄기
[위의 시는 2002. 7. 14.에 쓴 것임.]
2020. 7.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