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래, 나의 편지

(詩) 가을에/식어가는 太陽의 끝 계절에는

청솔고개 2020. 11. 8. 23:11

가을에

 

                                   청솔고개

그때는

열화로 타오르는 작은 가슴을 풀어 헤치고

여읜 몸뚱이를 그 샘물에

서늘히 적시고는

이윽고 잠들 수도 있었는데

 

이제는 깨어나서

어디론지 하염없이

떠나가야 할 계절

한 푼의 여비도 없이 길 가야 하는데

 

나는 脫盡하는 몸매로

주저앉아야 하나

한 점의 빛깔도 어둠으로 뒤덮인

눈먼 어부처럼 그 자리에

식어가는 太陽의 끝 계절에는

축제의 뒤뜰처럼 허허로운

얇은 양광의 무수한 화살이

내 빈 가슴을 헤집고 빠져나가

어디론지 어디론지

사라져 가고 있다

 

내 실존의 작은 무덤에는

덧없는 밤이 이어지고

꿈도 아니고

꿈 아닌 것도 아닌

분노 같은 응어리가

새벽마다 夢精을 한다.

 

가슴에는 빛의 칼을 품고

끊임없이 밀려오는

어둠의 모가지를 단죄하기 위해서

뜨거운 눈물로 시퍼런 날이 서도록 갈아도

심연 속에서 끝없이

풀어 헤치는 길이도 알 수 없는

명주실처럼 소용없다

 

내 실존의 추운 계절에는

칼날 위에 떨어지는

한 방울의 진한 눈물이 있을 뿐이다

[1980. 12. 어느 날]

                                         2020. 1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