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청솔고개
그때는
열화로 타오르는 작은 가슴을 풀어 헤치고
여읜 몸뚱이를 그 샘물에
서늘히 적시고는
이윽고 잠들 수도 있었는데
이제는 깨어나서
어디론지 하염없이
떠나가야 할 계절
한 푼의 여비도 없이 길 가야 하는데
나는 脫盡하는 몸매로
주저앉아야 하나
한 점의 빛깔도 어둠으로 뒤덮인
눈먼 어부처럼 그 자리에
식어가는 太陽의 끝 계절에는
축제의 뒤뜰처럼 허허로운
얇은 양광의 무수한 화살이
내 빈 가슴을 헤집고 빠져나가
어디론지 어디론지
사라져 가고 있다
내 실존의 작은 무덤에는
덧없는 밤이 이어지고
꿈도 아니고
꿈 아닌 것도 아닌
분노 같은 응어리가
새벽마다 夢精을 한다.
가슴에는 빛의 칼을 품고
끊임없이 밀려오는
어둠의 모가지를 단죄하기 위해서
뜨거운 눈물로 시퍼런 날이 서도록 갈아도
심연 속에서 끝없이
풀어 헤치는 길이도 알 수 없는
명주실처럼 소용없다
내 실존의 추운 계절에는
칼날 위에 떨어지는
한 방울의 진한 눈물이 있을 뿐이다
[1980. 12. 어느 날]
2020. 1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