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게
청솔고개
홀로 바람을 잡고 한세상 살아간들 무슨 소용 있나
내가 바람이 될 수 없어, 바람과 더불어 사라질 수 없는데
바람은 언제나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휘돌아가
내 욕망을 갈기처럼 세우나니
나는 다만 찬비 맞아 후줄근히 떨며 퍼덕이며
몸뚱아리 작은 암비둘기 그 깃털로 날고 싶은데
한잔의 독배로 붉은 욕망에 익은 볼을 비빈들 소용 있나
욕망은 언제나 그러하듯 밀물처럼 밀려가는 서러운 눈물
밤마다 새면서 바람처럼 날리는 너의 속삭임으로
시를 잉태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
해산의 고통으로 내 목을 늘어뜨리고 붉은 피를 토할 뿐
이제 설목 사이로 피어나는 붉은 꽃으로 홀로 지내면 될까
나는 네가 될 수 없어서 굳게 얼어붙은 대지의 입술로 홀로 노래 부를 수도 없고
따스한 입김으로 속삭일 수도 없으니
밤마다 온몸으로 욕망을 죽이고
길고 긴 사연을 날리면 행여나 될까
눈을 감고 슬픈 모양으로 마른 웃음을 삼키고 춤추고 노래 부르고 사랑하지만
바람은 대답이 없다
바람은 어디에선가 와서는
새벽마다 비를 들고 뜰에 내려서
이슬에 젖은 잎들을 쓸어 날려 버리곤 한다.
바람은 무시로 힘없이 나락한 생명들의
운명을 노래하고 저주하고 예언할 줄 알지만
어디로 사라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홀로 바람을 잡고 한 세상 살아간들 무엇하랴
내가 참말 바람이 될 수 없어
바람과 더불어 사라질 수 없는데……
정사년 초추 진중에서 (동인지 <띠집 12호>게재된 작품. 1977. 12.13.)
2020.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