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래, 나의 편지

(詩) 가다가/세상 저쪽 길 가다가도 배고픈 까마귀 떼 만나거든

청솔고개 2020. 12. 17. 10:05

가다가

                           청솔고개

 

홀로 됨은 결코 욕되지 않음이니

갈 길이 바빠 발걸음 재촉하여도

닿을 때 없는 이 몸이랴

바람처럼 나를까

들처럼 주저앉으랴

설목 사이로 빤히

불빛 새어나와도

내 눈에 뵈지 않고

언덕 넘어 어디엔가

그대 그대 음성처럼 뜨거운

종소리 들려도 들려도

내겐 들리지 않음에랴

 

가다가 가다가

어디론지 가다가

굶주린 이리 떼 만나면 이리 밥이 되고

이리야 이리야

내 뜨거운 피 한 방울

내 붉은 심장 한 점이라도

솜털처럼 하얀

눈물에나 씻어나 주렴 씻어나 주렴

 

가다가 가다가

어디론지 가다가

설원으로 가없이 난

세상 저쪽 길 가다가도

배고픈 까마귀 떼 만나거든

까막아 까막아

내 눈이나 파먹으렴

맛있는 내 눈이나 파먹으렴

홀로 가는 길이라 결코 약하지 않음이니

내게 위로 받게 할 사람

그 누구와도 동행하지 않음이니

결코 서럽지 않음이니

 

가다가 가다가

절벽을 만나면

절벽이나 되어 버리고

마애관음이나 되어 버리고

가다가 가다가

바람을 만나면

닿을 데 없는 이 몸이랴

바람처럼 나르랴

바람이나 될까나

 

어이하리오 어이하리오

길가다가 밤을 만나면

밤에 흐르는 은하를 만나면

은하나 될꺼나

흐르는 은하나 될꺼나

[1980. 12. 17 새벽]

                        2020. 1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