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風情-行旅病者
청솔고개
순간으로 퇴락해가는 도회에서는
누가 순결하다고
감히 외칠 수 있으랴
너와 나의 가슴은
응고된 바위처럼
콘크리트로 밀폐돼
한 포기 풀의 생생한 호흡마저
죽이고 마는
불모의 사막에서
착오된 막다른 골목에서
허물어지고 있다.
사랑이란 단어와
욕망이란 진리는
이제 무척 고전적이며
그렇듯이 전설적인 듯
어제 밤엔
내 귀청을 맴돌던
그 깊은 심연에서 울어 나오는
海潮音을 잔인하게도
곧장 환청으로 증명되고 마는
건강한 의욕으로
똥개처럼 發情하며
헤일 수도 없는 여성들을
까무라치게 했던
건실한 바람쟁이 왕년의
심병장도
허기 앞에선 그렇게 허물어짐을
확인했다
연두색 머풀러를 날리면서
바람처럼 걷고 있었지
그 천변을
댓바람 소리는 천년을 울고 있는데
세상에서 가장 밝은 광휘가
색색의 머풀러를 뒤집어쓰고
순례하는 모습으로
그 겨울의 정겨을 찬송하는
도회의 아이들을 이끌어 주었지
이 도회에서는
누가 저 진홍빛
실핏줄이 어리는
순례자들의 투명한 뺨보다
더 순결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도회의 끝에서 내 가슴으로 불어드는
댓바람 천년의 솔바람
코끝에 와 닿는 폐허의 냄새가
그리 짙지 않아서 좋은가 보다
끝없는 타락을 획책하고
은밀한 잠자리에서는
홍등처럼 강한
욕망을 갈구하지만
아아 천변에서
이 천년의 천변에서
무시로 지펴대는
그 화사하고 파아란
불기운
그 연기처럼
강렬할 수 있을까?
이 차가운 詩의 계절에는
너와 나의 가슴은
얼어붙은 강심으로
恨이 맺혀 있는데
결코 나에겐
봄은 오려 하지 않는가?
[1980. 12. 30. 강둑에서 남천을 보면서]
2020. 1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