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旅情)

러시아, 북유럽 여행기록 제10일/ 차는 점차 고원 같은 평평한 고지대를 숨 가쁘게 달려 오른다, 그런데 오를수록 옆의 계곡 물살은 더 세어지고 그냥 주변은 대 설원이다

청솔고개 2021. 5. 23. 11:45

러시아, 북유럽 여행기록 제10일,

"폭포의 포효가 천지를 진동하고 물보라가 안개처럼 포말을 이루고 멀리 산 중턱에는 노르웨이 전통의상을 입은 피오르의 요정인 듯 한 무희의 춤과 노래가 폭포수에 파묻힌다.",  "그의 <페르귄트>모음곡 중 제 4곡 ‘솔베이지의 노래’의 선율은 들을 때마다 조금은 쓸쓸함, 늦가을 바람 같은 우수가 어린다."

                                                                               청솔고개

   2016. 5. 23(월)13:03~ 노르웨이 베르겐 브뤼겐거리 식당, 16:31~17:01베르겐~산장 마을 야일로(게일로)호텔가는 길

   드디어 여행 중 두 번째 평일 월요일을 맞는다. 여행 열흘째 날 당장 귀향한대도 크게 바쁠 게 없는 게 은퇴자의 처지 아닌가. 이건 하나의 기쁨이기도 한 것. 아침에 다행히 날이 좀 갠다. 호텔식을 하고 7시쯤 호수의 물안개를 배경으로 여자분들 사진을 남겨주었다. 먼저 플롬 마을행 산악열차 탑승 코스다. 가는 길은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24.5km 라르달 터널을 지난다. 1995년 시작해서 6년에 걸쳐 완성했다고 한다. 이 터널은 자연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암반을 그냥 뚫어 놓은 정도다. 가이드는 이럴 때 노르웨이 플롬, 베르겐 등에 대해서 가볍게 안내를 해준다.

   오전 8시 좀 지나서 뮈르달 역에 도착. 여기는 자연이 줄 수 있는 모든 아름다움, 웅장함, 위대함의 총화다. 바위, 폭포, 계곡, 구름, 그리고 인간들의 탄성이 하나 되어 조화를 이룬다. 2시간은 감동의 시간 그 자체다. 플롬 노선은 야생 그대로인 노르웨이 산악을 달린다. 1940년에 개통한 이 산악철도는 피오르 관광의 하이라이트로 해발 2m에서 해발 866m의 뮈르달까지 약 20km 구간을 50분 동안 달린다. 총 11개 역과 20개의 터널(총 길이 6km)이 있으며, 길이 20km의 선로는 선로 좌우에 펼쳐진 풍경이 매력적이다. 운행 구간에 기차는 230m 높이의 4단 계단으로 이루어진 뮈르달스 폭포가 있는데 직하형 부분이 제일 높은 곳은 100m이다. 기운차게 뻗어 내리는 효스 폭포(Kjos Fossen)를 보기 위해서 해발 670m에 위치한 전망대 5분간 정차했다. 우리 일행들은 내리다 말고 우리 어릴 적에나마 보았을 것 같은 구식 열차 승강구 앞에서 포즈를 취한다. 드디어 폭포의 포효가 천지를 진동하고 물보라가 안개처럼 포말을 이루고 멀리 산 중턱에는 노르웨이 전통의상을 입은 피오르의 요정인 듯 한 무희의 춤과 노래가 폭포수에 파묻힌다. 나는 이 기이하고도 신나는 자연에 도취되어 이리저리 전망 좋은 자리를 옮겨 다니면서 더 많이 좋은 풍광을 내 눈에 넣고 내 가슴에 갈무리한다. 셀 수 없이 많은 폭포줄기, 계곡, 눈을 이고 있는 바위산, 아래 반짝이는 계곡의 맑은 물과 청청한 녹음을 맘껏 호흡했다. 내가 이렇게 자연 자체에 심하게 몰입되는 경우는 일찍이 없었다.

   다음 코스는 노르웨이의 제2 수도 베르겐 가는 길. 날이 좀 맑아져서 그 햇살에 이 북국 봄꽃의 생명력이 더욱 솟구친다. 길가의 노란 민들레 꽃밭. 양떼, 새끼양이 어미젖을 빨고 있는 모습. 새끼양이 어미 옆에 폭 엎드려 누워서 눈감고 잠든 모습은 정말 잊을 수 없다. 햇살이 호면을 비춘다. 어제 운무 자욱했던 피오르 호수와는 또 다른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아! 베르겐. 이곳은 그 옛날 내 20대 청춘시절, 뮤지컬 영화 ‘송 오브 노르웨이(song of Norway)’의 배경. 그 영화의 주인공 모델은 그리그이고 그의 고향이다. 그리그의 청춘시절 사랑과 낭만을 그린 이 영화의 장면이 40년이 더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언제 내가 그 감동적인 음악과 꿈속 같은 아름다운 풍광의 노르웨이를 찾을 수 있을까 했는데, 그의 고향까지 와 버렸다.

   1843년 베르겐에서 태어난 그리그는 1885년부터 1907년 영면할 때까지 유럽 연주여행을 할 때 외에는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작곡활동을 했다. 그의 생가가 베르겐 교외 가까운 곳에 있다 해서 정말 찾고 싶었지만 이 동행에서, 이 조직에서도 매인 몸. 진정한 자유는 내게 아직 한참 멀었나 보다. 그의 <페르귄트>모음곡 중 제 4곡 ‘솔베이지의 노래’의 선율은 들을 때마다 조금은 쓸쓸함, 늦가을 바람 같은 우수가 어린다. 그 배경 스토리. ‘게으름뱅이, 허풍쟁이 페르귄트는 혼약한 여인 솔베이지를 내버려 두고 헛된 환상을 쫓아 방랑의 여행을 떠나 방탕한 생활을 한다. 천신만고 끝에 부자가 된 늙은 페르귄트는 고향이 그리워 배를 타고 돌아오다가 거대한 풍랑을 만난다. 결국 그는 거지꼴이 되어 목숨만 붙어 있는 채 집으로 돌아오는데 백발이 성성한 솔베이지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만신창이 페르귄트는 솔베이지의 품에 안겨 안식을 찾고 그녀가 불러주는 노래를 들으며 죽음을 맞이한다. 당신에 대한 그리움으로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어요.’ 하면서. ‘제3바이올린 소나타’, ‘노르웨이 농민무용’ 등 그리그의 불후의 명곡이 있다. 그의 음악을 통해 난 클래식의 세계를 조금 알 것만 같았고 그 매력에 빠질 수 있었다.

   베르겐은 12~13세기 노르웨이의 수도였었고 하르당에르피오르와 송네피오르 등 많은 피오르로 둘러싸여 있어 피오르의 수도라고 불린다. 북위 60° 22′의 고위도에 위치하나, 멕시코 만류의 영향으로 기후가 온화하여 겨울철에도 평균기온이 영상이며, 지형적인 영향으로 연평균 강수량이 2,000mm 이상으로 유럽에서 가장 비가 많이 오는 곳 중 하나이다. 14세기에 게르만 상인들이 상권을 독점했는데, 이들의 영향력은 18세기까지 지속되었다. 현대에는 주로 어업·조선업과 그에 관련된 선박수리, 장비생산, 기계·금속제품 생산, 식품가공 등을 기반으로 하여 경제발전을 다변화시켰다. 베르겐 도심에서 한자동맹 건물 자취가 남은 아담하고 유서 깊은 어항이 내려다보이는 식당에서 스테이크로 점심 요기를 했다. 25만 인구의 이 도시 규모는 여기서 제법 큰 셈이다. 북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이라고 하는 베르겐 어시장을 둘러보았다. 생선 수프, 훈제 및 절인 연어, 고래 고기, 청어, 사슴고기, 어묵, 조리한 새우도 유명하지만 가이드는 아주 큰 랍스타, 킹클랩이 별미라 한 번 맛보면 잊지 못할 것이라면서 자기도 좀 데려가 달라고 오전에 너스레를 떨었던 게 생각난다. 노르웨이의 전성기, 대항해시대, 1,360년 맺은 한자동맹 사무소가 여기에 설립되면서부터 북해 지역 해상무역의 중심지였다. 브뤼겐에는 그 시절의 목조건물이 보존되어 있다.

   시내 전경을 보기 위해서 한 사람당 30유로를 내야하는 선택 관광지 플뢰엔 산을 케이블카로 올랐다. 그 동안 계속 흐리고 비 오다가 여기서는 맑은 편이었다. 이 도시는 일 년에 270일이나 비가 온다고 하는데 오늘 맑은 날 맞이한 게 운이 좋은 편이다. 피오르 관광과 북극권 크루즈 여행을 떠날 유람선과 요트가 떠 있는 베르겐 항구, 산, 피오르, 바다, 도시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마치 우리나라 목포나 통영, 여수 같은 지형으로 항구도시였지만 주황색 기와가 나지막이 덮인 도시의 색깔은 분명 북유럽이었다. 고색찬연하고 마치 기와조각으로 모자이크해 놓은 도시 같다. 모두 넋을 잃고 너무나 이국적인 풍광에 도취한다. 부두마다 빼곡히 들어서 정박하고 있는 요트 떼들이 이 나라의 풍요로움과 여유를 말해주는 듯하다. 동행한 여행 사진작가 ㅊ님의 친절과 배려가 또 한 번 빛이 난다. 우리 부인들을 동그랗게 모으는 나름대로 연출로 기념비적인 사진 작품을 제공해 주었다.

   이어서 야일로(게일로) 가는 길. 5월 하순 눈길을 달린다. 중간에 터널의 화재사고 수습 때문에 잠시 기다렸다가 가는데 갑자기 내 손가방이 안 보였다. 순간 가슴이 철렁, 정신이 아득했다. 그런데 의자 밑에 손을 넣어보니 내 가방 끈이 손에 잡히는 게 아닌가. 이걸 두고 10년 감수했다고나 할까. 아까 터널 입구에서 잠시 서 있으면서 주변 산세와 풍광, 민들레 꽃밭에 현혹이 되어 결국 이런 해프닝을 연출하게 된다. 다급하게 가이드한테 결국 호소한 뒤라 나중에 가방이 있다고 하자, “절 좀 덜 괴롭히세요!”하면서 웃는 낯으로 말한다. 아내가 연신 옆에 “미안합니다.”고 말하고 나도 고개를 조아렸다. 백번 조아려도 좋다. 가방이 그대로 있으니. 탈린의 아침, 노트북 망가진 데 대한 트라우마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보다. 터널은 최소한의 자연 훼손을 위해 투박하고 실용적으로 건설되어 있다.

   차는 점차 고원 같은 평평한 고지대를 숨 가쁘게 달려 오른다. 그런데 오를수록 옆의 계곡 물살은 더 세어지고 그냥 주변은 대 설원이다. 이 높은 고원지대에 마치 막 폭우가 내린 것처럼 맑은 물이 기세 좋게 쏟아진다. 그 옆으로는 아직 늦겨울이어서 새 움도 트지 못한 떨기나무숲들이 한창 물을 머금고 봄맞이 준비를 하고 있다. 여기도 지붕으로 잔디를 인 오두막집 같은 여름 별장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이건 지나오면서 많이 보았는지 이제는 익숙한 풍광이다. 지붕에 얹은 흙에 풀이 자란다면 그 단열효과는 단연 으뜸. 가장 친환경적인 주거형태이다. 가도 가도 하얀 눈밭이 끝없이 펼쳐지고 이어진다. 아름답고 황홀하다. 한 곳에 차를 세우고 우리는 모두 강아지처럼 좋아하고 당나귀처럼 껑충껑충 뛴다. 일망무제 눈밭, 도대체 동서남북을 분간 못하겠다. “세상에.....!”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는다. 마치 외계를 탐험하는 개척자가 된 심경이었다. 멀리 눈이 쌓여 언덕을 이룬 곳에는 짙은 블루, 그냥 에메랄드다. 길을 돌아 내려오면 크고 작은 호수의 옅고 짙은 블루. 이런 길이 4시간 동안 이어진다.

   저녁 8시쯤 되니 저지대에 자리잡은 마을이 보인다. 산장 마을 야일로(게일로, Geilo)의 숙소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맞은편 야산의 스키장 슬로프에 눈이 허옇게 남아 있다. 지금 가면 스키 탈 수 있으려나. 이 마을은 벽지답게 스키시즌에나 북적이는 곳이어서 무척 한산한 듯하다. 호텔 사이트에는 성수기에는 호텔에서 스키를 타고 바로 가도 된다고 안내돼 있다.

   저녁 8시 15분에 바로 식사. 일행은 이제 피곤에 절은 듯 객실에 들어가면 죽은 듯이 꼼짝하지 않는다. 10시가 지나도록 혼자서 호텔 주변 마을을 서성거려 보았다. 아내는 처음엔 객실 발코니에서 내가 서성이는 모습을 보면서 손도 흔들어 주더니 이젠 피곤이 누적된 듯 객실에서 꼼작하지 않는다. 북유럽에서의 마지막 보내는 밤이니 만큼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을 것 같다. 호텔 앞으로 펼쳐진 너른 초원에 조성된 작은 마을, 마을에 조성된 주택과 리조트형 숙박시설, 그 사이로 아직 움이 채 트지도 않아서 웅크리고 있는 듯한 나무들, 잘 보전되고 있는 크고 작은 목조 건물들. 호텔 뒤 굴다리 통로 위를 지나는 철로를 지켜보았는데 기차 지나가는 건 못 보았다. 철로 옆 초원에는 이제 막 파릇한 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앙증맞은 노란 작은 꽃이 이 밤에도 나를 보고 웃고 있다. 목조로 된 오래되어 윤이라도 날 듯한 이 호텔 건물, 호텔 벽에는 바이킹 족이 사용했다는 창, 칼 같은 무기와 낡은 기록 사진, 그 시대의 풍습을 엿볼 수 있는 소품들이 자연스레 전시되어 있다. 이런 마지막 풍광을 사진으로 많이 기록해 두었다. 백야현상으로 11시인데도 주변이 훤하다.

   오롯이 나 혼자 주변을 서성이면서 여행지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내일은 오슬로로, 다시 고향으로, 현실로 귀환한다는 사실을 곰씹어 본다.[2016. 5. 23. 월. 흐림.]    2021. 5.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