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두이노의 비가(悲歌)', "내가 늘 불안한 마음으로 찾곤 했던 검붉은 대학병원의 담벼락은 긴 장마에 축축이 젖어 있었거나 아니면 한 여름 불볕에 달아 있었다."
청솔고개
나는 곧 평생토록 가지 않은 길을 가보아야 한다. 그 길은 참 낯설다. 생전 처음 접해 보는 수술이다. 척추 수술인데 딱 일 주일 남았다. 내가 이런 낯선 길을 가는 심경에 사로잡혔던 적이 오래 전에도 한번 있었다. 내 20대 초반, 그해여름, 대학병원 벽돌담 옆 벤치에서 검진 결과를 초조히 기다리고 있던 내 모습이 회상된다. 내가 늘 불안한 마음으로 찾곤 했던 검붉은 대학병원의 담벼락은 긴 장마에 축축이 젖어 있었거나 아니면 한 여름 불볕에 달아 있었다. 그때 나는 감방에서 나와 먼 곳 유형지로 이송되는 유형수였다. 때로는 바로 사형 집행에 처해질 중죄인처럼 늘 죽음을 떠올리었다. 몸과 마음이 아주 죽음에 가까이 있었다. 나의 이런 나의 감정을 이입하고 치환할 수 있는 작품을 가까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릴케와 토스토에프스키는 나의 친구였다. 그 둘이 나를 구원했다. 그들의 작품이 주는 영감과 메시지만이 나를 한없이 위로받을 수 있었다. 릴케는 ‘두이노의 비가’로 나의 끝없는 고독과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대신 불러 주었다. 그 슬픈 노래에서 흘러나오는 비탄은 나를 뜨거운 카타르시스의 경지로 이끌어주었다. 릴케의 ‘말테의 수기’는 내 삶과 존재의 한없는 불안을 공감해 주었다. 뇌전증으로 평생 고통에 시달리면서 그 고통을 무한한 상상력으로 승화시킨 토스토에프스키의 생애와 그 작품도 나의 도반이었다. 그해 여름 그 대학병원 담벼락은 내 실존의 장이었다.
지난 해 12월 중순이었다. 척추 수술을 앞두고 한 여러 검사 결과를 보러 병원에서 하루 종일 머물렀다. 도시락으로 사온 점심을 먹으러 병원 가운에 있는 뜰의 벤치에 앉았다. 갑자기 실존의 찬 기운이 내 폐부를 찌르는 것 같았다. 이번엔 한겨울, 50년 전의 한여름에 느낀 나의 그 정신체계가 오롯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결론은 생의 실존과 그 부조리만이 나의 삶의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이었다.
내 몸에 칼을 댄다는 건 일찍이 생각하지도 않았던 일이다. 칼을 대 가면서도 꼭 삶을 이어가야 할 것인가 하는 실존적인 물음이었다. 그 일이 목전에 다가오니 온갖 소회가 떠오른다. 그러면서 내 삶의 원형을 생각해 보았다. 그건 10대 초반부터 20대 말까지 내게 시시각각 밀려드는 미래에 대한 근원적 불안감이다. 가없는 불확실성이다. 나는 평생 내 정신의 끊임없는 순수성을 정제하는 작업을 수행해 왔다. 흙탕물을 가만히 두면 흙은 가라앉고 맑은 물이 위로 떠오르듯이. 어쩌면 나는 그런 비극이 주는 비감함을 즐겼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어디에다 마음의 위안을 위해 마음을 두어야 할까? 20대 말처럼 금강경 주해를 옆에 둘까? 반야심경을 품을까? 몸의 고통이 마음의 순수함을 가져다준단 사실에 나는 중독이 되었었다. 이걸 그 누구보다 일찍 일아 버린 게 내 삶에서 비극이었다. 나의 혼돈의 20대는 끊임없는 순수함 찾아 헤맸었다. 평생 지친 길 나그네는 끊임없이 우물물을 두레박에 길어 올린다. 순수를 길어 올리는 작업이며 탄타로스의 고행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단절되기 전 나는 생의 부조리에다 나의 육체적 정신적 불안을 담은 필생의 작품을 내고 싶다.
다음은 지난해 12월 어느 날 병원에서의 내 자화상 스케치다. 그러면서 이런 자화상이 언제까지라도 이어질까 싶다.
‘많은 사람들이 벌써 나와서 햇볕을 쪼이면서 쉬고 있었다. 빵을 들고 와서 먹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나도 캐리어를 끌고 가서 따스한 햇살이 그대로 비치는 벤치에 앉아서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펼쳐보았다. 귤, 오이, 당근도 같이 들었다. 날이 그런대로 따스했다. 밥을 먹기 시작했는데 옆 벤치에 비둘기 떼가 달려드니 사람들이 귀찮아하면서 쫓아내기 시작했다. 나는 삶은 계란을 먹고 난 뒤 그 부스러기를 던져 주니 처음엔 두 마리가 와서 쫓아 와서 서로 다투면서 쪼아 먹기 시작했다. 너무 오랜만에 비둘기를 상대하다보니 참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네 마리, 여섯 마리, 여덟 마리로 막 늘었다. 얼마나 격하게 먹이를 두고 다투는지 눈물겹다. 이런 걸 알았더라면 뭐 다른 먹이라도 좀 준비해 올 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평화를 노래한다는 비둘기의 다툼에서 잠시 모든 생명과 생존의 건강성을 느껴본다. 식사를 다하고 나니 으슬으슬 추워왔다. 이제 안에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정신없이 향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엉뚱한 낯선 곳이다. 햇볕하나 없는 찬바람이 부는 전혀 다른 곳이다. 고개를 들어 보니 맞은편에 병원 서관이라는 큰 간판이 눈에 띄었다. 나는 지팡이를 곧추 짚고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안간힘을 다해 서관 안으로 향했다. '
나는 지금 내 삶의 길을 똑바로 가고 있는가, 하고 다시 한번 살펴보고 싶다. 2022. 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