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래, 나의 편지

(詩) 너를 위하여/ 한 줌의 영혼밖에 담을 수 없는 너의 몸뚱이라 마침내 한숨 미풍에 날리는 꽃이 되어라, 꽃이 되어라

청솔고개 2023. 1. 2. 00:49

(詩) 너를 위하여                                                         

 

청솔고개 

 

어느 일몰의 시각

슬픔으로 터지려는 내 가슴에

문득 옥빛으로 다가서는 너의 가슴

너의 가슴은 지상의 큰 슬픔과 운명, 고독과 지옥의 고통을 머금고

말없이 내게 다가서는구나, 다가서는구나

 

스스로 요(姚)스런 너의 눈망울은 길고 긴 인고의 분화구

너의 입술, 참새의 입김이 서리고

내 육신, 너의 불길에 태우고

한줌의 재, 너의 입김에 날려 버려라, 날려 버려라

 

겨울바람에 솜처럼 뭉개 버릴까보냐 너의 입술, 너의 입술

갈피 없는 바람으로 스쳐간 너의 육신은

흐르고 구르는 물굽이, 이슬처럼 말라버리고 안개처럼 사라지고

한 줌의 영혼밖에 담을 수 없는 너의 몸뚱이라

마침내 한숨 미풍에 날리는 꽃이 되어라, 꽃이 되어라

 

밤하늘의 별빛은 두 그루 겨울나무에 묻어나고

또한 별처럼 외로워라

외로운 두 겨울나무이어라, 마른 겨울나무이어라

 

거머리 네 입술은 내 슬픔의 눈물에 잠기고

마침내 지울 수 없는 상처, 내 마음의 상흔 두 그루 나무에 새기고

길가에 밟히는 이름 모를 풀이어라, 이름 모를 풀이어라

 

살점은 다 찢어버리고, 찢어서 바람으로 만들어 버리고

영혼만 내게 오너라, 내게 오너라

네 서릿발 같은 입술을 녹여 버리고, 너의 미소만 오너라, 갖고 오너라

네 버들강아지 눈, 가슴은 얼어붙은 땅에 묻어버리고

오로지 마음만 내게 오너라, 내게 오너라

 

우리는 새벽이 오면 시들어버리는 이름 없는 꽃이어라

새벽 별빛이 바래지기 전에 어서 오너라

냇가에 차이는 이름 모를 돌멩이가 되어라, 되어라

내 생애의 순수는

순간에 날리는 티끌로

마침내 너와 나는 밤마다 울어 지새는 가없는 새가 되어라, 새가 되어라

 

우리 기쁨은 슬픔을 깔고 있고

우리 만남은 헤어짐을 깔고 있어, 가엾은 후조(候鳥)여라, 가엾은 후조(候鳥)여라

 

우리의 볼이, 우리의 입술이 꿈꾸는 곳, 그 운명은 가여워라, 서러워라

너와 나, 이 땅에서 설 곳 없는 나그네, 꿈 없는 미치광이, 꿈 없는 미치광이

 

우리는 새벽이 오면 어딘지 모르게 사라지는 가여운 영혼, 가여운 영혼이어라

먼동이 트기 전에 너의 영혼만이 내게 오너라, 안개처럼 영혼만 오너라, 영혼만 오너라 [1974. 12. 14.]

2023.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