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회한(悔恨)
청솔고개
그땐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정말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가 왜 그랬을까
정말 왜 그랬을까
천 번 만 번 되뇌고
만 번 천 번 이마를 찧어도
머리 감싸고 쥐어 뜯어도
모두 다 소용없는 일
모두 다 흘러 간 일
모두 다 돌이킬 수 없는 일
과거는 흘러갔다고
과거는 묻지 말라고
천 번 만 번 되뇌고
천 번 만 번 다짐하고
그래도 이제는 다 소용없는 일
나한테도 다짐하고
일기장에다 고백하고
꿈에서도 떠올리고
취해서도 떠벌리고
그래서 이생은, 이승에서는
이번 생은 거의 망한 것 같다고
그러면 다음 생은 오는가
정말 오는가
온다고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온다고 누가 언약이라도 했던가
온다한들 내가 알 수 있을까
내가 정말 알 수나 있을까
다음 생에 내가 태어난들
혹여 천만 분의 일의 행운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한들
더 잘된다고 그 누가 보증할까
60년 전 먼저 가신
우리 증조할아버지는 종중 묘원에
한 줌 흙으로 주무시고 있으신데
증조할아버지께서도
과연 다음 생은 찾으셨는지
참 궁금하다
여쭤 볼 길 정말 없으니
오늘 저녁 꿈에나 나오셔서
증손에게 한 말씀 해 주소서
무슨 응답 하실까
증조할아버지께서는
그 인자한 용자(容姿), 준수하신 풍골(風骨)로
큰 미소 띠시면서, 긴 수염 쓰다듬으시며
멀지 않았다, 야야 니도
그리 궁금하면 곧 한 번
와보면 알게 아니냐
말씀하시면서
허연 도포자락을 휘날리면서
바람으로 구름 타고 훨훨 날으시며
멀어져 가실 것만
증조할아버지와 손잡고 아장아장
소 이까리 끌고
수리조합 도랑을
노란샤스 입은 사나이
흥얼거리던 그 시절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그런 그리움이
사무치는 그리움이
회한(悔恨)이 되어
내 다음 생이 될까
허허허
2023. 3. 4.
'나의 노래, 나의 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詩) 홀로 가는 길/ 바람을 만나랴 구름을 만나랴 설목(雪木) 사이로 새 한 마리 만나랴 (1) | 2023.03.06 |
---|---|
(詩) 나무들의 갈기처럼/ 나무들의 구천(九泉)에서 하늘바람 타고 올라나무들의 구천(九天)까지 갈기돼 흩날리고 (0) | 2023.03.05 |
(詩) 청춘은 아름다워라/ 술 한 잔 기울이며 불원간 나의 날들이 온다고꼭 온다고 (0) | 2023.02.07 |
(詩) 너를 위하여/ 한 줌의 영혼밖에 담을 수 없는 너의 몸뚱이라 마침내 한숨 미풍에 날리는 꽃이 되어라, 꽃이 되어라 (0) | 2023.01.02 |
‘이별의 인사’에서 ‘나그네 사랑’까지 (0) | 2022.07.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