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아름다운 썩음/큰키나무들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어찌 관목(灌木)들의 천지(天地)가 될 수 있었을까

청솔고개 2020. 4. 8. 00:00

                                      아름다운 썩음                 

                                                                                                  청솔고개

 

오늘도 우리 셋, 아내와 아이, 내가 새벽 금빛 햇살이 비치는 진달래, 연달래 지고 피는 꽃길을 걷는다. 올해는 꽃봉오리가 여느 해에 비해서 많이 달리지 않은 것이 나뿐만 아니라 아이도 알아차린 것 같다. 작년, 재작년 두 해나 이 꽃길을 동행 산행 했으니까. 그래서 이것도 해거리가 아닌가 말해주었다. 그래도 그리 화사하고 난만하지 않은 꽃송이라도 자세히 보면 참 곱고 아름답다. 내가 꽃잎에 입을 맞출 정도로 더 가까이에서 보면 다 참하다. 예쁘다. 풀잎도 그렇고 바위의 이끼도 그렇다세상 만물이 다 그렇다. 그러니 옛말에 천불생무록지인(天不生無祿之人)이요, 지불생무명지초(地不生無名之草)라 하지 않았던가. 하늘은 봉록, , 먹고 살 걸 가지지 않는 사람을 내지 않고, 땅은 이름없는 풀을 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꽃길을 걸어가는데 엊그제 맡았던 고약한 냄새가 살짝 풍긴다. 아름드리 크기로 대자로 뻗어 있는 마른 나무를 치운다고 산림관리 차원에서 톱으로 잘라놓은 곳에서 나는 냄새다. 절단 부분에는 빨간 물감으로 작업 결과를 뭔가 표해 놓았다. 여기가 냄새의 발원지였다. 아이는 마치 *오그락지 어가는 냄새 같다고 말한다.

나무의 썩음을 대하니, 문득 지난 날 내 나름의 썩음의 철학에 대한 나의 아래 글이 생각난다.

 썩음을 다른 말로 부패(腐敗)라 한다. 요즈음 권력층 주변의 부패로 온 나라가 영일(寧日)이 없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더군다나 우리 역사 이래 가장 주목을 받는 세계의 잔치 월드컵대회를 앞두고 나라의 체면과 위신이 말이 안 되게 되었다. 그래서 부패는 추방되어야 한다. 오죽하면 각종 관련법과 이를 집행할 공식적인 국가 기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옥상옥(屋上屋), 누상루(樓上樓) 격으로 부패방지위원회, 경실련부패추방운동본부, 부정부패추방시민연합회, 반부패국민연대…….등이 버티고 있으니, 이 부패 문제가 여간 심각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잘못된 상황을 썩었다. 썩어빠졌다. 썩어 자빠졌다. 썩어 문드러졌다. 썩어서 냄새가 난다. 썩어서 곪아 터졌다.’ 등등으로 고유한 우리말로 표현하면 훨씬 감각적이고 선정적이다.

그런데 나는 요즈음 정말 아름다운 썩음, 화려한 부패의 현상을 목격하고 이 썩음부패라는 관념과 인식에 대한 현격한 차이를 확인한다. 우리가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자연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매주 일요일이면 별다른 급한 일이 없으면 우리 부부는 소금강산을 지나 성지골 샘터에 물을 받으러 간다. 평소에는 매일 한 30분에서 1시간가량 가벼운 산책 등으로 기분을 전환하고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것으로 나름대로의 건강법을 지켜나가고 있지만 주말은 약 2시간 정도 걸리는 이곳을 찾는다. 이것이 우리만의 소중한 주말 행사다.

성지골 샘터로 가다가 오른쪽 산꼭대기로 오르는 샛길로 접어들어 한참 오르면 고압송전탑이 흉물스레 버티고 있다. 거기서 시내를 굽어보면 도심 공원이랑 사방으로 이어진 골짜기, 이런 저런 유적지나 건물들이 등이 마치 시가의 모형도처럼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바로 아래는 소금강산이 편안하게 누워있다.

암만 보아도 이 도시는 아늑하고 정겹다. 유서 깊은 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역사적 위압감 같은 것은 찾아보래야 볼 수 없는 자그마한 동산처럼 느껴진다고나 할까. 그것은 이 도시가 오랜 역사적 애환을 겪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도시의 설계와 배치가 자연의 흐름과 순리를 거역하지 않고 순응해가면서 건설해왔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멀리 드리어져있는 남산 자락이 이 도시의 남쪽을 기가 막히게 처리하고 있다는 것을 통해서도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봄날 이 성지골 뒷산에 올라 도회를 드리우고 있는 이 들녘을 한번 바라보라! 그 유장(悠長)하고 현란(眩亂)한 자연과 도시의 조화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곳에 올라 비로소 흐르는 땀을 식히고 마을 뒷동산에 올라온 가벼운 기분으로 도심공원 시립도서관 뒤편에 있는 우리 집도 찾아보고 저 멀리 고향마을이 있는 남쪽으로는 마치 안개 낀 다도해의 섬처럼 떠 있는 아늑한 봉우리와 골, 산자락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한다. 곧 이어서 정상에 오른다. 동녘으로 명활산이 보이고 그 구비치는 산자락 사이로 자리잡은 호수의 수면이 이국적인 정취로 다가온다. 아름다운 비단자락이다.

송전탑 있는 이곳에서 좀 더 올라가면 양지바른 묘 터가 편안하게 자리 잡고 있는 능선이 나타나고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면서 빤히 산꼭대기가 보인다. 아래로는 제법 깊은 골짜기가 훤히 드러난다. 땅 색깔은 거무튀튀한데 이곳에는 고산지대나 볼 수 있는 고사목 같은 것이 즐비하게 서 있거나 혹은 누워있다. 넓이는 족히 2-3정보나 됨직한 게 토질이 무척 특이하다고 느껴졌다. 이 땅에는 오리나무니 떡갈나무하며 진달래, 철쭉 등의 떨기나무들이 주말마다 새로운 생명의 진행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바로 수년 전 이 일대 소금강산에 난 산불로 타버린 곳이다. 그 산불의 잔해(殘骸)는 대체로 흉물스럽다고 인식하는데, 이건 전혀 달랐다. 몇 해가 지나서 그런지 불타고 남아서 처참해 보이는 검은 색이라기보다는 마치 지리산이나 소백산 고사목(枯死木) 풍정(風情)이다. 자연사(自然死)하여 세상의 만고풍상(萬古風霜)을 다 겪고 산 아래를 굽어보는 달인(達人)이나 지사(志士)의 풍모다. 어쩌다 산불을 낸 인간들의 실패를 그들은 이러한 아름다운 성공으로 이끌어 간다. 위대한 자연의 힘이다. 그 아래 키 작은 나무들의 키 재기 경쟁이 펼쳐진다. 매주 새로운 생명 파티를 연출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즈음 2,3주째 진달래, 고사리, 철쭉꽃밭을 거니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썩음인가. 너무나 역설적(逆說的)인 이야기다. 이들이 별로 크지도 않는 꼬장꼬장한 소나무군락의 독한 수취(樹臭)에 취하고 짙은 그늘에 막혀 평생을 지냈더라면, 과연 이러한 키 작은 생명들의 아름다운 향연(饗宴)과 축제에 참여할 수 있었을 것인가.

벌겋게 타들어 가니 수액(樹液)은 이미 다 말라버렸을 거다. 생명의 기운이 다하면서 더욱 메말라가고 썩어 들어간다. 혹은 서 있고 혹은 쓰러져 가로 세로로 누운 큰키나무들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어찌 관목(灌木)들의 천지(天地)가 될 수 있었을까? 암만 생각해도 자연의 신묘(神妙)한 조화(調和)임에 틀림이 없다. 제법 굵은 등걸의 한 교목(喬木)들은 벌써 그 육질(肉質)이 탈골(奪骨)되어 나무가루가 되어 땅위에 흘러내리고 있다. 주변에는 작은 개미떼들 같은 알 수 없는 벌레들이 아름다운 썩음을 재촉한다. 그래서 모든 유기체(有機體)들은 선현(先賢)들의 말씀대로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화()하는 것이다.

그 옆의 묘지에서 영면(永眠)하고 있는 망인(亡人)도 그 유명(幽明)은 다를지언정 지하에서 이러한 아름다운 썩음이 이루어지고 있을 게다. 풍수(風水)들 말에 이처럼 양지바른 곳에 유택(幽宅)을 정하면 그 육신은 빠르게 그 본질로 환원한다고 한다. 그 본향인 흙과 물과 불과 바람으로 되돌아간다. 인간의 육신이 얼마나 빨리 본질로 환원할 수 있는가에 따라 명당(明堂)여부가 결정된다고 한다. 정말 이치에 닿는 이야기다.

만약에 이 대지에 이러한 썩음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세상은 모든 유기체들의 잔해가 피둥피둥하게 남아 마치 냉동 동태처럼 산을 이루고 강을 메울 것이다. 상상만 해도 끔직한 광경이다.

이러한 썩음은 미생물들의 작용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근처에서도 얼마 전부터 낙엽 등의 썩음이 무척 더디게 진행된다는 보고가 있었다. 그 원인은 산성비로 인한 토양의 산성화로 미생물의 절대량 감소라고 판단하고 있다. 사실이라면 심각한 환경재앙이 닥쳐오고 있다는 증거다.

나는 우리 집 화단을 돌보다가 흙 속에 들어 있는 비닐이나 플라스틱조각을 보면 우리 몸속의 암세포를 연상한다. 그래서 하나하나 밝아내어 버린다. 이러한 썩지 않는 이물질(異物質)이 토양에 축적되면 신선한 공기를 차단해서 미생물을 살 수 없게 한다. 죽은 토양으로 변하게 된다. 몸의 암세포만큼이나 심각한 해악을 끼친다.

한 알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야 그 희생으로 씨앗을 틔울 수 있다는 성경말씀이 있다. 밀알의 썩음은 아름답고 고귀한 행위이다.

우리는 자연의 아름다운 썩음을 인식해야 한다. 큰 나무들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낙엽이 썩어서 그 뿌리로 되돌아간다[낙엽귀근 落葉歸根]는 가장 기본적인 자연의 섭리에 충실하였기 때문이다. 큰 나무는 그윽하다. 꽃과 녹음과 열매를 풍성하게 준다. 뭇 새들이 둥지를 틀고 지나가는 바람도 쉬어간다. 거목에서 인간들은 배운다. 인간들의 고매한 사유의 원천이다.

나는 지금도 한두 평도 안 되는 우리 집 뜰에 쌓여있는 지난겨울에 베어낸 나뭇잎과 가지며 등걸을 바라본다. 이들의 육질이 탈골되고 잔해(殘骸)가 가루가 되고 진토(塵土)가 된다. 혹 지렁이 무리라도 움찔거리면 우리 집 뜰의 흙은 영원한 생명력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보고 안심해도 되리라. 그리고 그들이 썩어가면서 풍기는 아름다운 향내를 즐겨 맡으리라.

우리 인간들의 사회에서도  제발 이러한 아름다운 부패가 만연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부패촉진위원회라도 결성해야 하지 않는가. [이 글은 2002.5.19.에 '아름다운 썩음'이라는 제하로 쓴 것임]

                                                                                                          2020.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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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그락지 : 무말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