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애장/나한테 세 살 아래인, 죽은 동생도 여기에 묻혔을까

청솔고개 2020. 4. 13. 23:40

애장

                                                                                              청솔고개

 

오늘 산행하면서 산짐승을 한놈 보았다. 10미터 앞이다. 몸은 옅은 갈색이고 꼬리털은 풍성하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짙은 갈색이며 키는 나지막하다. 멧돼지는 아니고 늑대다, 여우다 등 의견이 분분하다. 아이가 뭔가 싶어서 막 뛰어서 따라가 보았지만 더 자세히 못 보고 결국 놓쳤다. 우리는 결국 너구리일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불현 듯 일곱 살 맞이 나의 어느 봄날 오후가 떠오른다.

  동무들과 같이 참꽃 따러 뒷동산에 오른다. 능갓 지나 공동묘지 너머 애장이 많은 데서 정신없이 참꽃을 딴다. 이 돌무더기, 흙더미는 애장이다. 어른 무덤의 반의반도 안 된다. 어린 시절, 호열자, 장질부사 돌림병으로 명 짧아 죽은 어린 넋들이 묻힌 동산이다. 여기는 희한하게도 유난히 빛바래서 거의 희게 보이는 참꽃이 많이 피어있다. 동무 중 누가 이야기한다. 애장 근처라서 그렇다고 한다. 그 근처에는 하얀 참꽃이 많다고, 어른들이 말하는 걸 들었다고. 나는 순간 아가들의 어린 혼들이 묻힌 곳이라서 그 기운이 여기로 스며 들어서 그런 빛깔을 띠는 건가, 뭔가 섬짓하기도 하고 무섭다. 나도 모르게 금방 울음이 터질 것 같기도 하다. 그 때, 한 생각이 스친다. 나한테 세 살 아래인, 죽은 동생도 여기에 묻혔을까? 하는. 이 돌무더기일까? 저 흙더미일까?

동무들은 그 동안 딴 꽃대를 뭉쳐서 꽃방맹이를 만든다. 작은 주먹이 넘칠 만큼 모아 쥐고 휘휘 휘두르며, "진달래 보소, 연달래 보소" 하고 훠어이 훠어이 소리친다. 그 소리가 산골짜기에서 메아리쳐 울린다.

그 때다. 앞에서 뭔가 퍼뜩 스치는 느낌. 푹덕한 꼬리털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있는 누런 놈이 우리 앞을 소리 없이 지나간다. 저놈이 정녕 개는 아니다. 개가 꼬리를 내리고 있으면 미친개다. 미친개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 혹 미친개가 날뛴다는 소문을 듣는 순간 들판이나 동네 골목에서 만날까봐 난 삽짝 밖을 못나가고 발도 마음도 다 얼어붙은 적이 몇 번이나 있었지 않나. 그때 동무 중 누가 늑대다!’ 하고 소리친다. 우리 동무 여남은 모두 정신이 아뜩하고 혼이 나가, 산 아래 밭으로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구르듯이 뛰어 내려온다. 밭에 일하던 동네 사람들을 보자 모두 그냥 정신 줄을 놓고 밭둑에 퍼질러 앉아버린다.

60년도 더 뒤 요즘도, 그 때 친구들을 만나면그 때 그게 늑대였을까? 여우였을까? 아님 미친개? 하고 한 번씩 되새겨 물어 본다.                                                              2020. 4. 13.

[주(注)]

삽짝 : 나뭇가지들을 엮어 만든 문짝. '사립문'의 토박이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