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와 가재
청솔고개
고사리. 이것은 원래 구황 나물이었다. 이른 봄 선인들이 먹을 게 부족해서 막 돋아오는 새순을 잘라서 풋것은 독성이 있으므로 데치고 헹구고 말려서 무쳐서 먹는 푸성귀다. 그 섭생 과정이 좀 복잡하고 까다로운 편이다.
그런데 이게 어지간한 집중력을 가지고는 잘 찾아지지 않는다. 처음 돋아날 때 그 색깔이 마른 억새나 풀, 흙색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생존을 위한 보호색을 기막히게 띠고 있다. 또 고사리 뜯는 앞사람이 지나간 바로 뒤따라가도 또 나 있다고 한다. 한창 땅에서 솟아날 때는 분초를 다투어 돋아 오를 정도로 기운이 왕성하다는 뜻이다. 또 초집중해서 보아야 보인다는 것을 다소 과장해서 표현한 거다.
그 동안 몇 차례나 이맘때부터 고사리 뜯으러 가서 겪은 희한한 일이 있다. 산자락을 헤매다가 잠시 휴식한다고 앉아서 물을 한 잔 마시거나 아니면 용변을 본다고 주변을 둘러보면 여기도 봉긋, 저기도 꿈틀 하면서 흙을 이고 있는 놈, 마른 억새나 낙엽을 뒤집어쓰고 있는 놈 등 순식간에 대여섯 놈이 눈에 띠는 것이다. 만일 그냥 이곳을 고사리 찾는다고 하면서 두리번두리번 하였다면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때는 그냥 앉아서 뱅글뱅글 돌면서 손만 뻗으면 고사리 뜯을 수 있는 것이다. 머리가 진갈색으로 살이 통통하게 진 먹고사리는 엄지와 검지로 손을 대는 순간 새순이 기분 좋은 촉감과 소리로 댕강댕강 잘라지는 것 같은 놀라운 손맛이 있다. 내 손가락에 그 풋풋한 진액 내음이 밴다.
고사리는 산불 난 뒤 몇 년 후 검게 타서 내동댕이쳐진 나무 등걸이 조금씩 썩어서 발로 밟거나 손으로 치면 푹푹 들어갈 정도 된 곳에 많이 돋아난다. 키 큰 나무가 없기 때문에 일조량이 충분하고 썩어가는 나무가 주는 영양소가 아주 풍부하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봐서는 산불이 재난이지만 고사리에게는 횡재인 셈이다. 내가 사는 주변에 산불 난 곳만 찾으면 고사리 손맛은 어지간히 볼 수 있다.
다음은 민물 가재. 이것은 또 어떤가.
먼저 내가 그동안 직접 관찰해 놓은 생태는 이렇다. 암컷은 지금이 한창 자기 배 위에 줄잡아 몇 십 개의 진한 갈색의 알을 붙이고 부화를 기다리고 있는 시기다. 그 붙어 있는 모양은 마치 머루송이를 축소해 놓은 것 같다. 한번은 가재 손맛을 보려고 암컷 가재를 집어 올리는데, 어찌나 하복부를 용을 쓰면서 떨곤 하는지 알이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인간의 호기심이 소중한 모성을 짓밟는 잔인한 사고다. 이건 인재다. 그래서 암컷은 잡아서 손맛 보는 건 포기한다. 성체 수컷은 잡으면 발버둥을 치면서 포클레인 같은 앞 집게발을 뒤로 젖히면서 순식간에 사람 손가락을 공격한다. 그래도 대체로 재빨리 등짝을 살짝 집으면 잘 잡힌다. 딱 한 번 내가 그 침에 찔려서 혈당 체크할 때 정도의 피가 배어 나온 적이 있어서 혼이 났던 기억이 있다. 한번은 그 포클레인이 내 양말을 물고 놓지 않았다. 억지로 뜯어내다가는 포클레인 하나가 떨어져 나가 장애가재가 될 것 같아서 생각 끝에 양말을 벗어서 살그머니 가재를 물에 담그니 그냥 스르르 풀고 걸음아 날 살려라고 물속으로 줄행랑친다. 가재를 잡다 보면 두 집게발이 다 없는 놈, 하나만 있는 놈, 하나는 정상 크기인데 하나는 반쪽 크기인 놈 등 장애가재도 많다.
어린 시절 우리 집 삼촌이나 머슴이 한 번씩 근처 깊은 골짜기에 가서 가재를 한 ⁰초배기 차도록 잡아와서 삶거나 볶아서 맛본 기억이 있다. 살았을 때 가재는 대체로 연한 갈색, 짙은 갈색이 많고 짙은 청색은 혹간 보이는데 그 때 요리한 가재 색깔은 모두 짙은 오렌지색이었다. 커서 가재를 더러 잡아보긴 했지만 요리해서 먹어볼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그건 어린 시절의 그 소중한 기억을 그대로 보전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가재 역시 찾아내기란 좀 지난한 작업이다. 먼저 아주 예민해서 근처로 다가가는 발자국 소리와 진동에도 그냥 바위 밑이나 자갈 밑으로 몸을 숨겨버리기 때문이다. 물이 얕으면 살그머니 돌을 뒤집어서 더러는 찾을 수 있지만 쉽지 않다. 가장 어려운 점은 역시 기막힌 보호색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그냥 봐서는 가재의 형상이 물결인지, 그림자인지, 자갈인지, 돌인지, 마른 나뭇잎인지 전혀 식별이 안 된다는 점이다. 정말 정성을 다해서 다가가야 비로소 가재의 눈맛, 손맛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흔히 도랑치고 가재 잡는다는 옛말이 있다. 도랑을 쳐야 가재를 비로소 잡을 수 있다는 말로서 먼저 공을 들여야 한다는 뜻, 다음으로 부수적으로 도랑청소의 보람도 생긴다는 뜻이다.
나는 요즘, 하루는 가재 손맛 보러, 하루는 고사리 손맛 보러 산길, 골짝 길을 하염없이 걷는다. 이제야 나도 ‘자연인’이 되어 가는 건가! 2020. 4. 14.
[주(注)]
⁰초배기 : '점심 도시락', 혹은 '밥을 담을 수 있도록, 주로 고리나 가는 대나무살로 엮어 만든 옛날 도시락 곽'의 토박이 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