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밭

(詩) 늙은 국어선생을 위한 변명/나는 몸과 마음의 꽃길을 모두 걷고 싶다

청솔고개 2020. 4. 9. 23:59

늙은 국어선생을 위한 변명

                                                                        청솔고개

 

이것저것 주섬주섬 챙겨서 한보따리 안고

허겁지겁 삼층 계단으로 오른다

그런 내 다리가 힘에 부쳐 휘청 휘청

아이들이 혹시 좋아할라나 싶어

이야기꾸러미, 개그꾸러미, 온갖 잡동사니

아이들한테 무어가 그리 신나는 건지. 무어가 그리 쿨한 건지

무어가 아이들을 경기 일으키듯 ‘캭’ 넘어 가게 하는 건지

내 정말 아는지 모르는지

소문만 듣고 짐작만 하다가

이리저리 찾아서 또 찾아서

담고 또 담아 간다

암만 그래도

이 몸은 진갑배기 늙은 국어선생

평생 짊어진 책 무게, 공부 무게로, 선생이란 인격 무게로

내려앉는 등줄기, 척추관협착증이라나

협착이라 뭐가 협착인가, 내 인생길도 이리 협착한데

내 마음은 아주 오래부터 협착 증세를 보였었는데

몸까지 척추관까지 협착이라니

 

가뜩이나 작은 키에 협착증으로 3센티나 낮아져

내 어린 시절 노래 불렀던

꼬부랑할머니 신세 이제 내가 다 되어 가네

 

일주일에 두 번씩 곤장 맞는 뒤태로 봉약침에 탕환약으로 칠갑(漆甲)

마비되어 가는 하초, 타들어가는 엉치뼈

아내는 뒤 따라 다니면서

졸졸 뒤 따라 다니면서

꼬대서소!, 꼬대서소!’ 듣기 싫도록 닦달한다

어째 이 말이 갈수록 싫고도 고맙다 

  [위의 시는 2013. 봄 어느 날에 쓴 것임]

                                       

 

 

 

나는 몸과 마음의 꽃길을 모두 걷고 싶다

                                                                                                                                         

                                                                       청솔고개

요즘 이틀에 한 번씩 아내와 아이와 같이 연달래 피어나는 이 길을 산행한다. 오르막길 걸을 때는 열흘 전만하더라도 다리 저림이 아주 심했는데 신기하기도 하고 기적적으로 다리 저림 증상이 조금씩 완화되더니 엊그제와 오늘은 거의 95% 정도 회복된 것 같다. 벌써 8~9년 전에 나는 근처 정형외과에서 MRI진단 결과 척추관협착증, 전방전위증, 척추디스크 등 3종세트를 진단받았다. 그 때는 일백 미터를 편히 걸어갈 수 없을 정도로 심했었다. 시술을 고려해 보았지만 주변에서 모두 반드시 재발하기도 하고 잘못하면 부작용으로 시술 안 함만 못하다고 하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다. 그래서 어찌하든 버텨야 한다고 마음을 먹고 6개월 코스로 봉침까지 곁들인 고강도 침술 치료도 해 보았지만 말할 수 없는 침술 고통만 당하고는 결국은 호전되지 않았다. 그래서 자세 복원과 기립근 등 속 근육 강화를 위한 스포츠마사지, 걷기, 산행 등을 꾸준하게 이행해 왔는데, 최근에 더 안 좋아져서 나름대로 좋다고 하는 몇몇 스트레칭을 하면서 계단 걸어 오르기, 체중 조절 등으로 애를 썼는데 그 결과가 이제 나타는 것 같기도 하다. 처음에 이런 증상이 심해졌을 때는 거의 절망적이었다

그 때의 참담한 심경을 기록한 게 있는데 위의 푸념이 그것이다. 그러면서 '육신의 고통은 정신의 정화'를 가져온다는 신념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지금 오르는 이 길은 ¹연달래, 산벚꽃이 나를 반겨주는 사랑스러운 길,  걸어서 가는 꽃길이지만 내 가슴에는 먼저 마음의 꽃길을 희망한다나에게 얼마나 더 이런 마음의 꽃길이 이어질지 모르지만 이 한 순간만은 정말 나는 마음과 몸 모두의 꽃길을 두둥실 떠서 거니는 것 같다.

 

                                                                                                          2020. 4. 9.

                                        

[주(注)]

꼬대서소 : '똑 바로 서세요'의 토박이 말

¹연달래 : '토종 철쭉'의 토박이 말, 산척촉, 개꽃나무, 수달래라고도 부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