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이르는 병
청솔고개
내 청춘 시절, 키에르 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을 불안하게 읽었던 기억이
오늘따라 불현듯 솟구친다
그 땐 몰랐더니
지금 내가 그 병을 심하게 앓고 있다
지금 내가 죽음에 이르는 병을 얻어서
불안해하고 있다
삼불화두(三佛話頭)니 망념(妄念)이니 포장하고 미화해 보지만
정녕 그 병이다
하루하루, 한 순간 한 순간
그 병은 나를 죽음으로 이르게 할 거다
내 젊은 시절은 소금기 저벅이는 포구(浦口)를 걸어서
모래 먼지 휘몰아치는 사구(砂丘)에 다다른 길
이제 늘그막, 시원한 미루나무 그늘이 있는 어떤 신작로를
터벅터벅 걸어왔다가
그 병에 감염되었다
장미의 가시로 남아서 내 영혼을 헤집고 있다
병증으로
마음이 지옥불로 녹아내리고 있다
노보리베츠의 들끓어 오르는 철 지옥
칠흑 속의 그 간헐적인 용솟음의 공포
그래서
곧 죽을 것만 같다 [2014. 12. 31. 지은 것임]
산행을 다시 시작했다. 일주일이나 지나서 산행이다. 처음은 좀 힘들었다. 좀 지나니 걸을 만하다. 쉬는 바위 위에서 보니 동편 들녘의 못자리에 물이 가득 차 있다. 곧 모내기가 있을 것 같다. 산길을 걷는데 어디서 묘하고 은은한 향이 풍겨온다. 아카시아 향 같기도 하다. 자세히 보니 가는데 마다 피어있는 작고 앙증맞은 이름 모를 꽃이 눈에 띈다. 내가 ‘하얀 별꽃’이라 이름을 지었다. 혹시 이 꽃에서 풍기는 거는 아닌지 궁금하다. [2020. 5. 18. 월.]
이틀 만에 또 산행했다. 전번보다 내 걸음 상태가 더 안 좋다. 동행에게 신경 쓰이도록 하는 게 걸리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오늘은 처음부터 난조를 보인다. 첫 오르막 지나는 데 자리 잡고 있는, 다 뭉개져 가는 무덤 위에 누워서 머리를 낮게 해서 허리를 펴보았다. 한결 좋아진다. 이래서 사람이 죽으면 흙에 묻히나 보다 하는, 좀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2020. 5. 20. 수.]
오늘 산행에서는 지난 두 번 때보다 걸음걸이 상태가 더 나빠진 것 같다. 첫 오르막에 이르자말자 그냥 다시 애장 같은 작은 무덤에 등을 기대고 누워본다. 답답하니 흙과 티끌이 묻어나는 것도 괘념치 않는다. 순간 허리가 풀리는 것 같이 편안하다. 이후는 무난했다. 바위 위에서 쉴 때도 허리를 쫙 펴고 앉은 자세를 잘 유지한다고 신경 썼고, 허리를 펴주기 위해서 머리를 낮은 데로 유지해 주었다. 그런데 내려와서 다시 걸으려 하니 둔중한, 아주 기분이 나쁜 신호가 또 온다. 솜뭉치 위를 걷는 것 같기도 하고, 다리에 힘이 다 증발해버리는 것 같다. 아주 작은 오르막도 올라서기 힘들다. 지난 산행까지는 한두 번 정도만 가다가 무덤이나 동그란 바위에 등을 대고 허리를 펴 주면 다 풀리고 이후는 괜찮았는데, 오늘은 몇 차례를 반복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개운치 않고 절뚝거린다. 참 부자연스럽다. [2020. 5. 22. 금.]
지난 세 차례 산행 때, 내 걸음걸이 관찰 기록이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내가 하초의 저림으로 온 신경이 거기에 쏠리면, 다른 생각은 전혀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모든 인식, 생각, 관심이 온통 하초의 상태에만 집중된다. 순간 마음은 평온 상태가 유지된다. 통증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서 지난 4월 초순 이 꽃길을 걸으면서 '육신의 고통은 정신의 정화'를 가져온다는 신념을 다시 굳혀본다. 무덤 위나 바위 위에 내 등을 대고 누워 있으면, 거짓말 같이 몸은 물론이거니와 마음까지 편안해진다. 무덤은 죽은 자나 산 자 모두에게 이런 안식을 주는구나 하는 좀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다음은 2016년 5월 하순, 여행길에서 떠올린 무덤과 죽음에 대한 단상이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바사호박물관을 관람했다. 바사 호는 스웨덴의 해군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1625년에 왕실에서 건조 후, 1628년 8월 10일 처녀항해를 했다가 의문의 사고로 침몰한 걸 최대한 원형과 부장 품목을 보존해서 그대로 전시한 것이다. 바사호박물관 바로 옆에 북방민속 박물관이 있고 그 바로 앞에는 도심 공동묘지가 있어 안에 들어가 보았다. 해외여행 중, 그 나라의 묘지를 이렇게 가까이서 자세히 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아서 난 반색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서 묘지를 덮고 있다. 이 북국에도 봄이 오니 벚꽃이 핀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묘지의 형태는 아주 다양했다. 아주 규모가 큰 화려한 구조물로부터 소박한 작은 이름이 새겨진 묘지까지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비석처럼 직사각형의 평범한 모양도 있으나 대체로 십자가가 붙어 있었다. 묘지 잔디밭에는 역시 샛노랗거나 새하얀 민들레가 수놓고 있었고 튤립 몇 송이가 피어나고 조화 몇 다발도 놓여 있어 망자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있었다. [2016년 5월 19일, 러시아 북유럽 여행 6일 째] 여기서 배의 무덤과 사람의 무덤을 보면서 사멸(死滅)이라는 현상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우리 옆에 있다는 걸 느낀다. “죽음도 삶의 한 양식이다”라고 어느 작가가 말한 게 생각난다. 어제 스웨덴 스톡홀름, 오늘 오전까지 덴마크의 명소를 둘러보았다. 점심식사 후 크리스티안보그 성을 찾았다. 돌로 된 아치형 출입문을 들어가니 바로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의 동상이 우리를 맞는다. 나의 20대에, 삶의 문제에 대한 해답에 목말라할 때 이 실존철학자의 “죽음에 이르는 병”을 자주 읽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는 ‘절망이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라고 선언했다. 그가 지금은 여기에서 고뇌에 찬 표정이라기보다는 맑고 담담한 표정으로 앉아서 글을 쓰고 있다. [2016년 5월 20일, 러시아 북유럽 여행 7일 째] 2020.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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