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래, 나의 편지

(詩) 마른 호수/마른 풀 내음으로 가득 찼고

청솔고개 2020. 9. 15. 01:29

마른 호수

 

                                                청솔고개

그해 가을

마른 호숫가에서 고독한 이가

서성이는데

 

호수엔 드러난 붉은 흙만 가득하고

한 방울의 물밖에

 

가을은 그녀의 흩날리는 스카프처럼

다가와서 고추잠자리 날음으로 소리 없이

가버리는 것

 

가을은

마음 없는 아이가

창백한 들국화 떨기떨기 사이로

은 백양처럼 화사한 미소를

허락하는 것

 

마른 호수엔

마른 풀 내음으로 가득 찼고

언덕에서 불어오는 한 점의 바람

가을을 날린다

 

호수는

내 안처럼 말라 비었고

슬퍼도 슬퍼도

한 방울 눈물도 없는 호수

마른 호수

[1977. 9. 7. 오후 진중 호변에서 노래함]

2020. 9.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