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래, 나의 편지

(詩) 가을에 드는 병/돌밭 황무지 마른 들풀처럼 사위어 가고

청솔고개 2020. 10. 13. 08:58

가을에 드는 병

                                     청솔고개

이 가을에는 마른 잎처럼

흩날려 끝없이 가라앉는

그런 소식은 들리지 않는가

어제 내린 비로

언젠가는 후끈한

김이 되어 찬 서릿바람으로 흩어질 것이니

 

피곤한 육신은 근원도 없는

끝없는 진통으로

돌밭 황무지 마른 들풀처럼 사위어 가고

언젠가는 재 가루 한아름 머금고

바람이나 되었으면 좋으련만

먼지나 되었으면 좋으련만

 

나는 언제나

한 발의 양지만을 찾아드는

겨울아이처럼 추워도

검은 비에 젖어드는 동굴의 침묵에 익숙하여진

한 마리 붉은 새일까

 

상실해서 애통하는 사람들은

이 계절이면 참을 수 없는

그 고통을

결단코 지울 수 없으니

한아름 양광이 뒤덮이어 색 바래진 산록에는

조락에 짓밟힌 허허로운 계절의 흔적뿐

 

가을이면 내 몸 골수 마디마디에 저려오는

무연의 고통이 정녕 얼어붙은

강변을 스치는 바람이나 되었으면

눈 속에 바위 속에 피어나는

설화라도 되었으면

[1977. 10. 8. 오후 들녘에서]

                                                    2020. 10.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