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드는 병
청솔고개
이 가을에는 마른 잎처럼
흩날려 끝없이 가라앉는
그런 소식은 들리지 않는가
어제 내린 비로
언젠가는 후끈한
김이 되어 찬 서릿바람으로 흩어질 것이니
피곤한 육신은 근원도 없는
끝없는 진통으로
돌밭 황무지 마른 들풀처럼 사위어 가고
언젠가는 재 가루 한아름 머금고
바람이나 되었으면 좋으련만
먼지나 되었으면 좋으련만
나는 언제나
한 발의 양지만을 찾아드는
겨울아이처럼 추워도
검은 비에 젖어드는 동굴의 침묵에 익숙하여진
한 마리 붉은 새일까
상실해서 애통하는 사람들은
이 계절이면 참을 수 없는
그 고통을
결단코 지울 수 없으니
한아름 양광이 뒤덮이어 색 바래진 산록에는
조락에 짓밟힌 허허로운 계절의 흔적뿐
가을이면 내 몸 골수 마디마디에 저려오는
무연의 고통이 정녕 얼어붙은
강변을 스치는 바람이나 되었으면
눈 속에 바위 속에 피어나는
설화라도 되었으면
[1977. 10. 8. 오후 들녘에서]
2020.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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