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旅情)

호주 뉴질랜드 기행 보고서/제5일, 오후, 뉴질랜드 남섬 크롬웰, 퀸즈타운, 와카티푸 호수, 테아나우 숙소, 2016. 9. 26. 월

청솔고개 2020. 10. 23. 21:44

호주 뉴질랜드 기행 보고서/제5일, 오후, 뉴질랜드 남섬 크롬웰, 퀸즈타운, 와카티푸 호수, 테아나우 숙소, 2016. 9. 26. 월

 

                                                                                                     청솔고개

   점심 먹고 또다시 긴 버스 여행. 이제는 사막 지역이다. 그런데 이 사막지역에 마치 서양인들의 금발처럼 노란 풀포기들이 떨기떨기 지천으로 나있다. 원래 생태가 그렇게 바싹 마른 것이냐고 내가 물었더니, 가이드가 터석(Tussock)이라고 하는 풀인데 그냥 보면 바싹 마른 것처럼 보이지만 말라버린 것은 아니고 원래 저런 모습이라고 설명해준다. 이것이 모래 없는 이곳 남섬 사막의 상징이라고 한다. 이 터석이 바람에 금발처럼 일제히 휩쓸린다. 그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우리나라 늦가을 마른 풀잎이 바람에 나부끼는 게 생각난다.

   도중에 크롬웰과수재배단지라는 과일마을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거의 한 시간 전부터 소변이 마려운 걸 참는다고 정신이 아뜩할 지경이었는데 이곳이 나에게 또 다른 낙원 아니겠는가. 가게 옆에는 배 밭이 보이는데 여기서도 우리나라와 엇비슷한 키 큰 배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있었다. 여기서 또 봄의 이화(梨花)를 만나다니, 내 생애 한 해 두 번이나 배꽃을 만나는 기적이 일어났다. 여행의 묘미다. 맞은편엔 또한 30~40미터의 장대한 키를 자랑하는 미루나무 행렬이 마치 의장대의 열병을 보는 듯하다. 마치 이 나라의 늘씬한 체형을 가진 사람들을 꼭 닮은 것 같다.

   끝없이 이어지던 들판 길은 이제 약간 골곡이 있는 산길로 접어든다. 빙하수가 청청하게 흘러내리는 강을 가로지는 다리가 있고 번지 점프대가 설치돼 있다. 차도 쉬고 사람도 쉬는 겸 정차하고 둘러보았다. 쉬다가 여기서 뛰어 내리는 사람 둘을 목격했다. 솔직히 나는 이런 건 별 관심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체험할 수 있는 것이고 다만 우리와 다른 자연 풍광, 기후, 식생 등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여기서도 보다 가까이 콸콸하고 시퍼렇게 세차게 흘러가는 물결, 주변의 연두색 수양버들, 길가의 봄풀들에게 더 눈길이 가는 것이다.

   다시 길을 떠난다. 이름도 규모도 알 수 없는 호수 가로 계속 달린다. 그 너머 허연 눈을 덮어쓴 산이 오전에 보았던 마운틴쿡 산이라고 가이드는 설명한다. 손에 잡힐 듯 매우 가까이 보인다.

   한참 더 달렸다. 퀸스타운, 여왕의 도시에 도착했다. 그동안 추적추적 내리던 비도 개고 날이 제법 쌀쌀해졌다. 말갛게 갠 이 도시를 빛내 주는 와카티푸 호수와 주변의 풍광은 멋진 건물들과 잘 어울려서 도시의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 것 같다. 호수 주변에는 다른 데와 달리 제법 인파가 붐볐다.

   바로 제트보트에 오른다. 초봄의 호수에 바람이 일렁이는데 보트의 속력으로 제법 한기를 느낀다. 호수 상류까지 돌진한다. 바로 옆의 갓 피어오르는 연두색 잎들이 덩달아 춤을 춘다. 멀리 가까이 왔다 갔다 하는 설산도 어지럽다. 설산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은 호수와 산의 이른 봄기운과 어울려서 한바탕 환상적인 봄의 향연을 펼친다. 숨었다가 나타나고 다시 숨곤 하는 설산과 강줄기, 어린양과 양떼들.

   해질녘 바람도 그냥 제트 기류 같다. 추위로 몸은 더욱 움츠려 들고 얼굴은 바람과 긴장으로 구겨져버리고. 혼을 빼내는 속도와는 아랑곳 하지 않고 나는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려고 애썼다.

   한바탕 축제가 끝난 것처럼 보트에 내려서 다시 길을 떠났다. 설산을 머리에 이고 이 나라에서 가장 긴 80km의 길이, 폭 28km,  넓이 297㎢로 뉴질랜드에서 세 번째로 남섬의 위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또다시 내리는 비가 간간히 윈도 브러시를 적신다. 여행객 몇몇이 차를 세워놓고 이른 봄의 풍광을 담는다. 여기서도 대지에서는 솟아오르는 봄기운으로 그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제트 보트의 시간 동안 긴장 때문인지 모두들 혼곤한 잠에 빠져드는 것 같다. 해질 무렵 호숫가는 고요하다. 다시 터석포기가 만연한 사막지대를 건너는데 또 비가 뿌린다. 아내는 콧물, 재치기 등 감기로 힘들어 한다. 아마 엊저녁 기내에서 두서너 시간 에어컨 냉기에 노출 된 탓 같다. 내가 걱정이 돼 마음이 무겁다.

 

 비가 내리는데도 양떼들이 여전히 풀을 뜯고 있다. 여기서도 어린 양 새끼 한두 마리가 어미 곁에서 망아지처럼 뛰놀거나 젖을 빨고 있다. 양들은 이 밤에도 비를 맞으면서 노숙한다고 한다. 문득 새끼 낳을 때도 사람의 도움 없이 자연 상태로 진행되는지 궁금하다.

   19:36에 테아나우에 도착했다. 킹스타운에서 크게 멀지 않은 곳이다. 오늘 밤은 여기서 묵을 거다. 여기 테아나우 호수는 344㎢ 면적으로 남섬에서는 가장 큰 호수고 뉴질랜드에서는 두 번째 큰 호수라고 가이드는 설명한다. KINGSGATE TEANAU HOTEL이 우리가 묵을 호텔 이름이다.

                                                                                                                          2020.  10.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