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원(廢園)
청솔고개
뜰에는 스러져 가는 빛깔뿐
꽃잎은 없다
흙이 마르고 얼어붙어
허무한 냄새
싸아한 바람 냄새가 난다
마른 목련 가냘픈 라일락 서걱이는 감이파리
아, 정든 나의 가족들 나의 자식들
꼬질한 앵두나무를 마주하면
자리보전하신 할머니 생각에
눈물이 난다
꽃들은 어디로 갔나
꽃들의 미소는 어디에 가서 찾을 수 있나
어디에선가
어디에선가
바람 따라 함성이 들려오고 있다
그 함성은
내팽개쳐진 영혼의 절규
내가 어디서부터 와서
이리 부랑하는지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그 아득한 유년의 꽃밭
민들레 씨로 퍼뜨린
상념의 씨를 주워 담는다
한 닢 은전 민들레송이에
실린 연둣빛 꿈
삭은 울타리에 무리지어 오는
약속도 없는 멧새의 자취는 없고
아아, 낯 술 취해 울부짖는
가여운 행려병자는.......
슬픈 영토에서
폐원에서 갈 곳을 잃고 부랑한다
[1984. 늦가을]
2020.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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