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래, 나의 편지

(詩) 겨울에 만난 비/한 사람과 또 한 사람의 체온의 뜨거운 열기로이제 어둠의 그 세계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

청솔고개 2020. 12. 5. 01:16

겨울에 만난 비

-초병의 넋두리

                                           청솔고개

새벽에 일어나 빈 몸으로 밤길을 걸으면

어둠에 함빡 젖어든 비를 만난다

뼛골 깊이 고이는 서러운 시림에

따사한 체온이 엄마 품처럼 그리운 내 한 몸으로 인해

다만 천만 줄기 가녀린 빗살이

천만 순간의 인연을 얽어짜고 노래한다

 

나는 작은 들새도 될 수 없고

더구나 황량한 산야의 한 마리 은빛 나는 노루도 될 수 없어

어느 미몽 새벽에 안개의 늪을 지나

해 뜨는 해변으로 아침노을을 찾아 가서는

흐릿한 수평선엔 절망의 빗살들이 저주처럼 꽂히고

해변엔 핏빛 파도가 맹수처럼 검은 섬을 삼키고만 있었다

자꾸만 갈라지는 홀로선 모래밭에는 끝없이 떨어지는 아득한 침몰뿐

나는 연방 추위에 떨고 있었다

이윽고 어둠은 일체를 빨아들이고

걷힐 줄 모르는 빗살과 더불어 다가오나니

버려진 방랑자는 검은 숲을 지나 지옥처럼 웅얼대는

절망의 영원한 늪을 끼고 녹쓴 철길 두 줄기 질벅이는

평행선을 더듬었다

 

한 사람과 또 한 사람의 체온의 뜨거운 열기로

이제 어둠의 그 세계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

칠흑처럼 검은 빗물이 한 사람의 긴 머리를 축축이 적셔도

숨찬 잇새에서 연방 뿜어내는 단내 나는 욕망의 입김에

너는 끝내 졸린 듯 눈을 감아 버리는가

말라붙은 입술에 균열처럼 터지는 거치른 만남

우리는 언제나 끝없는 지평을 달리는 평행선상에

다만 너는 환영처럼 나타난 밤의 길벗인가

 

새벽에 일어나 빈 몸으로 밤길을 헤매면

언제나 어둠에 함빡 젖어 든 비를 만난다

그리고 절망의 눈물이 함빡 젖어 든 썩어지는

잎들을 밟는다

천만줄기의 가녀린 빗살이 천만의 순간의 인연을

얽어짜고 오열한다

[1977. 11. 20 새벽 진중에서]

                                       2020. 1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