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난[운남, 云南]의 산채에 걸린 구름, 샹그릴라[香格里拉] 방랑기 5, ‘청두’[성도, 成都]
청솔고개
새벽 성도 시내는 짙은 안개로 뒤덮여 있다. 햇빛 보는 날이 연중 70일도 안된다고 했다. 이런 날씨 때문인지, 아니면 또다시 현실로 돌아간다는 강박감 때문인지 혹, 엊저녁 과음 때문인지 마음이 다시 무겁고 어둡다.
날씨가 너무 흐려서 여강과는 정말 대조되는 성도의 아침거리다. 맨 먼저 금리(錦里) 거리를 찾았다. 중국의 전통 거리다. 길 가운데 조성된 잎 하나 없는 겨울 가로수 잔가지마다 비닐 같기도 하고 종이 같기도 한 걸로 만들어 달아놓은 동그랗고 붉은 조화(造花)가 무척 낯설었다. 이곳은 꽤 넓고 크다. 이곳저곳 두리번거리고 기웃거리다가 사진 몇 장 찍고 그냥 나왔다. 동행친구 내외는 이런 데까지 들어선 스타벅스 전문 커피 점에 가서 차 한 잔 하잔다. 난 시간도 없는데 구경부터 먼저 하자고 하면서 그냥 지나가버렸다. 나중에 생각하니 좀 어색한 내 행동이었다.
드디어 제갈공명을 모신 무후사, 한 열조 소열황제 유비(漢 烈祖 昭烈皇帝 劉備, 161년 ~ 223년) 사당과 능을 찾았다. 유비 능의 봉분은 제법 규모가 있었다. 시간 관계상 자세히 살피지는 못했다. 능위에 함부로 자란 나무와 풀이 엉켜져있다. 이런 게 자연스럽다고 놔두는 것이 중국식 봉분 관리인가도 싶다. 아무튼 그 위에 초목이 마음껏 자라고 있는 것이 특이했다. 최근에는 봉분이 무너지지 않게 돌로 호석을 둘렀다고 한다. 그래도 사당과 능으로 가는 길의 담은 붉은 흙벽돌이고 위로 터널처럼 무성하게 뒤덮고 있는 대나무 숲의 적과 청으로 대비된 색깔이 그 정신을 표출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 어색한 능의 모습에 좀 실망했다. 곳곳마다 나름대로 중국 삼국시대 분위기가 나는 거리로 재현해 놓으려는 듯 보인다. 특히 아무렇게나 어지럽게 내걸린 깃발, 가는 데마다 달린 현란한 홍등은 지나친 느낌이 든다. 너무나 티 나게 꾸며댄 것이 어색해 보인다. 암만 양보해서 봐줘도 내가 평생 10번 정도 정신없이 읽어온 삼국지연의의 배경, 그 장대한 촉한(蜀漢)의 그 성도는 아니었다. 더구나 한소열왕 유비의 기개와 정신, 제갈공명의 지략에 대한 기운과 느낌이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그 영웅들에 대한 인물됨에 지나친 경도(傾倒) 일변도(一邊倒)였던가. 나의 평생 로망이었던 그 영웅들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인물들의 상은 그냥 볼거리를 위해 만들어 세워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역력하다. 전반적으로 많이 실망이 된다. 나중에라도 사진 보면서 조용히 생각을 정리해볼 여유를 가져야 할 것 같다. 그래도 너무 급하게 돌아보는 바람에 중국의 영웅들 앞에 잠깐이라도 머리 숙여 추념하고 생각을 가다듬을 시간을 가지지 않아서 좀 아쉬웠다. 숱한 인파에 떼밀리면서 사진 찍으랴 가이드 설명 들으랴, 뒤죽박죽이었다. 앞으로는 좀 더 미리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하겠다. 다음 기회가 있다면 더 잘 공부해서 눈에 보이는 데서만 의미를 찾지 말고 보이지 않는 데서 바라는 의미를 찾아야 할 것 같다.
점심은 ‘흠선재(欽善齋)’ 식당에서 중국황제가 먹었다는 특선이라고 안내하는 약선 요리였다. 가이드는 괜찮다고 했지만 대해보니 역시 향신료, 기름이 많이 배여 있었다. 아쉽지만 음식의 절반도 넘기지 못했다. 이번 여행은 정말 현지식 일색이었다. 여행은 그 나라의 음식 문화도 철저히 맛보아야 한다는 나의 소신도 여기서는 무력해지는 것 같다. 현지의 음식 문화를 제대로 아는 것이 여행의 또 다른 의미라는 것을 제대로 알려주는 것 같았다.
드디어 인천공항으로 떠날 시간, 여행하는 도중에서는 때로 힘들고 어려워서 언제 이 여행이 끝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여행의 막바지가 되면 모두들 얼굴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다시 일상에의 귀환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살짝 암울해지는 것이다. 이른바 양가감정에 사로잡힌다. 대체로 사람이란 어떤 사안에 호불호가 딱 나눠지는 것이 아니라 이런 양가감정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인생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삶 자체는 정말 힘들고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다가도 인생의 막바지, 이승을 막상 떠나려 하는 순간은 본능적으로는 누구나가 피하려고 하지 않을까 싶다.
성도 공항에 도착해서 인천행 15:20 3U8903을 기다리는데 마음이 두근거리고 절망적인 감정이 앞서고 아득한 느낌이 든다. 비행기에 올라 좌석을 바꾸어 앉았는데도 그 시간이 정말 힘들게 느껴진다. 모두들 여독에 그냥 묻혀버리는 모습이다. 음악을 들어도 뭘 해도 잘 집중하지 못하겠다. 옆 좌석 한 사람이 수도권의 중등학교 교사 신분인 듯해서 잠시 대화를 걸어보려고 해도 그런 여력조차 없다. 이렇게 그냥 끝나 버리나 하는 아쉬움이 엄습한다.
인천 공항에 연착륙했다. 짐을 찾는 사이에 일행은 모두들 떠나면서도 보이는 족족 작별 인사를 잊지 않는다. 특히 85세 노익장 어르신은 일부러 내 곁에 와서 먼저 인사를 자청한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재회할 가능성 0.1%도 안 되지만 역시 헤어짐은 이렇게 담백하고 순수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 외 자주 대화 나누었던 ㅊㅎㄱ씨 등 면면이 모두 인사를 나누었다. 마지막으로 동행친구내외하고는 해단식 같은 걸 치러야 하겠는데 커피숍은 다시 올라가는 것보다는 편의점에서 바나나, 우유, 빵을 함께 나누면서 이번 여정에서의 무사 귀환을 자축했다. 그 동안 커피며 이것저것 우리가 더 많이 받는 것 같아서 이번엔 우리가 답례했다. 서로가 다소 안 맞은 부분이 있었지만 그래도 별 일 없이 여행 동행을 잘 한 것 같았다.
내려갈 차 시간 21:30까지 공항에서 기다렸다. 그 동안 왔다 갔다 하면서 음악도 듣고 스마트폰 동영상도 보면서 보냈다. 언제 봐도 자랑스럽고 멋진 인천 공항, 빠른 시일 내 더 편안해진 마음으로 다시 오고 싶다. 새벽 2시쯤 도착하리라는 예상을 뒤엎고 버스가 폭주하다시피 해서 24:40분쯤 도착했다. 집에 있는 둘째에게 톨게이트 통과해서 전화를 했더니 10분 지나서 나왔다. 기다리는데 날이 푸근해서 별 어려움은 없었다. 아이가 나와 준 것만 해도 고마울 따름. 이렇게 해서 나의 샹그릴라 방랑은 막을 내린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평생토록 찾아 헤맸던 티베트 장족 말로 '마음속의 해와 달'이라는 뜻을 지닌 '샹그릴라' 를 찾았던가. 그래서 마음의 평화를 얻었던가. 치유의 효험을 느꼈던가. 그들의 설산에서, 아크 떼가 노니는 고원의 겨울 마른 들판에서, 아니면 금색으로 번쩍 거리는 절집에서...... 어디에 간다고 해서 그것이 얻어진다면 우리 삶이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이 방랑으로는 내 마음속의 구원의 해와 달에 한 발짝이라도 더 다가갔다는 생각만이라도 들었다면 더 욕심 부릴 일은 없을 것 같다. [2014. 1. 25. 토. 흐림] 2021. 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