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난[운남, 云南]의 산채에 걸린 구름, 샹그릴라[香格里拉] 방랑기 3, '차마고도(茶馬高道)', '송찬림사(松赞林寺)', /멀리서 보면 마치 실낱같이 뚫어진 이 길에 목숨을 걸었던 그 옛 상인의 길..
청솔고개2021. 1. 23. 02:01
윈난[운남, 云南]의 산채에 걸린 구름, 샹그릴라[香格里拉] 방랑기 3, '차마고도(茶馬高道)' '송찬림사(松赞林寺)'
청솔고개
새벽 6시에 일어났다. 대략 다섯 시간은 잠잔 것 같다.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 7시에 식당에 가니 아직 차려지지 않았다. 7시 30분에 식사하고 8시 30분에 모이는데 아내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면서 설사가 심하다. 걱정이다. 그 때문에 출발이 10여분 늦어졌다. 일행들한테 미안하여 버스에 오르면서 ‘좀 늦었습니다.’하고 양해를 구했다. 아내도 나지막한 목소리로 양해를 구한다. 아내는 아침 식사 메뉴 중 콩국물이 좀 거북한 감이 들었는데 그게 미심쩍다고 했다. 샹그릴라 가는 도중 얼마 안 가서 들린 화장실에서도 또 심하게 설사하고는 배가 허하고 고파서 또 다른 사람에게 군고구마도 얻어먹고 휴게소 난전에서 사과도 샀다. 정말 못 말리는 아내다. 그래도 기가 빠져 정신 못 차리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오늘 이튿날 여행날씨는 만점이다. 마치 늦가을처럼 맑고 쾌적한 기분이 든다. 얼마 전 올해 1월 2일 개통된 고속도로로 해서 가니 시간도 많이 절약되었다고 가이드는 자랑한다. 고산지역이기 때문에 사과, 복숭아가 맛이 있다고 했다. 9월에는 사과 10월에는 수확되는 복숭아는 정말 달아서 ‘설도’라고도 한다고 했다. 아마 고산의 건조한 지역이라서 그럴 것 같았다. 우리 청송 산 사과가 생각이 났다. 이정표에 대리 188km가 기록되어 있다. 직진하면 곤명이라고 했다. 제임스 힐튼이 쓴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진짜 샹그릴라는 매리 설산 아래 명룡촌 마을일 것 같다고 했다. 그 곳에는 한 10여 집이 산다고 했다. 가이드가 작년에 직접 가 보았다고 했다. 문명의 때가 묻지 않고 정말 쾌적하고 행복한 곳이라고 자신이 안내한 경험을 들어 말했다. 꼭 한 번 들리고 싶다.
오른쪽은 어제 갔던 옥룡설산의 옆얼굴과 뒤 얼굴이 자꾸 따라온다. 왼쪽은 하바쉐산[哈巴雪山 합파설산]이다. 그 사이 협곡이 바로 후탸오샤[虎跳峽 호도협]이다. 드디어 호도협에 이르렀다. 가이드는 3,800여 미터 협곡으로 세계 3대 협곡에 든다고 했다. 물색은 비취색이다.
우리 투어이천 팀 8명과 어르신 한 분은 차마고도(茶馬高道)트레킹을 체험하기로 합의하고 선택 관광을 신청하였다. 사륜구동 지프차와 봉고차로 목숨 건 승차를 통해 중도객잔까지 가니 손에 땀이 빠작빠작 난다. 중도객잔의 풍광과 분위기가 정말 멋졌다. 많은 여행가들이 네 벽면과 창문틀까지 자신의 흔적을 남기며 추억을 증명하고 있었다. 우리도 ‘20140123 cyc kos’라고만 간단히 흔적을 남겨 보았다. 화장실 남쪽 틈을 통해서 보는 옥룡설산의 풍광은 화장실 문에 새겨 놓은 '세계에서 제일 멋진 화장실'이라는 문구 그대로 우리를 압도하는 것 같았다. 중도객잔을 벗어나 조금 걷다가 저 옆 아래로 난 우리가 올라온 길을 보니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위험천만한 길이었다. 알고는 도저히 못 올 것 같았다. 희끄므레한 길이 마치 길게 이어진 뱀 허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아까 창쪽에 앉은 아내가 가끔은 소스라치게 놀라던 게 떠올랐다.
중도객잔에서 관음폭 지나서 거의 두 시간 가까이 걸었다. 마주치는 관음폭은 왼쪽 합파설산에서 내려오는 물로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 설산 중간을 걷고 있는 셈이다. 지금 여기 높이는 2,400m 정도, 그러나 고산증 같은 건 없다.
그 옛날 티베트 사람과 중국 사람이 목숨 걸고 하염없는 세월에 걸쳐 이 길을 걸어서 서로 필요한 생존을 거래했다는 곳. 오늘은 날이 따스하고 아래 깊이도 모를 협곡에는 시퍼런 금사[金沙 진사]강의 물이 포효하고, 오른쪽으로 계속 우리를 따라오는 옥룡설산의 뒷모습은 강렬한 아침 역광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신이하게 뿜어져 번져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이 안개인지, 구름인지 때아닌 봄날의 아지랑인지 모르겠다. 이 길을 걸으면서 우리가 할 일은 길 가다가 서고, 또 서로를 불러보고, 추억을 쌓고, 꿈을 모으는 것이다.
멀리서 보면 마치 실낱같이 뚫어진 이 길에 목숨을 걸었던 그 옛 상인의 길을 우리는 웃으면서 걸으니 세상은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요령 소리가 들려서 보니 맞은편 길 좀 위에 말 두 마리가 풀을 뜯고 있다. 야크 똥인지 말똥인지 모를 똥무데기가 군데군데 버려져 있다. 1월인데 이 길을 걸으니 따스하기도 하고 더러는 덥기까지도 하다. 한참가니 폭이 1미터도 안 되어 보이는 길은 바위를 그대로 파내서 만든 것이다. 키 큰 사람은 머리가 천정에 닿을 것만 같다. 중국 황산에서 보았던 그런 형태다. 오른 쪽은 천인단애, 그 난간은 그냥 주어다 놓은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걸쳐 놓았는데 그 사이로는 이 호도협의 밑바닥 금사강의 포효하는 물소리가 아득한 메아리로 돌아나온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합파설산의 꼭대기가 거대한 바위로 된 성채처럼 버티고 있다. 그 골에는 희끗희끗 눈이 고여 있다. 겨울 속에 봄이 온듯, 흰 동백꽃, 노란 산수유꽃 같은 것, 화사하기도 하고 앙증맞기도 한 꽃들이 숨었다가 나타난다. 마른 풀 사이 선인장은 그 푸르름과 가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우리의 정선 아리랑을 태동케 했던 강원도 두메 산길은 여기에 비하면 양반인것 같다. 다만 기울기가 50도는 더 돼 보이는 이 곳 산마을에도 파릇파릇한 겨울 채소는 밭에서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여기도 생활의 치열한 현장이다. 그늘에 들면 시원하기도 하고 서늘한 느낌이 드는 이 길은 정말 내 생애에서 걸어 본 특별한 의미가 있는 길이다.
중도객잔에 다시 돌아와서 마당을 보니 호박 덩이, 호박 말랭이 등이 정겹게 널려져 있어 마치 우리네 가을 촌집 같은 분위기다. 우리는 호도협 입구까지 지프차에 정말 목숨 걸다시피 실려 온 것 같았다. 가드레일 하나 없는 급경사를 식사 시간에 좀 늦었다고 막 달리어 빼는 기사한테는 약속이나 하듯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토종 오골계를 삶은 특식이라면서 이는 차마고도 트레킹에 참여한 사람들에게만 주는 거라 했는데 맛이 괜찮았다. 동행한 85세 되는 최고령 어르신이 오늘 고맙다고 하면서 맥주 두 병을 내셨다. 고맙다. 정말 건강하게 사시는 분이다. 나도 이 어르신을 보면서 그 나이까지 여행할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을 다독여 본다. 아내가 비로소 다른 반찬 맛있게 먹는 걸 보고 정상을 회복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다행이다. ㅌㅇ씨도 걱정하고 다른 분 한 둘도 걱정하는 인사를 건넨다. 고맙다.
식사하고 나니 1시 40분, 좀 늦은 식사다. 가이드는 이제는 일로 샹그릴라로 2시간 달려야 한다고 한다. 가면서 무강하 상류를 지나는데 정말 물빛이 옥빛이었다. 이 길은 운남에서 티베트로 가는 유일한 길인데 6월에서 9월 기간에는 갖가지 기화요초가 현란하게 피어 정말 아름다운 꽃길이라고 했다. 특히 가장 눈에 많이 띄는 꽃은 두견화라고 했다. 언제 다시 한 번 또 올 건가, 내 생애에서.
가이드는 중국에 대해서 계속 설명한다. 1, 2, 3, 4, 5만 알아 놓으면 된다고. 1은 한 나라(중국), 2는 특별행정구인 홍콩, 마카오, 3은 23성, 4는 직할시인 북경, 천진, 상해, 중경, 5는 자치구인 내몽골, 신장위굴, 명화회족, 광서장족, 서장(티베트)인데 샹글릴라는 서장자치구 산하 디경장족자치주에 해당한다고.
티베트족들의 생활 풍속이 고스란히 차창 밖으로 펼쳐진다. 야크, 말, 돼지 등을 기르는 초지 너머는 눈 덮인 연봉들이 아름답다. 1997년 늦가을 초겨울에 여행한 알프스 산록 같은 느낌이 든다.
드디어 송찬림사에 도착했다. 티베트 라사의 포탈라 궁에 대비해 작은 포탈라 궁이라고 하는 이곳은 이름도 처음 듣는 설산들에 싸여 있다. 왼쪽 너머도 설산이고 오른쪽 멀리도 설산이다. ‘雪山’이 주는 신비하고 경건하며 외경감까지 느끼게 하는 이곳이 정말 특별하다. 참 좋다. 지금까지는 불편한 대로 허리와 하초가 그런대로 잘 받쳐준다. 더 악화되기 전 조금이라도 더 걸으면서 여행을 이어가자고 하는 게 이번 여행의 또 다른 목적 중 하나다. 더 못 마시게 되기 전에 한 잔이라도 더 마시고 더 즐거운 기분을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다. 계단을 오르는데 많이 힘들 텐데 그나마 다행이다. 모두들 벌써 고산증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여행지에서 여러 가지 많은 것을 알게 되었지만 특히 송찬림사는 티베트 불교인 라마교의 사원이고 일종의 성역이며 특히 천장(天葬) 장례 의식이 독특하고 사원 앞에서 멀리 희미하게 울타리 쳐진 부분이 천장 장례 터였다는 가이드의 말이 신기하기까지 하다. 아니나 다를까 몇몇 까마귀들이 도막 난 사체에 보릿가루를 묻힌 걸 탐하여 이렇게 선회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매장, 화장, 수장, 조장, 자연장 등의 장례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어두컴컴한 대웅전에 들어가니 붉은 옷을 입은 승려가 앉아서 어떤 신자를 앞에다 두고 뭐라고 중얼거리며 축원을 한다. 대규모로 현란하면서도 압도적인 느낌을 주는 단청과 온갖 벽화, 탱화를 보면서 천천히 돌아 나왔다. 나오는 출구 왼쪽에 큰 마니차가 달려 있었다. 아내와 나는 마니차 줄을 잡고 천천히 돌리면서 뭔가 염원했다. 난, 우리 가족 중 힘든 상황에 있는 둘째, 첫째 동생, 어머니, 아내, 그리고 나에 대해 지금부터는 모두들 좀 더 마음이라도 편해지도록 빌었다. 이런 마음의 평화가 보전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지나친 욕심인가. 괜스레 눈시울이 화끈거린다. 사원 앞 광장은 무척 넓었는데 어미돼지 와 새끼돼지 서너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고 계단에는 길 개인지 들 개인지 누렁이, 깜둥이 서너 놈이 한가롭게 누워있다.
동티베트의 하루 해가 저물어 간다. 해발 3,569미터 위치한 납백해는 겨울이라 물이 말라서 가까이 가보지는 않고 가이드가 대략 위치만 알려주었다. 그 호수는 그냥 광활한 풀밭이고 수많은 아크떼들이 마른 풀을 뜯으면서 놀고 있었다. 근처에 다가온 야크 몇 마리와 같이 인증사진을 찍었다. 가까이서 보니 큰놈은 거대한 몸집을 하고 있다. 근처에 있는 티베트 장족 마을을 방문했다. 집에 들여다보기 전에 근처 초지에 방목하고 있는 야크, 말, 소 등 목장을 먼저 보았다. 정말 풍요로운 샹그릴라 땅이 실감난다. 장족 주택은 꽤 규모가 컸다. 2층이었다. 육류를 매달아 말리는 광경이라든지 집안 벽을 장식하고 있는 조각 솜씨라든지 하는 것을 볼 때,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고 있는 낙후된 곳이라는 것은 선입견이었다. 쭉 둘러보고 차를 다려 먹는 방에 들어가서 수유차를 대접받았다. 야크 우유에 버터를 녹여서 만든 것으로 구수한 게, 먹을 만했다. 몇 잔을 거푸 마셨다. 약간 걱정도 된다. 혹시 또 뒤탈이 날까봐서.
오는 걸음으로 지난 1월 11일 대형 화재로 옛 건물 100여채가 불탄 샹그릴라 고성을 잠시 둘러보았다. 이곳은 1300년의 역사를 지닌 티베트족의 고성으로 차마고도의 중요한 경유지였으며 동티베트 여행의 중심지 였는데 이번 화재로 손실이 크다고 한다. 가이드는 화재로 원래 코스에는 없었지만 그냥 불 난 현장이라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 들렀다고 한다. 날은 어둑어둑하고 불내가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은 골목길은 화재 진압으로 인한 물이 흥건히 고여있다. 그 옆에는 소방차가 흉물스럽게 지키고 있다. 가는 곳마다 다 타버린 건물 잔해만 어지럽게 널려있다. 야트마한 언덕에 있는 입구 건물을 거쳐서 동네 한 바퀴 둘러 보는 기분으로 여행했다. 아쉽다.
저녁 식사도 역시 현지식이다. 내가 술 두 병을 내 놓았다. 이제 9명 테이블은 안면도 트고 서로 여행 이야기를 많이 주고받는 사이다. 좋다. 난 술을 두어 잔 정도 했는데 여기가 3,600미터 정도라 힘들 거라는 가이드 말에 더이상의 술은 삼갔다. 특히 동행친구 ㅊㅅ의 재빠른 컨디션 난조 신호가 모두들에게는 경고가 된 셈이다. 이 좌중에서도 역시 팔순 중반의 어르신이 대화의 중심이 된다. 이 분은 여행을 위해서 지금도 세계 오지여행을 감행하고 있으며 중국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본격적인 중국 여행을 하기 위해서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여기 와서 시험적으로 식당에서 중국어를 써 보았더니 통한다면서 아주 신나하고 자랑스러워하신다. 아내는 어르신의 이러한 노익장, 탐구정신을 롤 모델로 삼겠다는 말씀을 드린다. 식사 자리가 파할 무렵 ㅊㅅ이 이제 명리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까 모두들 흥미 있어 한다. ㅊㅅ이 좀 회복이 되니 다행이다. 고산병은 체력보다 체질이 더 문제인 것 같다고 모두들 이야기한다.
호텔 방에서 인터넷 연결을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안 된다. 그래서 오늘 여정을 기록하고 나니 12시 15분. 이렇게 내 자신을 학대하듯 기록하면 마음이 좀 가라앉고 안정된다. 오로지 이렇게 기록할 때만 그렇다. 그래도 그게 어디! 내 영혼도 이 밤 잘 휴식하길, 오늘 긴 날도 나 따라 다니느라고. 하루도 고생했다고 격려해준다. 히터를 넣었는데도 잘 작동이 되지 않는다. 어느 호텔 방 할 것 없이 여긴 냉장과 난방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 같다. 여정을 기록한다고 앉았으니 방안 기운이 약간 선득거린다. [2014. 1. 23. 목. 맑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