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旅情)

윈난[운남, 云南]의 산채에 걸린 구름, 샹그릴라[香格里拉] 방랑기 2, '위롱쉐 산'(옥룡설산, 玉龙雪山)/가다가 못 가면 눈 더미를 피해 바위틈에라도 묵으며 설산 고행을 통한 깨달음도 구해보..

청솔고개 2021. 1. 22. 02:26

윈난[운남, 云南]의 산채에 걸린 구름, 샹그릴라[香格里拉] 방랑기 2,  '위롱쉐 산'(옥룡설산, 玉龙雪山)

                         

                                                                                            청솔고개

   새벽 3시 30분에 휴대폰 모닝콜,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샌 적은 최근에 없었다. 몸도 마음도 무겁다. 휴대폰에서 모차르트 곡을 이어폰으로 들으면서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추구해 본다. 지금 상황으로서는 이게 최선의 방책일 뿐. 4시 50분까지 호텔 앞에서 아침도 못 먹고 빵 봉지 하나 얻어서 컴컴한 호텔 로비를 거쳐 버스에 올랐다. 다시 성도 공항으로 갔다. 새벽 7시 발 여강행 국내선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다. 그래도 좀 덜 지루한 탑승 수속이 계속된다. 흰죽이 포함된 빵 위주의 기내식도 제공되었다.

   여강으로 다가갈수록 높은 산악지형이 아침햇살에 드러난다. 난생 처음 보는 신비로운 산악의 새벽 조망이다. 여명의 빛이 차차 밝아질수록 더욱 놀랄만한 광경이 펼쳐진다. 1997년도 유럽 갈 때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보았던 이 산군들의 풍광을 좀 더 가까이서 본다는 게 다른가. 눈을 이고 있는 저 연봉, 안개로 덮여있는 골짜기를 휴대폰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나중에 볼 것이 기대가 된다.

   여강 공항에 아침 8시 25분에 정시 도착했다. 이제 중국 국내선도 시간은 잘 지키는 것 같다. 몇 차례 겪어 보았지만 특히 동방민항은 좀 심했던 것 같다.

   먼저 ‘여강속하고진’ 마을을 찾았다. 독특한 나시족의 문화가 배어있다. 마을 군데군데를 흐르는 개울물이 너무 맑았다. 사전 여행안내서에는 없던 곳인데 여행사에 아마 얼마 전에 불타버린 중전 고성 대신 관람하는 코스 같았는데 확인은 하지 않았다.

   나시족 용모의 특징은 얼굴이 검고 모두 선한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이라고 가이드가 설명해 준다. 마을 앞에는 배추가 서리를 맞아서 더욱 새파란 모습을 띠고 있다. 옥룡설산의 물이 흘러들고 쓰며들어 만들어진 옥수채는 여강의 발원지이며 나시 문화의 발원지라고 안내서에 정의되어 있다.

   이어서 나시족의 문화 특히 언어와 문자, 종교를 보여준 ‘백사벽화’는 동파교 화가들, 중앙 평야에서 온 도교 예술가들, 티베트 지역의 라마교 화가들이 그린 벽화다. 그래서 불교, 도교, 티베트 불교 등 서로 다른 종교가 하나의 회화 양식에 조화롭게 융합되어 있다.

   멀리 옥룡설산은 흰 눈을 이고 있는데 여기는 가는 데마다 흰 눈보다 더 순정한 매화가 만발해 있어 그 향에 마치 낮술을 마신 것처럼 취할 것만 같다. 계절은 1월의 한가운데도 뜨거운 홍매화의 열정에 유혹될 것 같다.

   이어서 일정에는 없는 나시족의 종교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만신원’을 보았다. 중국 당국의 소수민족 보존의 노력은 가상하다만 너무 모든 게 관광상품화되어 가고 있어서 오히려 안쓰럽다. 이런 전시물보다는 광활, 호탕해 보이는 주변의 자연 경관에 더 끌린다. 내리비치는 햇살이 따스한 봄볕 같다. 따끈하기도 하다. 비로소 내가 정말 멀리 이국의 한 광야, 산록을 방랑하고 있음을 실감하겠다. 이따금 불어드는 춘풍은 마치 우리나라의 제주도 한겨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점심을 먹었다. 닝닝하고 근근한 중국 음식이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하였다. 오전엔 기분이 많이 전환되어서 다행이었다.

   오후엔 기대하던 옥룡 설산을 향했다. 숲속으로 난 길 너머 너른 평원이 펼쳐 있고 왼쪽 차창으로 보이는 옥룡설산의 모습은 점점 다가온다. 그 아래로 평화롭게 펼쳐진 고원지대, 난 계속해서 사진 찍고 동영상까지도 찍어보았다.

   인상여강쇼는 스케일이 크다. 장예모 감독의 대작이다. 이렇게 장대한 야외무대를 본 적이 없다. 이렇게 많은 말들과 사람들이 동원된 공연도 본 적이 없다. 작품이 주는 감동보다는 500명의 지역 소수민족 출연자 뒤로 펼쳐지는 광대무변한 5,000여 미터 높이의 설산 배경이 압권이었다. 멀리서 설산을 바라보니 오늘따라 유난히 진한 청옥색 하늘빛이 산마루를 물들여 푸르스름하게 빛난다. 거대한 무대의 색깔은 짙은 황토색이다. 하늘의 옥색과 땅의 황토색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다만 쇼의 모든 대사와 자막이 중국어 일변도라 많이 답답했다.

   인상여강쇼를 보면서, 그 속에 몰입하여 마음을 진정하려는데 또 마음의 가시가 하나가 나를 절대 절망으로 내 떠미는 것 같다. 고비마다 가슴이 녹아 내려앉는 느낌이다. 나도 모를 진한 한숨이 나를 내 몬다.

   쇼 관람하는데 거의 잠을 못 잔 아내는 자꾸 졸면서 머리가 내게로 다가온다. 나도 잠시 눈이 감긴다. 엊저녁 거의 한 숨도 못 잤다. 엊저녁에 억지로 눈감고 한 시간 정도 잠을 청하면서 피로를 줄이려고 애썼으니 뜬눈으로 보낸 건 아니지만 많이 피곤함을 느낀다.

   관람을 마치고 셔틀버스로 옥룡설산 케이블카 타는 곳으로 이동했다. 케이블카는 3,200미터 높이에 위치해 있 운삼평(雲杉坪)이란 고원지대로 날라다 준다. 이름 그대로 구름 위에 원시림 삼나무 지대다. 나온다.

   이곳은 애틋한 나시족 사랑 이야기가 깃들어 있어서 나시족 처녀 총각이 사랑을 나누는 곳이라고 했다. 작은 정자에는 영원한 사랑의 약속을 적은 나무 팻말이 어지럽게 달려있다. 진정한 사랑이라면 한 마디 사랑의 언약으로도 지켜져야 할 텐데 우리의 사랑이 얼마나 지켜지기 어렵고 깨지기는 쉬운 것이라서 이렇게 사랑을 칭칭 동여매듯 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는 5,000미터 급 옥룡설산(玉龍雪山)이 나를 압도한다. 나의 가슴을 막어선다. 1월 한겨울인데 설산은 역광 햇살에 번쩍거리고 하고 번들거리기도 한다.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길옆에도 눈 더미가 푹푹 쌓여 있다. 산행 좋아하는 나는 여기서 저 5천 미터 급 설산을 당장이라도 오르고 싶다. 가다가 못 가면 눈 더미를 피해 바위틈에라도 묵으며 설산 고행을 통한 깨달음이라도 구해보면서 선인들이 어찌 광야에서나 설산에서 유리 방랑하곤 하였는지 그 심중에라도 들어가 보고 싶다.

   가는 데마다 흙으로 되어가는 몇 아름 될지 모르는 삼나무들이 즐비하게 누워 있다. 삼나무 우거진 그늘에 들어가니 칠흑 같은 어둠에 묻히는 것 같다. 우리는 이 평원을 산책삼아 한 바퀴 돌아내려 왔다. 평원 주변에는 키 큰 삼나무들이 짙푸른 생명력을 시위하고 있는 것 같다. 오래 걷다보니 다리가 좀 저렸지만 견딜 만했다. 사는 동안은 정말 좋은 기억, 좋은 생각만 남기자. 후회하지 않도록.

   저녁 식사 때 반주로 소주 몇 잔 얻어마셨다. 전신마사지도 꽤 좋았다. 강도가 있었다.

   노트북에 인터넷 케이블을 연결해서 아내하고 일일드라마를 보려는데 전송 속도가 느려 터져서 거의 두 세배 시간이 소요된다. 와이파이지역임을 확인하고 첫째한테 메시지라도 전하려 했는데 너무 늦은 시간이라서 내일 아침에 전하기로 했다.

   이 밤을 난 어떻게 보내야 하나? 불면의 밤이 될 것 같아서 책이라도 읽을까. 현실적인 고민에 맞닥뜨리면서도 헝클어진 이런 저런 것들을 정리해서 그런지 마음은 다소 안정되는 것 같다. [2014. 1. 22. 수. 맑음]

       

2021. 1.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