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旅情)

물과 원시림, 꽃과 나비의 축제, 남지나해 여행기 4, 밤에 홍등을 단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오르다, 귀환/물이 뚝뚝 듣는 스콜에서 상상되는 어떤 에로티시즘의 극치, 이 모든 것이 열대가 나..

청솔고개 2021. 1. 29. 00:54

물과 원시림, 꽃과 나비의 축제, 남지나해 여행기 4, 밤에 홍등을 단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오르다, 귀환

 

청솔고개

   아쉬운 마지막 날, 왠지 이때만 되면 우울하다. 마치 축제의 마지막 날을 맞이하는 기분이다. 또다시 덧없이 반복되는 일상으로 복귀해야한다는 삶의 무게 때문인가. 싱가포르 마지막 날은 시내 관광을 했다. 센토사 케이블카 코스는 상하(常夏)의 나라다운 볼거리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녹지대가 무성한 시가, 바다를 매립해서 숲을 조성한 후 다져지기를 기다렸다가 최소 30년 지나서야 개발하고 건물 짓는 이들의 원대한 도시계획이다.

   점심 식사는 ‘steam boat’이라고 하는 이름이 붙은 요리로 했다. 싱가포르 전문 요리점 마리나 롱비치 식당에서 이 메뉴는 샤브샤브 요리의 확대판이라 할 만하다. 2시간이나 걸리는 긴 코스 요리라는 점이 특이했다. 아내는 그래도 태국의 메콩강변 샹글리제 호텔의 씨푸드 만한 게 없다고 했다. 신문 여행안내에서 처음 본 steam boat는 이것이 요리 이름이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혹시 해변을 달리는 특별한 보트 관광 상품인 줄로 알았었다. 역시 한 번 실제로 체험해보는 것이 맘속으로 백 번 짐작하는 것보다 나은 법이다.

   싱가포르의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수많은 홍등이 달린 유람선 타고 휘황한 별들처럼, 혹은 터지는 폭죽처럼 화려한 야경 투어였다. 강을 달리는 배들은 일부러 빛을 죽여서 캄캄하다. 강물은 칠흑 같다. 대신 강물에는 주변에서 반사되는 세상의 온갖 빛들이 번들거린다. 내 눈이 현혹된다. 나는 가져간 카메라를 최대한 야간 촬영 모드로 맞춰서 셔터를 눌러도 아예 반자동 셔터가 눌러지지 않는다. 생천 처음 보는 이 빛의 향연을 담고 싶었지만 안 되었다. 육안으로 감지하는 빛은 현란 그 자체였지만 카메라가 인지하기에는, 작동하기에는 훨씬 약한 것이다.

   이 가운데를 누비는 갖가지 형상의 홍등들의 행렬. 그래서 ‘홍등가’라는 말이 무색하다. 이 모든 것에 일단 나는 그대로 매료 된다. 어둠과 빛의 현묘한 사술(詐術)같다. 이 은성한 어둠과 빛의 축제의 마지막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속으로 박수를 더 세게 쳐야한다고 생각했다. 허나, 흘러나오는 악곡들이 너무 중국 풍 애조를 띠고 있다. 초현대적인 이 도시의 분위기와 야경의 휘황찬란함과는 잘 어울리지 않은 것 같다. 한편 중국의 자본과 인력이 이 나라를 거의 지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가이드가 이 선택 프로그램을 추천하는데 가격이 너무 세서 모두들 반응이 없어서 호응을 하지 않았다. 어떤 대단한 야경이기에 이렇게 비싼 거냐 식이었다. 그래도 지금 마치고 나니 참 잘 참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남지나해 노정도 막바지로 향한다. 축제 뒤의 허탈감도 이보다는 더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길고 긴 생애의 여정에서 촛불이나 별빛의 한 초점처럼 그 정수(精髓)만이 모아진 것이 바로 여행의 한 순간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여행 역시 내 생애의 일상이 한 초점에 그대로 정지하는 듯한 짜릿한 경험, 아주 판타스틱한 순간순간들이었다.

   불타는 태양, 꽃과 나비, 원색의 새들의 울음의 어울림, 처녀림 그대로의 열대 우림이 풍기는 원시적 생명력, 물이 뚝뚝 듣는 스콜에서 상상되는 어떤 에로티시즘의 극치, 이 모든 것이 열대가 나에게 던지는 어떤 강렬한 메시지 같다. 나는 문득 구조주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가 생각난다.

   이런 상념을 다시 주어 담으면서 버스는 어느덧 동남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창이 공항에 도착하였다. 안녕,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여! [2001. 1. 29. 월]

   새벽에 입국해서 공항버스 기다려서 집에 도착하니 13:00이다. 부모님들, 집안 어른들, 학교 업무와 상황 등, 모든 게 궁금하다. 걱정도 된다. 일상에의 복귀를 실감하겠다.

   아니나 다를까, 막 도착한 후 직장 동료의 전화 한 통이 다소 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이런 경우, 상대방의 입지는 살려주되, 내가 좀 더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는 걸 실감했다. 앞으로 남은 살다보면 이보다 더한 입장에 처하는 일이 어디 한두 번이겠는가.

   오후 아내와 함께 공원을 산책했다. 철은 한겨울이지만 마음으로는 정말 포근한 고향의 품을 느낀다. 이런 점에서 일상으로의 귀환도 좋다. [2001. 1. 30. 월]      2021. 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