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와트와 하롱베이 여행기 3/ 씨엠립 근교, 톤래샵 호수, 서방의 시각으로 왜곡되어진 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가이드의 역설이 내내 목에 가시처럼 걸린다
청솔고개2021. 2. 1. 22:55
앙코르와트와 하롱베이 여행기 3/ 씨엠립 근교, 톤래샵 호수
청솔고개
여행 3일째다. 아침부터 무거운 마음으로 시작한다. 기분이 많이 찜찜하다. 그래도 여행자의 아침은 늘 설레고 희망적이다. 1층 식당에서 호텔식 블랙퍼스트는 항상 여행자를 들뜨게 한다. 이런 기분이 난 참 좋다. 10여 년 전, 아직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인도네시아 바탐 섬의 한 리조트에서 보낸 2박 3일, 아침마다 호텔 식당엔 시원한 열대림의 그늘이 드리워지고 원색의 열대 꽃과 과일은 이국의 정취를 돋우는데, 커튼이 쳐진 호텔 식당 창가에서 마시는 모닝커피가 주는 이국, 아침의 그 신선한 분위기. 그런 여행길의 낭만이 늘 상기되는 것이다.
오늘은 씨엠립 근교 여행이다. 톤래샵 호수 가는 길은 아직 개발이 덜되어 자연과 순수의 캄보디아 속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이곳은 캄보디아에서도 한국의 NGO들이 가장 많이 찾아와서 각종 봉사활동을 하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선교사 단체, 다일공동체, 국민은행 등에서 많이 활동한다고 한다. 좋은 일을 많이 베푸니 이 말을 듣는 나도 기분이 좋다.
이 나라는 천혜의 자연조건으로 3 모작의 쌀을 생산한다. 이런 땅이 악명도 높은 ‘킬링필드’라는 영화의 배경이며, 인류 역사상 미증유의 참혹한 비극의 현장이었다니 그 순수와 자연이 무색한 것 같아서 가슴이 아프다. 나도 그 영화를 본 적이 있었는데 아카데미 3개 부분 수상작이라 해서 결코 그 비극성이 미화되고 희석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영화를 통해서 비극적 참상이 고발되는 효과도 있겠지만, 곱지 않은 그 ‘살육의 땅’이란 제목의 영화가 결코 아무리 수작이라고 하더라도 그럴수록 그 비극성은 더 고조되는 것이다. 한편 이 영화는 서양인의 우월성을 바탕으로 한 시각에서 문제를 보고 있어서 그 본질이 많이 왜곡되어 있다고도 했다. 돌아오는 길에 킬링필드의 유골이 모셔진 절을 다시 찾았다. 몇 년 전 다른 모임에서 여행 왔을 때의 기억도 새롭다. 다소 조악해 보이는 금색 칠이 입혀진 절의 외양과는 달리 그 내부에는 세기의 비극이 안치돼 있다. 좀 더 자세하고 철저히 공부한 후 서방의 시각으로 왜곡된 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가이드의 역설이 내내 목에 가시처럼 걸린다. 서방의 개입으로 발생한 1차 킬링필드는 2차 킬링필드를 유발했다는 것이다.
나의 여행자의 수첩에는 톤레샵 호수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황토 빛 물, 새까만 아이들, 굵은 구렁이를 감은 소녀, 모두들 악동이 돼 눈을 두리번거린다. 아이가 느닷없이 뒤로 와서 우리 일행들 등 뒤에 붙어서 안마를 한다. 이 아이들이 근처 선장의 아들이라는 말도 있다. 제 아이들을 이런 생업 전선에 내모는 아버지가 과연 있을까 싶다. 정말 그렇다면 그 아비의 심중은 또 어떠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목에 어른 장딴지만 한 구렁이를 목에 걸고 있는 여남은 살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포함된 보트 족이 거의 200m나 줄곧 따라온다. 도대체 뭐 하려는 지도 모르게 따라오다가 우리가 아무 반응이 없으니 그냥 가버린다. 유적지에 주차하는 장소면 동정을 호소하려는 듯한 눈망울을 굴리며 ‘원 달라, 원 달라’ 하면서 어김없이 나타는 아이들. 종일 뙤약볕에 그을린 새까만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밟힌다. 목소리는 또 왜 그렇게 힘이 없게 들릴까. 제대로 못 먹어서 그런가. 이 아이들은 킬링필드의 비극성을 알고 있을까. 그 비극성 때문에 이렇게 수상 가옥을 아직 떠나지는 못하는 것일까.”
2009년 1월 처음 방문한 톤레샵 호수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다만 황하나 장강처럼 도도한 물빛만 넘쳐날 뿐, 그때, 수상 가옥 교회에서 일행 중 한 동료가 장로직으로서 기도를 올리던 그곳은 기억이 없다.
근처 공원에 뭔가 과일 같기도 하고 휴직 같기도 한 게 걸려 있다. 자세히 보니 박쥐 떼다. 높이도 모를 열대나무 위에 거꾸로 매달려 있다. 처음 보는 광경이다. 여기서도 온갖 열대 꽃이 화사하게 나를 반긴다.
하루 종일 캄보디아 씨엠립의 속살을 들여다보다가 지금은 현지 시간 19:40, VN으로 하노이 출발 직전이다. 오늘 일어난 일과 정경을 떠올려 본다. [2013. 1. 15. 화. 맑음] 2021. 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