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3대(三代)의 중국 주자이거우[九寨溝 구채구] 동행기, 제4일
청솔고개
여행 4일째, 이제 전일정의 과반이다. 아버지는 당초의 우려와는 달리 잘 견디신다.
현재 시간 아침 7시 40분 출발. 새벽 같이 아침을 먹고 아직 미명이 걷히지도 않은 호텔 로비에서 짐을 끌고 버스에 탔다. 주변은 여전히 어둠으로 꽉 차 있다. 주자이거우[九寨溝 구채구] 시가 왼쪽에 송성가무쇼 공연장이 보인다. 중국인 특유의 과장과 현란함이 덧씌워진 채색과 문양이 이제는 좀 익숙해진다.
오늘의 여정은 몇 곳을 거쳐 종일 청두[成都]로 가는 길이다. 끝없이 이어진 눈길이다. 밤새 눈이 더 온 것 같다. 설산 첨봉마다 햇살이 비쳐 번쩍거린다. 설산의 해맑은 얼굴을 보니 내 마음도 밝아진다. 천인단애(千仞斷崖)를 마주하니 문득 내가 여기서 앙불괴어천(仰不愧於天), 부부작어인(俯不怍於人)의 심경이 된다.
아버지는 피곤하신 듯 주무신다. 아이도 눈을 감고 미동도 하지 않는다. 차 안은 며칠 동안의 여독의 누적으로 미동도 하지 않고 침묵에 싸여있다. 나는 이런 침묵이 좋다. 내 맘껏 순간순간 차창을 스쳐가는 풍광을 눈에 더 집중해서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순간의 감동, 감성을 더 잘 붙잡을 수 있다. 이 설경, 설산에 나는 눈을 한 순간도 떼지 못할 것 같다. 놓치고 싶지 않는 간절함이 넘친다. 마음과 눈으로 파촉(巴蜀) 삼만 리의 초봄을 스케치한다. 유채와 매화가 점점이 수를 놓고 있으니 수채화나 담채화가 적절하지 싶다. 역시 생각과 취향은 각기 다른 법. 3천 미터보다 더 높은 이곳은 곳에 따라 나무 한 그루 없는 짙은 갈색이나 누런 황무지나 사막 같은 언덕이 이어진다. 이런 곳은 무척 비현실적이고 낯설다. 어떤 외계인 듯도 하다. 그 뒤로 톱날 같은 설산이 멀리 보이고 중간에는 동티베트 특유의 침엽수 군락의 산록이 풍요롭다.
11:20, 오래 전 대지진으로 골짜기 아래가 막아져서 천연 호수가 된 접계해자에 도착했다. 내려서 휴게소에 들렸다. 장족인 듯 한 세차하는 사람이 잽싸게 차에 달려 차를 씻는다. 설산 백설보다 더 새하얀 털을 잘 가꾼 잘생긴 야크들이 사진의 모델이 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점심은 구채주점이라는 식당에서 소고기 넣은 김치찌개로 아주 맛있게 먹었다. 반주도 한 잔 했다.
계속 이어지는 꼬불꼬불 U턴 길이다. 이 길이 옛 시에 나오는 파촉 삼만 리 길인가 보다. 높은 언덕길에서 보니 곳곳이 그 옛날 촉한의 성채답게 천혜의 요새가 됨직하다. 삼국지에 평생 열광하였던 나는 여기 지나칠 때마다 유황숙이라고 불리었던 유비가 기거하던 곳이 구체적으로 어딘지 궁금했다. 유비가 운명한 곳은 보낸 곳은 백제성으로 기억하고 있다. 위키백과에서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바이디성(白帝城) 또는 백제성은 중국 쓰촨성 충칭시 펑제현 동부의 장강 북부 연안에 있는 지명이다. 촉한의 황제인 유비가 이릉 대전에서 오나라에 패해 이곳으로 피신하여 계속 머물렀다. 임종 직전 유비는 이곳의 영안궁(永安宮)에서 제갈량에게 후사를 맡긴 뒤 병사하였다.”고.
황룡구가 여기서 왼쪽으로 40분 정도 가면 된다고 한다. 거기는 4천 미터 급 산록이 즐비하다고 한다. 미리 알고 왔지만 겨울 시즌에는 탐방이 안 된다고 해서 참 아쉬웠다. 언제부턴가 아버지가 깨셔서 열심히 바깥 풍광을 폰 동영상으로 담고 있으시다. 자못 진지하고 집중적이시다. 아버지의 이런 호기심 천국이 인지능력을 유지시키고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탱하시게 하는 것 같다.
해발고도는 자꾸 낮아진다. 그럴수록 드문드문 주택이 눈에 띈다. 집의 기둥마다에는 세로로 황금색 바탕에 주홍색 글씨가 씌어있다. 중국인들의 바람인 부귀영화(富貴榮華)에 대한 기원인 것 같다. 한편 새로 건설되는 건물이나 구조물 옆에는 공사의 홍보와 안내를 위한 초대형 글자를 쓴 입간판이 자주 보인다. 중국의 소수민족 우대정책에 대한 끊임없는 선전물 같기도 하다.
오후 4시 쯤, 2008년 쓰촨대지진의 중심인 문천지진 유적지를 지난다. 위키백과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쓰촨 성 대지진(四川省 大地震, 사천성 대지진) 또는 원촨 대지진 (汶川 大地震, 문천 대지진)은 2008년 5월 12일 오후 2시 28분 중국 쓰촨성(四川省) 지방에서 발생한 리히터 규모 8.0의 큰 지진을 말한다. 사망자 약 69,000명, 부상자 약 374,000명, 행방불명자 약 18,000명의 재산피해자 누계 약 4,616만 명, 붕괴된 가옥 약 216,000동의 피해를 야기했다.”고
오후 5시 쯤, 청두 인근에 있는 판다 곰 사육장에 들어갔다. 사육장은 대단한 규모로 꾸며 놓았다. 솔직히 나는 이런 동물에는 관심이 적다. 사람들이 이런 동물에 왜 그리 열광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다만 어린 판다 곰 여섯 마리가 대나무 잎을 오물오물 씹는 모습이 제법 귀엽기는 하다.
저녁 식사 후 관람한 음악과 춤, 시와 그림이 조화를 이룬 쓰촨의 판타지를 아름답게 그려낸 공연이라고 여행안내서에 나와 있는 천부촉운쇼를 관람했다. 쇼는 길고 지루할 뿐 큰 재미와 즐거움은 없었다. [2017. 2. 28. 화. 흐림.] 2021. 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