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래, 나의 편지

(詩) 분신(焚身)/가는 목덜미, 열일곱 살 소녀 나의 분신(分身)이여

청솔고개 2020. 5. 14. 21:45

나에게는 나의 분신(分身)을 위해 분신(焚身)의 열병과 유혹에 내 영혼을 빼앗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내 영혼을 불사르려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40년도 더 전 오월.

철조망을 부여잡고 송홧가루를 마시며 동부전선의 이 고지(高地) 저 능선(稜線)을 누비고 헤맸던 나의 열혈(熱血) 군 시절이었습니다.

이른바 C병장으로 불리던 시절에 한 그리움으로 향한 나의 노래입니다.

 

 

 

분신(焚身)

                        청솔고개

 

새벽의 청아한 하늘 끝에서

숲으로 난 작은 길을 휙 돌아서면

나는 한 떨기 흩어지는 바람을 맞는다

 

바람은 어디로부터 근원하여

또는 마르고 붉은 강심(江心)에서

잿가루로 흩날리지만

새벽까지 세차게 울어대는 개구리의 울음으로

밤새워 통곡하는 운명에

잉태하여

언젠가는 꽃잎 되어 거침없이 흩어진다

 

내 사랑했던 이들이여

그 봄날 이후

샛바람 부는 들녘에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들불 속에서 나는 별똥별로 튕겨져 나갔다

갈증으로 타들어가는 한 줌의 영혼과

영혼의,

그 육신과

육신의 짙은 향훈

 

이윽고 눈물에 젖은 산 꿩의 울음에

피어났다 이우는 달래 꽃 아래

가는 목덜미,

열일곱 살 소녀

나의 분신(分身)이여

       [19785월에 씀]

                        2020. 5.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