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나의 분신(分身)을 위해 분신(焚身)의 열병과 유혹에 내 영혼을 빼앗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내 영혼을 불사르려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40년도 더 전 오월.
철조망을 부여잡고 송홧가루를 마시며 동부전선의 이 고지(高地) 저 능선(稜線)을 누비고 헤맸던 나의 열혈(熱血) 군 시절이었습니다.
이른바 C병장으로 불리던 시절에 한 ‘그리움’으로 향한 나의 노래입니다.
분신(焚身)
청솔고개
새벽의 청아한 하늘 끝에서
숲으로 난 작은 길을 휙 돌아서면
나는 한 떨기 흩어지는 바람을 맞는다
바람은 어디로부터 근원하여
또는 마르고 붉은 강심(江心)에서
잿가루로 흩날리지만
새벽까지 세차게 울어대는 개구리의 울음으로
밤새워 통곡하는 운명에
잉태하여
언젠가는 꽃잎 되어 거침없이 흩어진다
내 사랑했던 이들이여
그 봄날 이후
샛바람 부는 들녘에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들불 속에서 나는 별똥별로 튕겨져 나갔다
갈증으로 타들어가는 한 줌의 영혼과
영혼의,
그 육신과
육신의 짙은 향훈
이윽고 눈물에 젖은 산 꿩의 울음에
피어났다 이우는 달래 꽃 아래
가는 목덜미,
열일곱 살 소녀
나의 분신(分身)이여
[1978년 5월에 씀]
2020. 5.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