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떠난다
산 아래 대숲을
빗속을 헤치고
지난다
운무(雲霧) 자욱한 옥룡암자를
쫓아온다
나를
청솔고개 너머 보이는
쉼터까지 빗속의
암자의 옴마니반메훔이
참 좋다
나는
빗속 산길을 걷는 게
세상 제일 좋은 거
이렇게 걷는 거
끝없는 길을
이생에서는
외롭지 않다
결코
빗속 길은
혼자 걸어도
말 걸어온다
비가 내게
또닥또닥
토닥토닥
추적추적
하고
어루만진다
내 얼굴을
보슬보슬
포슬포슬
비가
최선의 위무(慰撫)
상큼하고 말끔한
들린다
빗속에서는
바로 옆에서
암자의 머언 염송(念誦)
두드린다
문 없는 문
내 마음의 문을
깊고도 세게
취한다
법문(法問)에
법당 청솔고개에서
나는
길 없는 길을 걸으며
가없는 결가부좌(結跏趺坐)로
빗소리 안
하염없이
지는 깃솔갓 아래는
침잠(沈潛)과 적요(寂寥)
마음의 평정(平靜)
문 없는 문을
마음의 문 열고
싸리 잎에
올올이 맺힌
실비 한 올 한 올
거미줄로 걸린
한 땀 한 땀이
후드득
내리 친다
죽비(竹篦)로
백여덟의
번뇌에
들끓는 정수리를
성성(猩猩)하게
바로
산사(山寺)의
한여름
축축하고 서늘한
그 새벽이슬
2023.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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