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래, 나의 편지

빗속의 염송(念誦)

청솔고개 2023. 7. 2. 19:54

                                  청솔고개

 

떠난다

산 아래 대숲을

빗속을 헤치고

지난다

운무(雲霧) 자욱한 옥룡암자를

 

쫓아온다

나를

청솔고개 너머 보이는

쉼터까지 빗속의

암자의 옴마니반메훔이

 

참 좋다

나는

빗속 산길을 걷는 게

세상 제일 좋은 거

이렇게 걷는 거

끝없는 길을

이생에서는

 

외롭지 않다

결코

빗속 길은

혼자 걸어도

말 걸어온다

비가 내게

또닥또닥

토닥토닥

추적추적

하고

어루만진다

내 얼굴을

보슬보슬

포슬포슬

비가

최선의 위무(慰撫)

상큼하고 말끔한

 

들린다

빗속에서는

바로 옆에서

암자의 머언 염송(念誦)

두드린다

문 없는 문

내 마음의 문을

깊고도 세게

 

취한다

법문(法問)에

법당 청솔고개에서

나는

길 없는 길을 걸으며

가없는 결가부좌(結跏趺坐)로

 

빗소리 안

하염없이

지는 깃솔갓 아래는

침잠(沈潛)과 적요(寂寥)

마음의 평정(平靜)

문 없는 문을

마음의 문 열고

 

싸리 잎에

올올이 맺힌

실비 한 올 한 올

거미줄로 걸린

한 땀 한 땀이

후드득

내리 친다

죽비(竹篦)로

백여덟의

번뇌에

들끓는 정수리를

성성(猩猩)하게

 

바로

산사(山寺)의

한여름

축축하고 서늘한

그 새벽이슬

2023. 7.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