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지바고(DOCTOR ZHIVAGO)』 ‘문학의 힘과 역사의 힘’ (2/4)
청솔고개
流刑地에서/ 청솔고개
침엽수림 하늘가에 닿아
雪原은 더욱 아득한 太白峻嶺
밤낮으로 끊임없이 긴 장례(葬禮) 행렬(行列) 마냥
죽어 포개진 나무들
일렬종대(縱隊)로 누워서
어디론가 어디론가 실려 가는데
弔哭도 없이 울리는데
도색(塗色)한 G. M. C의 숨 가쁜 호흡
일렬횡대(橫隊)로 이어진다.
하루에도 열두 번 겹겹이 포개진
흐려 한없이 낮은 하늘을 쳐다보며
갈매기 날으는 남국을 오가는 마음이나
길은 멀어 아득한 천 리 만 리
異國같은 곳에
해사한 갈래머리 少女
포근한 웃음에 가슴 떨군다.
運命을 생각하고 祖國을 따스하게도 가슴에 안으며
또 다시 이름도 없는 自由를 찾아 나서랴
너는 또 다른 이름의 脫出者
센머리 지바고는
이 밤에도 至純의 라라를 생각하려나
덧없는 밤과 밤은 이어지고
집마다 방마다 행복한 백열등은
온기를 더하는데
나는 기어이 행복으로 가는 문에서
비켜서서 달그락거리는 그 소리를 듣는다
얼어붙은 밤길을 밤새 서성이는데
이제 더 사랑할 수도 없는
살구 씨 같은 눈매
그 작은 라라는
어느 都城의 문처럼
열린 가슴을 하고서
눈발을 헤매는
얼어터진 고독한 혁명아(革命兒)를
맞이할 수 있을까
벽난로에는
우리들의 청춘의 굵은 동맥처럼
붉은 장작이 타오르고
나는 문득
이 밤에는
남국의 부동항(不凍港)을 찾아
떠나련다
이 황량(荒凉)한 벌판에서
[1980. 12. 5. 지음]
모스크바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황량한 바리키노의 겨울밤과 우랄 행 열차에서의 격렬한 삶은 있는 그대로 고발하면서도 빛깔과 이미지가 섬광(閃光)처럼 끊임없이 투영(投影)된다. 그 가운데 우리는 혁명의 회오리와 가난과 기근과 추위와 가혹한 현실 속에서 비참하게 그러나 끈질기게 생존해 가는 인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시인과 혁명가는 공통의 속성을 지닌다. 그래서 나는 이들을 위의 글처럼 시편(詩篇)으로 노래해 본다. 여기에서 인간과 혁명가 사이의 고뇌(苦惱)를 다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위 시편에서 다만 지순(至純)의 ‘나의 라라’를 찾아가는 센머리 지바고의 창백한 모습을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어서 이런 노래를 지어보았던 것이다.
이 소설의 두 주인공, 유리 안드레예비치 지바고(Yuri Andreyevich Zhivago, 유라, 유로치카)가 라리사 표드로브나 기샤르(Larisa Fyodorovna Guishar, 라라 안티포바 LARA Antipova)는 위 시에 나타난 것처럼 격동의 한 시대를 뜨거운 가슴으로 살아온 사람들이다.
이처럼 어려운 시대를 살아온 증인이 또 있다. 러시아 혁명의 격동기를 산 작가“고리키”다. 그는 그의 개인적 체험이 역사적 체험으로 승화되어 역사적 보편의 표출로 발전했다 그에 있어서도 문학의 목적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신념을 강화하고 진리를 향한 노력을 자신 속에서 키워가며 세상의 속물성과 싸우고 인간에게 선한 것을 찾게 하고 그 영혼 속에 부끄러움과 분노, 용기를 일깨우며 사람들을 강하게 만들고 성스러운 미의 정신으로 삶을 고무할 수 있게 모든 일을 도와주는 것이다.
한 시대를 살면서 역사를 개척하려는 지바고의 비정한 모습과 그러한 영혼의 반려자(伴侶者)로서 라라의 모습은 동시대의 작가 막심 고리키와의 대비로 더욱 분명해진다.
푸시킨, 고골리, 벨린스키, 도스토예프스키,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체호프에 이어진 이 두 러시아 작가의 모습은 ‘문학의 힘과 역사의 힘’이 어떤 양상으로 나타는가를 보여 주는 좋은 예이다.
문학의 힘이 인간의 내면(內面)에 부단(不斷)한 변혁(變革)을 희구하는 데에 존재한다면, 역사(歷史)의 힘은 인간의 역사의 흐름을 부단히 개혁(改革)하려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위의 글은 1986. 여름에 기록한 것임, 다음 4/3편 이어짐]
[참고한 책]
-보리스파스테르나크: 『의사 지바고』(安正孝 譯, 고려원, 1978.)
-보리스파스테르나크: 『의사 지바고』(박형규 옮김, 학원세계문학, 1985.)
-버트램. D.울프 : 『詩人과 革命家』(임영일, 이강은 옮김, 겨레, 1985.)
-<世界映畵音樂全集>(省音社,1979.) 2020. 6.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