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한 생각
청솔고개
최근 10년 전부터 주변의 아는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별세하고 영면에 들어간 소식을 접하게 된다.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의 부음이 들려오면 그냥 자연스러운 기분으로 받아들였지만, 혹 나 또래의 그 소식을 들으면 나에게도 이렇게 죽음이 가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래서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 보고 있다. 먼저 간 아주 친했던 몇몇 친구들의 생전의 얼굴들을 한번씩 떠올려본다. 내가 떠올린 그들은 모두 환히 웃고 있다. 그 중 10년 전 쯤, 아직 노모도 계시는데 정말 어이없이 가버린 한 친구의 얼굴이 자주 떠오른다. 착하디착해서 사람좋기로 소문난 그 친구의 활짝 웃는 모습이 한동안 밟혀서 좀 힘들었던 적도 있다.
수 년 전 칠십대 초반에 지병으로 숙모님께서 별세를 하셨다. 숙모님의 친구들이 문상 와서 아까운 나이에 가셨다고 무척 슬퍼하셨다. 그런데 그 앞에 놓인 영정사진에는 한창 아름다웠던 숙모님이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친구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슬퍼하고 아까워하는 것은 남아 있는 자의 몫이다. 물론 아주 친한 친구 하나가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은 분명히 비극적인 상황이지만 그 친구들이 애통하는 마음의 본질은 이러한 상황이 언젠가는 자기들에게 닥칠 운명에 대한 두려움과 절망감일 수도 있다. 아니면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뜨는 박복한 신세의 대열에 아직 끼지 않았다는 현실에 대한 안도감일 수도 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친척 한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 이렇게 일찍 가야 많은 친구들이 와서 슬퍼하고 명복도 빌어줄 수 있는데, 구십이나 백 살 돼서 죽으면 친구 하나 와서 애통하지도 않을 테니 그 가는 길이 얼마나 외로울고?”하신다. 이렇게 많은 친구들이 와서 영정을 부여잡고 애통하니 고인은 참 흐뭇해서 저렇게 환하게 웃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결과, 나는 죽은 사람에게는 ‘죽음은 없다’는 ‘죽음의 소멸’이란 생각이 미친다. 나를 중심으로 세계, 우주, 무한대 등 공간 인식과 과거, 현재, 미래, 영원 등 시간 인식은 오직 내가 존재하는 것을 전제로 성립되는 것이다. 내가 죽음의 상태가 되면 이런 나를 중심으로 한 공간과 시간의 관점이 소멸된다. 따라서 죽음이란 그러한 상황을 바라보는 제 3자에게는 하나의 현상일지 몰라도 정작 그 당사자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죽음은 이 공간과 시간에 내가 존재하지 않음을 전제로 성립이 된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태어나기 전 이 세상의 모습은 과연 어떠했을까, 내가 죽고 난 다음 이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달라져 있을까? 태어나기 전 세상은 학교교육과 독서를 통한 역사라 공부를 통해서 대략 알게 되었고, 죽고 난 뒤의 모습은 미래학 등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시기, 즉 내가 생존해 있었던 시기를 뺀 나머지 그 이전, 그 이후의 모습이 결국 내가 죽고 난 뒤의 모습일 거라는 뻔한 결론에 이른다.
아버지와 나는 22년 차이가 난다. 나는 나의 과거와 미래를 아버지의 삶이란 거울을 통해서 투영해보기를 즐겨한다. 현재를 기준으로 해서 22년 전 나는 어떤 모습이었던가. 현재를 기준으로 해서 22년 후, 지금의 아버지 삶을 바라보면서 나의 미래를 짐작해 보는 것이다. 그때 나의 삶의 활성도는 아버지보다 더 나을까, 아니면 아버지만 할까, 아니면 아버지보다 못할까.
5년 전 장례식장에서 어머니를 마지막 떠나 보내드리면서 "66년 동행한 당신"이라고 오열하신 아버지는 지금 불가피하게 폐쇄되다시피 한 병동에서 오늘이 당신의 부인 기일임을 알고 계시는지 확인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Elisabeth Kübler-Ross)의 ‘죽음과 임종’ 등 죽음학에 대한 학문적인 평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보아야 하겠다. 2021.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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