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래, 나의 편지

(詩) 오늘도/ 낙우송 등걸에 앉아 백여덟을 헤아린다

청솔고개 2021. 5. 9. 15:04

오늘도                                        

                             청솔고개

 

오늘도

해질 무렵 산길을 외로 걷는다

오월의 등꽃이 해질녘 샛별로 피어나고

초저녁 등불로 퍼져나가

머얼리 아카시아 꽃 더미에

그 향훈에

내 세상사 번뇌를 날려 보낸다

 

아직은 내 생애 가장 슬픈 일이

다가오지 않았음을

예감하는데

그래서

내안의 모든 번뇌는 내가 감싸 안아야 한다면서

내가 부여잡아야 한다면서

오늘도 허위허위 털레털레

저물녘 산길을 걷는다

한 발짝 한순간 한 호흡에도 간절한 명상이다

마음 다스림이다 챙김이다

 

즐비하게 가로 누운

낙우송 등걸에 앉아

백여덟을 헤아린다

백여덟을 헤아린다

바람이 하늘가에서

빗살처럼 흩어진다

깃털처럼 나부끼다

대갈일성 우지끈 꽈당 나를 꾸짖는다

모든 게 번뇌이고 또 아닌 것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천 바위 향하며

길 없는 길을 열어본다

 

저물녘 서녘하늘

엷은 구름 너머에는

정토가 있으려나

마음속 깊이 희원하면서

다시 합장하고

일백여덟을 헤아려본다.

산비둘기도

갈가마귀도

온갖 산새의 울부짖음도

풀풀 날리는 송화 가루도

언젠가는

지수화풍으로 화할거니......

           2021. 5.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