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2024. 1. 17.
여행 10일째다. 여기 비엔티안에서는 9일째다. 삼분의 일이 지나간 셈이다. 벌써부터 이 주어진 시간을 잘 보내야 할 텐데 하는 서두름에 쫓기는 것 같다. 제발 이번 여행은 그런 데에도 자유로웠으면 더욱 좋겠다.
새벽 6시쯤 깼다. 오늘은 숙소에서 제법 떨어진 붓다파크를 가야 하기 때문이다. 7시에 아이와 같이 식사했다. 아이는 이런 탐방에는 전혀 관심도 없을뿐더러 몸도 그러하니 쉬게 하고 우리는 바로 출발 준비했다.
8시 10쯤 출발해서 어제 답사한 길로 걸어가니 버스 스테이션 14번 플랫폼에 버스가 있었다. 버스에도 14번이라고 표시돼 있었다. 어제 한 번 답사한 곳이라 아내한테 거침없이 안내할 수 있어서 기분이 참 좋았다. 도착하니 시간이 거의 8시 반 다 됐다. 용케 잘 왔다. 자칫했더라면 30분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차에 오르면서 “투 붓다파크?”하고 안내인인 듯한 사람에게 물었더니 그렇다고 한다. 참 아슬아슬했다. 1분 후, 31분에 출발했다. 차 안에는 주민인 듯한 30대 엄마가 사내아이 하나를 데리고 타 있고 뒤에는 서양인 여행객이 한 사람 앉아 있다. 그 외 다 합쳐서 댓 명 정도의 승객이 띄엄띄엄 앉아 있었다. 아이가 우리보고 아는 체한다. 천진난만한 웃음을 띠며 제 엄마한테 보채기도 하고 떼를 쓰기도 하는 모습에 어디 가나 아이는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아는 체하니 아이는 자꾸 우리를 보고 눈 맞추려고 한다. 눈이 동그란 게 귀염 상의 사내아이였다. 붓다파크로 가는 길에 어린 붓다가 '지금, 여기' 현신한다면 필경은 이 아이 얼굴의 미소를 머금을 터이다. 아내도 그 뭔가를 '알아차림'했는지 무턱대고 이 아이의 손을 잡으려고 해서 내가 급히 말렸다. 그러다가 현지인한테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이야기 때문에서라기 보다 그 미소를 '가만히 그냥' 지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렇게 '깨어 있음'을 통해 과연 불성을 만날 수 있을까?
이후에 이른바 조수라고 불렸던 안내인이 차비를 받고 영수증을 내주었다. 1인당 1만 8천 낍이었다. 가는 길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쾌적했다. 비포장도 아니고 그렇게 느린 속도로도 가지는 않았다. 다만 중앙선이 거의 다 지워진 도로를 툭툭이, 다른 차량, 오토바이 등을 비켜 가는 곡예 운전이 아슬아슬하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차량 연식도 얼마나 오래됐는지 부릉거리는 소리가 마치 숨넘어가는 노인의 목소리를 방불케 해서 내 숨도 가빠지는 것 같았다. 저러다가 시동이라도 꺼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전에 내가 몰던 차의 노후화로 브란자 이상에서 생긴 증상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로 좌우 주민들의 집도 그런대로 규모가 있었고 깨끗해 보였다. 지붕이 거의 양철로 돼 있는 게 특이했을 뿐이다. 이 더운 곳에 한여름은 저 불에 달궈질 듯한 양철지붕 아래 어찌 지낼까 하는 생각이 퍼뜩 지나쳤다.
중간에 블리지(Bridge)라는 곳에서는 한참 정차를 했다. 알고 보니 태국으로 넘어가려는 국경 검문소가 여기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이 다리 역시 우정의 ‘다리[Bridge]’라 해서 양국의 우정을 다짐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했다. 도착하니 오전 9시 20분이다. 입장권을 끊었다. 외국인은 4만낍이라고 별도로 안내돼 있었다.
여기 붓다파크는 기기묘묘한 부처의 형상 조각을 모아 놓은 곳이다. 나는 자세히 보니 시멘트로 조성돼 있다. 나는 시멘트 소재라서 격이 떨어진다는 생각보다 가난한 나라에서 불꽃처럼 솟아오르는 불심을 표출하려다 보니 이런 조형물이 자연 발생적으로 자리잡은 것으로 해석하고 싶다. 그래도 신심이 별로 없는 나로서는 솔직히 이 조각물보다 그 사이사이로 심어 놓은 이 나라를 상징하는 숱은 꽃나무들에게 더 관심이 갔다.
맨 먼저 삼 층으로 된 나선형 탑을 좁고 가파르기 짝이 없는 계단을 통해 올라가 보았다. 나 같은 걷는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는 더욱 조심이 된다. 입구는 악마의 이빨처럼 형상화돼 있는 입을 통해서 들어가게 돼 있다. 일단 가까스로 올라가 보았지만 아내가 너무 위험하다고 하는 바람에 한 바퀴 돌아보지도 못하고 잠 있다가 바로 내려왔다. 이게 좀 아쉬웠다. 내려오는 길은 비교적 쉬웠다. 몸이 부자유스러우니 내 호기심 천국은 그 깊이가 많이 얕아지는 것 같다.
이 밖에도 곳곳에 거대한 부처상, 힌두교 전설을 새긴 상이 즐비하다. 중국인, 한국인, 서양인 여행객들이 많이 붐빈다. 천천히 한 바퀴 다 도는 데는 한 시간도 채 안 걸린다. 불교와 힌두교의 설화와 교리를 형상화해 놓았다고 하는데 이제는 나도 이런 데 솔직히 큰 관심은 없어졌다. 관련 블로그에서도 이에 대한 개별적인 자세한 설명은 찾을 수 없었다. 힌두교 설화는 이미 두 번이나 앙코르와트에서 크게 경험한 바라 크게 신기하게 여겨지지는 않았다. 많이 메모하고 정리도 해 보았지만 이제는 크게 와 닿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오늘의 이 코스 체험은 내가 앞으로 해외 자유여행과 현지 생활하는데 하나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이 시기의 여기가 아직 덥다고 하지만 그늘에 들어서기만 하면 무척 시원하다. 화장실 갔다가 벤치에 앉아서 좀 쉬었다. 앞에 수세미같이 생긴 열매를 두고 아내는 파파야일 것이라고 했는데 나는 망고 아닌가 했더니 바로 인터넷에 검색해 보고 파파야라는 것이 확인한다. 이런 소소한 일들이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하는 것이다.
어제 확인한 차 시간표에 10시 20분 차 시간이 있어 바로 나왔다. 외국인 부부가 맞은편 길가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좀 기다리니 차가 한 대 온다고 아내가 먼저 발견하고 말해줬다. 조금 떨어진 데서 출발한 듯한 14번 차였다. 바로 탔다. 여기는 우리나라 70년대 시골 모습이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국경검문소 옆 블리지라는 정류장에서는 30여 분 정차했다. 짐작컨대, 라오스로 넘어오는 여행객들을 태워 가려는 것 같았다. 그래도 계속 에어컨을 계속 틀어놓아서 견딜만했다. 모기가 간혹 출몰해서 신경 쓰였지만 힘이 없어 보이고 더구나 물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여기 와서 물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비엔티안으로 향해 한참 들어오는데 길 양옆으로 뭔가 익숙한 모습이 띄어서 보니 모내기한 논의 모습이었다. 우리 모내기한 논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모내기한 이 광경을 폰에 담아 두기에는 너무 급히 지나가 버려서 아쉬웠다. 그러고 보니 주변 풍광이 흡사 우리나라 7,80년대 도시화 돼 가는 대도시나 중소도시 근교 같은 풍경이다.
시내로 가까이 들어올수록 집들이 더욱 반듯반듯하고 도로도 잘 정비돼 있고 가로수도 풍요로워 보인다. 그러다가 정부 청사가 있는 곳에는 그것이 극대화된다. 이런 상황은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우리 서울의 세종로, 광화문, 용산구 지역 같은 데를 말하는 것이다.
도착하니 11시 반이 됐다. 다시 아내와 같이 호텔까지 걸어서 12시에 도착했다. 아이한테 호텔 키를 맡겨 놓아서 바로 나오라고 로비에서 전화했다. 오가는 길을 너무 자주 걸어서 우리 동네길 같이 익숙해졌다. 오늘은 아직 날씨가 크게 덥지 않아서 그런대로 걸을 만했다. 아내와 손잡고 이국의 도심을 걸어보는 게 내 로망이었는데 이제 그게 원없이 이루어진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오늘 점심은 준비한 카스테라 빵으로 룸에서 셋이서 먹었다. 이렇게 자유로운 게 자유여행, 힐링 여행의 최장점이라는 게 이제 실감이 난다.
좀 쉬었다가 아내와 둘이 다시 나이스 마사지 갔다. 오늘은 마사지숍의 사정으로 60분만 했다. 처음 받아보는 마사지사의 솜씨라 또 다른 특색이 있었는데 다리는 물론 어깨, 두피, 목 등에 아주 부드럽고 균형 잡힌 만짐을 가해서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호텔에 와서 아이와 같이 전부터 예정했던 한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3.7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라서 택시를 불러서 갔다. 역시 빠뚜싸이 가는 중앙 대로를 거처 골목 안에 있는 식당은 한글 간판 ‘정담(정을 담은)’마저 정감 있어 보였다. 나, 아이, 아내 순으로 김치찌개, 김치볶음밥, 오삼볶음을 주문했다. 우리나라 소주 ‘처음처럼’ 한 병도 주문해서 건배했다. 아이가 술을 마시는 걸 보니 많이 회복했음을 알 수 있어서 무엇보다도 다행이었다. 인당 8천 원 정도 치는 금액이라서 한식당이 비싸다고 했지만 큰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가격이었다.
오는 길 택시를 불렀는데 바로 연결이 안 돼서 한참 기다렸다가 탈 수 있었다. 이 시간대가 택시 콜이 아주 바쁜지라 올 때도 한두 대 취소 후 탈 수 있는 것과 같은 사안이었다. 오는 길에 야시장에 들렀다. 가장 왕성한 생의 의욕을 늘 체감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시장이다. 여기도 마찬가지다. 몇 가지 익숙한 먹을 거리를 사서 호텔에 돌아왔다.
저녁 먹고 나서 베란다에 나가 보니 메콩강 너머 불빛이 아련히 번지고 있고 어여쁜 눈썹달이 자꾸 나를 보고 윙크하는 것 같아서 폰에 담아보았다. 아내한테도 나와서 보라 했다. 아내도 이런 감성에 자못 공감하는 모습이다. 오늘도 어제까지 입었던 내 속옷 등 몇 벌과 아내 속옷을 빨아서 베란다 의자에 걸쳐 널었다. 장기 여행하면 이렇게 손빨래도 불사해야 할 것 같다. 이 또한 장기 자유여행의 맛이고 멋 같았다. 벌써 며칠째 손빨래를 하게 된다. 얇은 천의 기능성 옷과 속옷은 아침이 되면 뽀송뽀송하게 말라 있다. 두꺼운 내 등산 양말은 24시간 말려도 아직 축축하다.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일일깁기도 못하고 그냥 곯아떨어져 버렸다.
2024.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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