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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친구/ 내 안의 수묵화 속에 지금 옆에 있는 친구들이 오롯이 앉아 있다

옛 친구 청솔고개 오늘은 매달 11일 시내 사는 ‘국민 학교’ 동기들과 만나서 식사하는 날이다. 우리가 그 학교 11회 졸업생이니 기억하기 좋도록 11일로 하자고 내가 제안해서 벌써 15년 쯤 이어오고 있다. 처음엔 12명 정도 됐는데 이제 이런 저런 사정으로 다 나가고 5명 남짓 남아서 매달 밥이나 한 끼 먹으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저녁 6시 30분까지 근처 공원 시계탑에서 만나서 외곽지의 산 밑의 예약된 식당에 택시타고 갔다. 한적한 게 산골 분위기 나는 게 좋다. 오늘은 오리 누룽지탕이라는 특별한 메뉴로 식사를 했다. 이 모임에서는 살아가는 또 다른 서로들의 진솔한 이야기에 빠져들면 나도 모르게 스스로 마음의 치유가 되는 좋은 경험을 늘 한다. 이야기에 취하면 소주 한 병으로 네 명이 ..

나의 40년 전 그날 기록2-[나의 ‘인연’2]로 2020.5.17.의 [나의 ‘인연’1]에 이어진 글임/'그 가을과 겨울 그리고 바람 부는 봄을 보냈읍니다'

나의 40년 전 그날 기록2 -[나의 ‘인연’2]로 2020.5.17.의 [나의 ‘인연’1]에 이어진 글임 청솔고개 이제 그 아이와 편지나 대화, 만남이 단절된 이유를 찬찬히 더듬어 보았다. 왜 더 이상 소통이 안 되었을까. 지금 찬찬히 생각해 보니 가슴이 미어진다. 거기에는 내가 미처 감지하지 못했을 간절함 절실함이 있었다. 그 어떤 아픔, 외로움, 치미는 그리움의 실체는 또 무엇이었는가. 1980년도 7월 초, 아이가 보내온 마지막 편지의 행간을 읽어보았다. 그 후 아이와의 첫 만남이 곧 마지막 만남이 된, 단 한 번의 만남과 동시에 이루어진 결별에 대한 과정이 일기에 소상히 남아 있다. 다음은 그 때의 나의 복잡한 심중이 그려진 나의 일기 중 일부이다. 거의 횡설수설, 정서와 의식의 분열 현상 같다..

나의 40년 전 그날 기록1, 1980. 7. 3. 목. 흐림./뜸부기가, 흰 달빛이 어리는 이 밤을 울어대는 들판으로 갈까나

나의 40년 전 그날 기록, 1980. 7. 3. 목. 흐림. 청솔고개 올해 2020년 7월 들어 장마철은 유난히 서늘하다. 흐린 날씨가 이어지니 문득, 아득한 40년 전 7월이 떠오른다. 그해 여름도 너무 서늘해서 통일벼 냉해 피해까지 있었던 게 생각난다. 그해 냉해로 7,700억 원 어치 쌀을 수입했었다는 보도도 본 적이 있었다. 올해도 냉해가 심하면 안 되는데, 농민들에게 피해가 돌아가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과 함께 그 때 나의 기록을 들춰보았다. 그리고 지금의 시점, 관점에서 당시의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당시 나는 나의 이십대 마지막 해를 벌써 절반을 써버린 상태. 7월이니 나머지 절반에 접어든 시점이다. ‘나의 이십대는 이렇게 그냥 흘러가버리나’ 내 마음 속에는 이런 허망함이 자리 잡기 시작..

마음의 밭 2020.07.10

(時調) 불안(不安)은 나의 힘/내 맘이니 내 맘대로 하려는 우매함이

불안(不安)은 나의 힘 청솔고개 마음 그릇 삼분(三分)하니 맨 밑에 채워진 건 고비마다 새로 솟는 삼불(三佛) 화두(話頭) 동행(同行)타가 언제나 그 화두 가시 내 맘 찔러 나 살려 내 평생토록 마음이 지옥이라 그 속에 갇혀있다 내 맘이니 내 맘대로 하려는 우매함이 난제 중 큰 난제라고 평생 살며 깨워가네 살아가며 빠져드는 마음 지옥 못 벗음이 내 생애 천명(天命)임을 뒤늦게나 깨우치며 깨 있는 불안 신념이 나 살리는 큰 힘이라 2020. 7. 8.

마음의 밭 2020.07.09

(時調) 나의 척추관협착증 2/맘 아프면 몸에 묻고 몸 아프면 맘 치유돼

나의 척추관협착증 2 청솔고개 아이 먼저 배낭 메고 오늘도 산행 출발 앞서 가다 조심스레 돌아보다 내 뒤로 와 내 걱정 많이 되어서 뒤에서 내 걸음 봐 뒤태 보고 나를 세워 목과 허리 짚어주고 척추관 마디 깊이 손닿는 곳곳마다 시원히 풀어주어서 내 발걸음 한결 사뿐 팔꿈치로 무릎으로 결림 저림 다 잡아줘 나 돌보아 주는 것이 고맙고도 대견해라 이 아빈 세상에 둘도 없는 아들 복 받는 이 맘 아프면 몸에 묻고 몸 아프면 맘 치유돼 이렇듯 마음과 몸 서로 도와 같이 가자 한평생 살다 겪으면 마음 몸 다 깨달아져 극한 저림 고통마저 내 안 골수 파고 들면 그 순간은 불안 부정 그 통증에 다 묻히니 큰 화두 평생 깨침 돼 설산 광야 고행이네 2020. 7. 7.

마음의 밭 2020.07.08

(時調) 나의 척추관협착증 1/대간 자세 곧추 하고 뱃심 명상 또 새기어

나의 척추관협착증 1                                    청솔고개평생 삶의 무게 쌓여 내 등골을 좁혀드니길 가다가 다리 저림 척추대간 큰 신음만그래도 그 자존심에 포기 않고 걷고 걸어 오늘도 허위허위 이 능선을 오르려면구름 덩이 솜털 뭉치 위 헤매는 헛발질은 한평생 반의 반 치로 뒤틀린 그 자세 탓 오늘도 이 산행은 내 생애 끝 오름처럼가지 않고 퍼 앉으면 이대로 못 일어나네 모든 거 끌안고 간다 아픈 내 맘 너도 가자  저림 증 헛걸음에 제발 기죽지 말고 대간 자세 곧추 하고 뱃심 명상 또 새기어양팔로 스틱 꼭 잡고 늘 희망 저 고개로  거기만 올라서면 나락 논 동녘들은 연두 초록 청록으로 세상 중심 모자이크 구름 빛 찬연한 서광 녹색의 스펙트럼                 ..

마음의 밭 2020.07.08

나의 열 살 전후사(前後史)7, 내 유년의 늦여름, 안태(安胎) 고향집 수채화/내가 커다란 능구리가 굼틀굼틀 기어가는 거 보고 기겁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의 열 살 전후사(前後史)7, 내 유년의 늦여름, 안태(安胎) 고향집 수채화 청솔고개 이제 늦여름에 접어든다. 안태(安胎)고향 마을의 동네 회관 터가 되어 버리기 전 내 유년의 우리 집 풍경 스케치다. 이게 왠지 물을 많이 섞어서 색깔이 옅어져버린 희미한 그림, 솜씨가 없어 잘 그리지 못한 수채화 같다. 방학 후에는 1학기 마지막 한 달의 수업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개학해야 한다. 그 당시 기억나는 게 하나 있다. 이른 바 그 시절 4월 초 학기 시작 제도였다. 그 때 학교는 새 학년 시작하는 날이 4월 1일이었다. 그래서 1학기 기간은 4.1.~9.30. 1학기 중, 7,8월에 걸쳐 여름방학이 있었고, 9월 초에 개학해서 9월말까지 1학기 수업을 했다. 2학기는 10.1에 시작했다. 2학기 기간은 10..

나의 열 살 전후사(前後史)6, 한여름 하루나기/ 노란 열매를 대나무 딱총 알로 삼아서 놀았던 그 포구나무도 명을 다해 자취는 간 곳이 없다.

나의 열 살 전후사(前後史)6, 한여름 하루나기 청솔고개 한여름이다. 이 때만 되면 항상 내가 할 일이 정해져 있다. 가장 큰 일은 근처 ⁰소두방 산 ¹치지거리까지 소 먹이러 가는 거다. 그러기 위해서선 아침부터 할 일이 순서대로 정해져 있다. 아침 죽을 먹은 소 두 세 마리는 잠깐 사랑채 뒤 대나무 숲 울타리 ²마닥에 매어져 있다가 무지당 솔숲으로 몰고 간다. 거기서 오전을 보낸다. 집은 덮고 쇠파리도 ³까부던지도 극성이기 때문에 들 가운데 바람이 잘 통하는 언덕 솔숲으로 오전 피서를 떠나는 셈이다. 온 마을 소가 모두 모여 있다. 말하자면 소의 놀이방인 셈이다. 거기서는 소가 똥을 누어도, 오줌을 싸도 공간이 넓어서 모두들에게 덜 힘 드는 것이다. 풋고추와 마른 ⁴메래치 ⁵꼬장에 찍어 찬물에 꽁보리밥..

나의 열 살 전후사(前後史) 5, 나의 안태(安胎)고향집/'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나의 열 살 전후사(前後史) 5, 나의 안태(安胎)고향집 청솔고개 우리 집은 동네 공동 우물 옆에 있었다. 그래서 삽짝이 두 개나 되었다. 큰 ⁰삽짝은 사랑채 앞쪽 잿간과 ¹마닥 사이에 나 있었다. 굵고 굽은 나무 등걸로 테두리를 메우고 대나무와 싸리, 송판으로 엮어서 만든 그 삽짝을 여닫으려면 제법 큰 힘이 필요했었다. ²도장과 장독대 사이로 난 작은 삽짝은 바로 마을 공동우물과 통하게 되어 있었다. 이건 큰 삽짝보다 훨씬 작게 만들어졌다. 지게 지고 겨우 들어 올 수 있을 정도 너비다. 새벽에 가끔 오줌이 마려워 ³정낭으로 향할 때, 우물가에서는 두런두런하면서 가끔 ‘하하, 호호, 깔깔, 껄껄…….’ 웃음소리가 새벽 공기를 가른다. 아침밥을 짓기 위해 쌀 씻고 나물이나 채소, 푸성귀 헹구기 위해 모인..

나의 열 살 전후사(前後史)4, 큰할배와 우리 집 소 ‘아리랑고개’/큰할배의 탐스러운 긴 수염 끝에 맺혀 있던 땀방울이 아직도 뚝뚝 듣는 듯하였다

나의 열 살 전후사(前後史)4, 큰할배와 우리 집 소 ‘아리랑고개’ 청솔고개 먼저 큰할배[증조부]와의 추억이다. 큰할배께서는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돌아가셨다. 지금도 그 모든 게 눈에 선하다. 내가 너 댓 살에서 아홉 살까지 몇 년 동안이 큰할배와의 동행 기간이었다. 큰할배는 오전엔 주로 내 동생을 보아주신다. 둘째 증손자인 두 살짜리 내 동생을 걸리거나 업고 마을 당수나무로 데려가서 같이 놀거나 재우신다. 얼렁설렁 흔들어 주기도 하고 슬슬 부채질로 파리도 쫓으면서 아이를 맡아 돌보시는 기술이 아주 독보적이다. 이럴 땐 맏손부인 우리 어머니가 제일 득을 본다. 그래서 어머니는 편하게 할아버님께 아이를 맡기신다. 이제 점심 먹고 오후다. 큰할배와 동행할 때가 더러 있었다. 우리는 주로 소를 몰고 산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