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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다시는 오지 말아야지/차라리 입을 다물거나 오월의 잔혹한 태양 아래서는

다시는 오지 말아야지 청솔고개 차라리 입을 다물거나 오월의 잔혹한 태양 아래서는 갈증(渴症)처럼 욕망에 몸뚱아리를 핥이며 핏발선 눈으로 지킨 기인 밤을 고이 눈을 감고 있었지 가장 신성한 듯이 실거머리 입술을 마지막 보루처럼 지키면서 어디로 갔을까, 그미는 온기 남은 동전마저 날렵한 입질로 물어가고선 동굴처럼 칙칙한 어두운 내음을 흘려 두고선 이름도 묻지 않는 그미는 욕망의 긴 터널 입구에서 기나긴 서성임은 결코 취하지 않아서였던가 새벽에는 짙은 운우(雲雨)로 한 마리의 지친 들개처럼 뒷다리를 질질 끌면서 나는 마지막 자유를 향유했다 그렇다 새벽에는 탈출해야 한다 이 욕망의 동굴을 눈을 감을 거나 절망을 외면해서인가 내 순수(純粹)의 기인 머리카락을 끝없이 흩날리면서 발정한 까투리의 깃털처럼 나의 눈에는..

나의 야학(夜學) 전후사(前後史)(2/2)/그들은 예년처럼 어디선가 리어카를 몇 대 빌려서 우리를 태우고 졸업 축하 퍼레이드를 베풀어 주었다

나의 야학(夜學) 전후사(前後史)(2/2) 청솔고개 대학 2년의 가을이 되었다. 정국은 이른 바, 10월 유신 선포로 얼어붙었다. 그날 아침 학교는 급기야 탱크로 둘러싸여졌다. 무기한 휴교령이 내려졌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빠듯한 ‘향토 장학금(하숙비)’을 쓰면서 계속 야학 봉사활동을 할 것인가 아니면 귀향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고향의 부모님 부담을 줄여 드릴 것인가 아니면 야학의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킬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나는 기로에 섰다. 결단을 내렸다. 남기로 했다. 그러면서 그 방법을 모색하였다. 야학 기숙사에 마침 한 사람이 들어갈 여유가 생겼다고 하기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밥값은 들지만 다른 방값이나 생활비용은 절약되는 셈이다. 나와 학교에서 입지가 비슷하여 말없이 잘 통하던 한 친구..

나의 야학(夜學) 전후사(前後史)(1/2)/90분 수업을 마치고 나니 내가 뭘 했는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나의 야학(夜學) 전후사(前後史)(1/2) 청솔고개 내 나이 갓 스물에 나는 국립 사범대 국어교육과에 입학하였다. 당시 감청색 대학생 교복과 학교 배지는 청년으로 성장한 소년의 새로운 출발의 상징이었다. 대학 1학년의 나는 다시 중2 시절로 되돌아간 듯, 학문적 탐구의욕으로 나날이 내 의식이 충전되는 희열을 느꼈다. 시험 기간이 되면 하숙집에서 새벽에 일어나 학교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공부에 몰두하였다. 특히 선택과목인 사회학, 역사학, 정치학, 인류학에 대한 지적 호기심과 학문적 탐구열은 그 후 나의 교직 생활과 연구 활동에 직․간접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다. 나는 정말 열심히 공부 했다. 중1,2 시절 이래 제2의 열정적 탐구기라 할까. 그래서 모든 게 새로운 느낌이었다. 심리적으로 나날이 많은 게 안..

그늘 속에 자라는 꽃, 사막에서 크는 풀/그 맥문동이 올봄에는 유난히 더 싱그럽게 새 순을 돋우었다

그늘 속에 자라는 꽃, 사막에서 크는 풀 청솔고개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집에 22년 1개월 전에 이사하였다. 이사하기 전 이 집을 사려고 처음 보았을 때, 대문, 담, 벽이 붉은 벽돌로 붙어져 있어 평소에 내가 살고 싶다고 꿈꾸던 그 스타일이었다. 아치 형 대문에는 붉은 줄 장미를 올리면 좋을 것이고, 담장에는 라일락과 등나무를 심겠으며, 붉은 벽돌 벽면에는 담쟁이를 붙이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지금 그러한 모습으로 달라져 있다. 나도 어지간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성격이 느긋하고 ⁰미련곰탱이라 할지라도 23년째 한집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렇다. 어지럽게 변화하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데 뭔가 뒤처지고 잘못 맞추어나간다고 생각된다. 어쨌든 여기 이 집에는 우리 가족사가 고스란히 묻혀 있다. 두 평..

유월의 단상4, 교단의 전설/그를 교단에서의 ‘나의 전설(傳說)’로 기억하고 싶다

유월의 단상4, 교단의 전설 청솔고개 군에서 제대 후 복직한 첫 해 유월 어느 날, 가정실습 기간 동안 청량산에 혼자 하룻밤 자고 그 다음날 청량산 둘러보고 울진 불영사계곡 들러서 불영사 입구 계곡 옆에서 또 1박 했다. 어제 하루 무사히 지낸 데 대해서 감사의 뜻과 오늘 저녁에도 부처님의 가호로 무사하게 해 주십사하고 비는 뜻에서 경내에 가서 참배를 했다. 그때 비로소 비구니들의 얼굴을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그 얼굴들에서 내게 엉뚱한 상상력이 발휘되었다. 그 비구니들에게 이상한 선입견 같은 것이 생긴 건 그 때부터인 것 같다. 모두들 어떤 말 못할 사연이라도 품고 있는 것처럼 내가 소설 쓰듯 꾸며 나간 것이다. 무슨 시적, 문학적 상상력 같은 것이었다. 그건 참 부끄러운 젊은 날의 치기 같은 ..

유월의 단상3, 입영열차 전후/논 두름에서 와글거리는 개구리 울음소리만 멀어져 간다

유월의 단상3, 입영열차 전후 청솔고개 유월이 되면 떠오르는 몇 개의 선명한 기억들. 입영 통지서를 받고 초임 지의 아이들과 생애 최고의 이별 의식을 치른 후, 고향 집에 와서 이틀 정도 쉬었다. 드디어 유월 하순의 어느 날. 오늘은 입대하는 날이다. 내가 사는 한반도의 동남쪽 일대의 장정들은 모두 포항 어느 초등학교 운동장에 10시까지 집결하도록 영장에 기재돼 있었다. 할머니, 막내 종조모님, 어머니, 숙모님 등 우리 집안에 여자 분들이 총 출동, 나의 입대를 환송해 주려고 다 동행하셨다. 내가 맏이이고 집안의 장손이라서 대접을 해서인가. 그 땐 당연히 그러려니 했는데 지금은 내가 참 과분한 대접을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그 여인들은 다 가시고 안 계신다. 어언 44년 세월이 흘렀는데……. 오늘 ..

새벽 병상에서 아버지와의 대화/그들에 비해 나는 네 배나 더 살고 있잖아

새벽 병상에서 아버지와의 대화 청솔고개 지금은 새벽 네 시다. 바깥은 아직도 어둠이 깔려 있다. 아버지가 병상에 억지로 일어나셔서 웅크리고 앉아 계신다. 아버지는 또 뭔가 웅얼거리신다. 컴컴한 병실에서 부자간 대면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다. 이 역병 창궐이 언제 종식될지 몰라서 혹 이 순간이 어쩌면 부자간의 마지막 대화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또 울컥해 진다. 불현 듯 이 순간이 한없이 소중해진다. 최근 들어서 아버지의 발음이 더욱 알아들을 수 없게 어눌해지시는 것 같다. 어제는 3년 전에 갔던 호국의 길 탐방 코스와 관련해서 아버지의 횡성전투 참가 전후의 정확한 루트를 알고 싶어서 여쭈니 잘 인지하지 못하신다. 1년 전만해도 말씀 안 드려도 당신 스스로가 자세히 자랑스럽게 말씀해 주시곤 했는데..

아... 아버지! 2020.06.18

유월의 어느 하루, 꽃과 동행하다/그래도 가는 데마다 꽃들의 미소에 나는 힘을 얻는다

유월의 어느 하루, 꽃과 동행하다 청솔고개 헤세는 그의 수필집 ‘삶을 견뎌내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고통을 잘 이겨내는 방법을 아는 것은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산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그 방법으로서 ‘사소한 기쁨’의 체득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절제된 행동 습관”을 가짐으로써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이의 근원적 해결 방안으로 다음과 같이 설득하고 있다. “그런 기쁨들 가운데 가장 으뜸은 우리가 날마다 자연을 접하면서 맛보는 즐거움이다.”이라고. 아버지와 올해 들어 두 번째 ''병상 동행 여행' 출발한 지 오늘이 6일째다. 일상의 여행에서 맘껏 호흡하던 ‘자연’이 벌써 그리워진다. 오늘 우리 세 식구 산행 하는 날. 새벽에 깨서 잠을 설쳤더니 좀 피곤하다. 오늘은 또 병원에서 하루 세월을 힘들어하시..

삼대(三代)가 떠나는 호국(護國)의 여정(旅程)(3/3)/아버지가 그때의 퇴로가 겨울 설맹으로 시력을 잃었던 설악산에서 오대산으로 이어지는 곳이라 했으니 이 운두령 쪽일 수도 있겠다 싶다

삼대(三代)가 떠나는 호국(護國)의 여정(旅程)(3/3) 청솔고개 새벽에 일어나 어제까지의 여정을 기록했다. 나는 밤을 새워서라도 이렇게 나의 생애를 기워나가야 한다. 이게 나의 존재의 이유, 존재하는 힘이고, 나의 팔자다. 이제는 한 숨 더 자도 좋을 것 같다. 오늘은 내려가면서 오대산 들린다. 거기서 좀 쉬고서 다시 남하한다. 엊저녁에는 아버지께서 밤새 뒤척이다가 이어폰으로 옛 가요를 들으시면서 흥얼거리셨다. 잠이 설쳐지시는가 보다. 그래도 잘 견뎌 주시니 얼마나 고마우신가. 새벽이 밝아 오고 있다. 다섯 시 반 지났다. 좀 더 자야 할 것 같다. 혹 잠이 안 오면 이 마을 골목과 언덕을 좀 걸어보고 싶다. 잠시라도 추억여행을. 여기 양구면 정림리 지역사단 사령부 근처 언덕길. 잠깐이었지만, 내 열혈..

아... 아버지! 2020.06.14

삼대(三代)가 떠나는 호국(護國)의 여정(旅程)(2/3)/아버지는 1951년 당시 여기서 군용 열차를 타고 부산까지 부상당한 채로 서서 후송 조치된 기억을 더듬으신다

삼대(三代)가 떠나는 호국(護國)의 여정(旅程)(2/3) 청솔고개 새벽에 아이가 숙소의 숲 속을 산책해 보라는 권유를 해서 아버지와 같이 잣나무 솔방울이 떨어져 있는 숲길을 걸었더니 새소리도 즐겁다. 무리지어 피어나는 금잔화 주황색도 아름답다. 9시 좀 지나 횡성 시내로 가서 **한우국밥집에 가서 국밥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그 옆 횡성보훈회관에 들렀다. 방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아버지는 당신이 여기 횡성 전투에서 팔에 부상을 당하셨다는 사실, 아버지로 보아서는 생사의 기로에 선 곳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강조하신다. 1951년 2월 8일 아버지의 횡성전투 자료에 대한 설명을 책임자에게 들었다. 이 사람도 자기 아버지 얼굴도 모르는 6.25한국전쟁 전사자 의 유복자라면서 자료를 찾아서 자세히 설명해 준다..

아... 아버지! 2020.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