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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열 살 전후사(前後史)3, 소몰이꾼들의 통과의례/송기(松肌)막대기로 하는 전쟁놀이, 후배들 싸움 붙이기

나의 열 살 전후사(前後史)3, 소몰이꾼들의 통과의례 청솔고개 소 먹이러 산에까지 갔는데, 샌날이어서 못에 멱 감으러 들어갈 수 없는 날이면 동네 형뻘 친구들이 노닥거리는 행태는 대개 이렇다. 너무 심심하니 놀이나 게임처럼 생각하고 다음과 같은 일을 벌이는 거다. 먼저 송기(松肌)막대기로 하는 전쟁놀이다. 긴긴 봄날 한창 소나무에 물오를 때에 손가락 두 개 합친 것 만한 크기의 소나무 가지를 뚝뚝 자른다. 겉껍질을 벗겨내면 보드랍고 달짝지근하여 솔 향이 솔솔 나는 속은 물이 줄줄 흐르도록 하모니카 불 듯이 벗겨먹는다. 이 속 껍질을 송기라고 한다. 그 향과 식감이 아직 내 입에 남아 있는 것 같다. 벗겨 먹고 남은 소나무 잔가지들은 산에 아무데나 버려진다. 봄날 내내 여름까지 말라서 몹시 가볍다. 편을 ..

마음의 밭 2020.07.03

이별하지 못하는 병, 버리지 못하는 병/아마 나의 미래에는 더 이상 가치 있는 것을 얻을 게 없다는 또 다른 강박감 때문이 아닐까

이별하지 못하는 병, 버리지 못하는 병 청솔고개 우리의 삶은 어찌 보면 평생 이별의 준비로 이어지는 것 같다. 나는 최근에 들어 내 삶에서 커다란 두어 가지 헤어짐을 겪었다. 40년 가까이 몸담았던 교단을 떠남, 31년 살았던 옛집에서 이사, 향년 여든 여섯 어머니와의 영결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내외가 혼인해서 신접살림을 차리는데, 처음 둥지를 튼 곳은 무슨 빵 공장 가건물을 방으로 개조한 것으로 조악하기 짝이 없었던 집이었다. 결국 거기서 연탄아궁이에 곤로 기름이 흘러서 한 번, 천정 누전으로 반경 한 발 정도 타들어가는 등 두 번 불이 날 뻔 했고, 우리의 첫 아이를 아내 뱃속에서 흘러버리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질리고 혼비백산한 나머지 이사를 단행했다. 다음 이사한 집은 2층이었는데 여름철에 이사..

마음의 밭 2020.07.02

빚 갚기/오늘도 난 내 인생의 파타고니아 황원을 걷는다

빚 갚기 청솔고개 내가 현직에서 나오면서, 그 순간은 나의 ‘자유인, 자연인’을 마구 구가할 것 같았는데, 세상일이 마음대로는 되지 않았다. 당시 어머니는 8개월 째 치매와 노병으로 요양병원에 계시었고, 아버지는 그 어머니를 거의 매일 면회를 하시곤 했다. 아버지는 자전거 타고 병원에 가서 30분이나 넘게 팔다리를 주물러드리신다, 치매로 소통도 안 되는 데도 어머니와 말을 나눈다, 하시는 걸 일과로 삼으셨다. 병원의 간호사나 간병사들이 지나치다고 눈치를 주어도 아버지는 막무가내이셨다. 아버지가 어머니한테는 일종의 부채의식 같은 걸 가지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자책하듯 몇 차례나 그 상황을 나한테 호소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 전말은 다음과 같다. 내가 퇴직한 지 두 달 지난 그 당시, 아내와 같이 짧은 일..

여정(旅情) 2020.06.29

노인에 대한 두 편의 단상/‘백두옹(白頭翁)’의 넋두리, 내 생애 이모작에서 노익장(老益壯)의 자신감을 선사한, “흰 머리 소년”을 지어준 ㅎ대리, 그를 나는 잊지 못한다

노인에 대한 두 편의 단상 청솔고개 첫째 , ‘백두옹(白頭翁)’의 넋두리 (10년 전 이야기) 눈 덮인 겨울 산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백발이 성성한 현자(賢者)나 고고한 은자(隱者)가 떠올려진다. 그래서 가끔은 겨울 산에 들고 싶다. 그 분들의 품에 들고 싶다. 그러면 나 또한 은자가 되려니. 봄, 여름, 가을철 따라 산은 연륜을 더하고 이제는 태고의 신비를 침묵으로 답한다. 어릴 적 내 증조부님의 풍골(風骨)을 닮았다. 증조부님의 희고 긴 수염이 참 탐스러웠다. 누가 나더러 나이에 비해 흰머리는 많지 않지만 그래도 새치에는 부분 염색이라도 해야 하지 않느냐고 권한다. 바로 내 아내다. 난 그때마다 ‘안질에 안 좋읍네, 피부에 안 좋읍네.’ 하면서 피해 갔다. 허나 정작 속셈은 다른 데 있었다. 난 흰머리..

(時調) 일천바위에서 낙우송 숲을 바라보다/오늘도 이 바위에서 피리 부는 신선되랴

일천바위에서 낙우송 숲을 바라보다 청솔고개 일 천 번 오르고파 내 ⁰일천바위더냐 일 천 명을 살렸다고 일천바위라더냐 오늘도 이 바위에서 피리 부는 신선되랴 자부룩한 소깝 초원 천상의 바람 따라 안개 얹혀 구름 타고 산새처럼 날아보랴 하늘가 흰 구름 너머 태백준령 동해 청파 봄에는 두견화며 풍진만리 송홧가루 골 우네로 이슬 젖은 한여름 ¹낙우송 숲 딱따르 딱따구리가 마른 등걸 후벼 파네 찬 이슬로 젖은 들국 함초로이 고개 떨궈 키 큰 나무 그 사이로 서광마냥 빗살햇살 저 빗살 타고 날으면 마음은 곧 고향 골목 이제는 흘러갔네 구름처럼 떠나갔네 흐르는 강물에다 그 바람도 놓아주랴 물처럼 저 바람처럼 거스를 수 없는 세월 2020. 6. 27.

(詩) 어머님 당신은 어디에-母性을 위하여/밤새 베갯잇에 흘리오신 당신의 눈물은 아니었사옵니다 어머님 당신은 어디에

어머님 당신은 어디에 -母性을 위하여 청솔고개 도회 아이들의 낯빛으로 하아얀 별들이 까암빡 조을던 첫새벽에 차가운 고요함과 안개를 거나리고 동녘으로 찾아와서 나를 껴안아 깨우던 여명의 따가운 품속 하오나 건 어린 날 나를 안아 깨우시던 당신의 품속은 아니었사옵니다 어머님 당신은 어디에........... 한 가닥의 미풍에 물 찬 제비가 날아오르는 오후 여름날 나의 얼굴을 애무하던 푸른 들녘에 키 자란 샛잎들의 하날거리는 손길 하오나 건 어릴 제 내 둥근 얼굴을 애무하던 당신의 보드라운 손길은 아니었사옵니다 어머님 당신은 어디에........... 실비가 나의 얼굴을 간질이어 주던 가신 송낙 후에는 따스한 햇살이 대지를 말리고 서산머리에 뻗이어 바람에 날리면서 하아얀 호수에 손을 담그던 색동 소맷자락 하오..

아... 아버지! 2020.06.27

(時調) '그날'-라고(羅古) 법사, 울 아부지 /칠십 년 전 산화하신 갓 스물 전우 영전

'그날' -라고(羅古) 법사, 울 아부지 청솔고개 먼저 가신 벗들보단 네 배는 더 산다고 여한 없다 욕심 없다 라고(羅古) 법사 평생 화두 어쩌다 요양병상에 세월만 기다리셔 삶은 계란 먹고 싶다 간청하듯 전화하니 울 아부지 그 기백은 세월 따라 허물어져 옛 기력 회복 기대는 희망 고문 통증 지옥 일제 강점 수탈 만행 해방 후 이념 희생 좌우익 물어뜯던 격랑의 그 시대도 분연히 뛰어넘어서 평생을 쌓으신데 사범학교 다니다 사범 되는 꿈은 접고 경비대 지원 후 마산 훈련소 신병 교육 오늘이 육이오 동란 바로 그날 일흔 돌 유엔 군번 유엔 군복 휘황 번쩍 찬란케도 지리산 공비 토벌 빛나는 전공 세워 사선을 넘고 넘어서 금천까지 진격 감격 꿈같은 북진통일 천추의 한 민족통일 일사퇴로 허물어져 전우 시체 밟고 넘고..

나의 열 살 전후사(前後史)2, 벼락 맞은 소/그 소 코꾼지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의 열 살 전후사(前後史)2, 벼락 맞은 소 청솔고개 한여름이나 되어야 우리는 소 먹이러 마을에서 가장 먼 ⁰소두방산 ¹치지거리까지 간다. 거기까지 가는 데는 한참 걸린다. 근처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다. 그 위에 서면 오른쪽으로는 화실 못, 왼쪽으로는 골안 못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아직 그 너머까지는 안 가보았다. 지금도 잠결에 가끔 이 봉우리를 헤매다가 그 깊은 화실 못으로 굴러 떨어져 빠지는 악몽을 꾸기도 한다. 하루는 비가 많이 올 듯 한 날씨였지만, 너무 더워서 소두방산 ²만디이까지 소 먹이러 갔다. 아니나 다를까 천둥이 울고 번쩍번쩍 마른벼락이 치더니만 결국은 하늘이 일을 내고 말았다.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쳐 모두들 소이까리를 뿔에 감지 않고 손에 움켜쥐고 풀을 뜯어 먹였다. 비가 더 심하게 ..

나의 열 살 전후사(前後史)1, 소몰이꾼/ 발가숭이 온몸에 따끈한 논흙을 뭉개서 바른다

나의 열 살 전후사(前後史)1, 소몰이꾼 청솔고개 늦봄에서 초가을까지 나는 소몰이꾼, 즉, 목동이 된다. ¹소이까리를 잡고 무지당을 지나 ²미영밭길을 건너 수리조합 도랑을 가로질러 능갓까지 가면 솔숲의 서늘한 기운이 좋다. 솔숲은 지나면 잔솔가지가 자부룩한 오솔길을 나온다. 이제부터는 오르막길, 한여름 오후 땡볕은 우리들의 ³짱배기를 달군다. 아이들이 입은 거친 삼베 잠방이가 벌써 거무스름하게 달라지는 애총각들의 아랫도리가 불두 덩이들을 스치곤 한다. 그래서 벌게지고 성이 나있다. 목도 탄다. 그렇지만 소떼의 행렬이 이어지니 샘터 한 군데를 지나도 미처 축일 겨를이 없다. 늦봄엔 좀 가까운 곳인 화실못과 숯까막골못 사이에 자리 잡는다. 뻐꾸기와 산비둘기의 울음이 골짜기에 메아리친다. 우린 소를 멈추게 하..

(詩) 다시는 오지 말아야지/차라리 입을 다물거나 오월의 잔혹한 태양 아래서는

다시는 오지 말아야지 청솔고개 차라리 입을 다물거나 오월의 잔혹한 태양 아래서는 갈증(渴症)처럼 욕망에 몸뚱아리를 핥이며 핏발선 눈으로 지킨 기인 밤을 고이 눈을 감고 있었지 가장 신성한 듯이 실거머리 입술을 마지막 보루처럼 지키면서 어디로 갔을까, 그미는 온기 남은 동전마저 날렵한 입질로 물어가고선 동굴처럼 칙칙한 어두운 내음을 흘려 두고선 이름도 묻지 않는 그미는 욕망의 긴 터널 입구에서 기나긴 서성임은 결코 취하지 않아서였던가 새벽에는 짙은 운우(雲雨)로 한 마리의 지친 들개처럼 뒷다리를 질질 끌면서 나는 마지막 자유를 향유했다 그렇다 새벽에는 탈출해야 한다 이 욕망의 동굴을 눈을 감을 거나 절망을 외면해서인가 내 순수(純粹)의 기인 머리카락을 끝없이 흩날리면서 발정한 까투리의 깃털처럼 나의 눈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