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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잔화와 헤세의 여름/나의 내면은 이 여름이 되면 벌써 가을의 도보 여행을 꿈꾼다

금잔화와 헤세의 여름 청솔고개 또 유월이다. 이제 여름이 시작된다. 친구와 점심 약속이 있어 자전거를 타고 시내로 가는데 낮에는 햇살과 바람에 여름 기운이 많이 섞여 있다. 여름 냄새가 제법 난다. 아침저녁의 선선한 기운과는 다르다. 강가에는 물 따라 샛노란 물감을 흘려놓은 듯 한 금잔화 꽃 더미가 초여름 햇살에 반짝이고 있다. 이 강가에 따라 지난 4월까지 같은 규모로 자리 잡고 있었던 유채 꽃 더미와는 또 다른 노랑이다. 나도 저 금잔화 꽃 더미를 물감으로 그려보고 싶다. 내게는 여름이 다가오면 떠오르는 게 있다. 헤세가 그린 수채화 풍경이다. 대학 1학년 첫 여름 방학을 맞이해서 고향 집에서 보내고 있었다. 첫 방학이라 시간이 많았다. 시내 헌책방에 가서 볼 만한 책이 있나 살펴보았는데, 《방랑(放..

(詩) 아버지/아버지가 떨면서 어지럽게 써내려가는 게 뭔지 안 봐도 다 알 것 같다

아버지 청솔고개 언젠가부터, 좀 오래전부터다 아버지가 거실에 함께 계시다가 문득 안 보이신다 약주 한 잔 하셔서 쉬러 가셨거니 이제 우리도 가야하겠다고 인사드리러 건넌방에 가면 아버지는 엎드려서 뭘 쓰시고 계신다 인기척도 못 느끼신다 쓰는 데 빠져 있으시다 세로줄 글씨는 당신의 수전증으로 어지럽게, 그래서 더 멋있게 되어 있는 걸, 흘려져 있는 걸 흘림체라 나는 아버지 어깨 너머로만 힐끗 볼 수 있다. ‘앗! 아버지도 일기를 쓰시는구나.’ 이제 내가 그 때 아버지 나이가 되니 나도 틈만 나면 이렇게 자판을 펼쳐놓거나 손닿는 곳에 뭐든 꺼내서 내 푸념, 내 노래, 내 넋두리를 쏟아낸다. 순간순간 고인 걸 토해 내지 않으면 답답해서 목에 걸린 가래 같아서 가시로 남아서 숨도 못 쉴 것 같아서, 정말 못 살 ..

아... 아버지! 2020.05.31

빈 집/어린 새끼 불려가면서 대신 텅 빈 이 집을 지켜 줄 것이다, 대대손손

빈 집 청솔고개 큰집을 오랜만에 찾는다. 삼십 년 전인가 새로 냈다고 하는 대문 고리는 얼마 전 안팎 것 모두 떨어져간 상태 그대로다. 옥외 화장실 문은 탈이 나서 빼내서 치워 놓은 지 거의 1년이나 된다. 빈집의 티가 그래도 드러난다. 쌓인 먼지 냄새가 구석마다 풀풀 나지만 꽃밭에 올려놓은 장독들 틈새로 달개비, 취나물, 쑥이나 이름도 모를 잡초들은 무성하게 크고 있다. 이들은 집안의 먼지도 먹고 자라는 모양이다. 사철나무도 동백도 건강하다. 마당 복판에는 이름도 모르는 ‘결이 아주 질긴 나무’ 밑 둥에서부터는 무성한 잎들이 무성하다. 손바닥만 마당의 하늘을 가릴 정도로 커 있다. 이 나무는 올봄에 밑동만 남겨 놓고 가지는 다 잘라 놓았는데 벌써 마당을 꽉 채워놓는다. 마당과 벽은 벌써 해거름 그늘이 ..

어떤 모임에서 추억(追憶) 공유(共有)하기 (3/3)/이방인으로서 관찰자 시점으로 나눠가질 만한 추억 조각 하나라도 취하려고 애쓴다

어떤 모임에서 추억(追憶) 공유(共有)하기 (3/3) 청솔고개 어린 시절 추억의 공유(共有)가 서로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그들은 다수이고, 나에 대한 공유사항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단 한 사람, 공유사항이 그들보다 훨씬 더 적다. 참 답답하고 난감한 노릇이다. 그들이 기억을 더듬어가면서, 마치 모자이크 그림을 완성해가듯이, 세세(細細)한 부분까지 이야기의 맥락(脈絡)을 조합해 갈 때, 나는 그 공간과 시간의 배경 밖에서 존재한다. 스토리 속에 잠깐이라도 등장하는 인물은 못 되고, 일방적으로 이야기 들어주는 외로운 청자(聽者)일 뿐이다 작년에 처음 만날 때부터 그랬다. 올해 만나면 좀 좋아진다는 기대는 아예 하지 않았다. 작년 1년 간 서로 함께 한 시간만큼 형성된 인상이나 기..

어떤 모임에서 추억(追憶) 공유(共有)하기 (2/3)/ 서너 발이나 됨직한 느티나무 그늘에서 오랜만에 밀렸던 대화를 나누는 저 동기생들의 이야기를 나는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

어떤 모임에서 추억(追憶) 공유(共有)하기 (2/3) 청솔고개 아버지의 갑작스런 전근으로 나만 남고 부모님은 근무지로 살림을 옮겨 가셨다. 남겨진 나에게는 그 한두 달 동안 많은 일이 발생했었다. 그건 나로 하여금 새로운 기분을 체험하게 하는 사건의 연속이었다. 우리 마을 열넷 악동(惡童)들은 마을이 빤히 내려다보이 언덕배기에 날마다 모여서 그럴 듯한 사업(?)을 구상하고. 또 그것이 주는 황당(荒唐)함과 상상력을 즐기곤 하였었다. 대개 이런 식이었다. 학교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떼로 모여서 마을 점방(店房) 개업 구상도 하고, 때로는 동네 아동 극단(劇團)을 모아서 연기 활동도 흉내 내곤 하였던 것이다. 부모님이 부재중인 우리 집 빈방에 모여서 이불 홑청을 막(幕)으로 삼아서 무대를 꾸몄다. 지..

어떤 모임에서 추억(追憶) 공유(共有)하기 (1/3)/모교의 창창하게 우거진 벚나무, 수양버들 숲 밑에서 나는 이러저러한 회상의 여행을 끊임없이 이어간다

어떤 모임에서 추억(追憶) 공유(共有)하기 (1/3) 청솔고개 지난 5월 26일 찔레꽃 향내도 그윽할 적에 초등학교 동기회 모임이 있었다. 고향 마을에 아직 그대로 자리 잡고 있는 초등학교 교정에 모이기로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술 한 잔 할 터이니 연락해서 가는 차편에 편승했다. 내가 편승해서 가는 차의 주인인 동기는 나보다 두어 살 많은 친구로 직업군인 출신이다. 그 동안 여러 일을 해본 친구로 자칭 산전수전 다 겪었다는 위인이다. 여러 직업 체험이 화려한 만큼 입담도 대단하였다. 국산 최고급승용차 안에는 공모전에서자작 가요곡이 선발되어서 본인이 직접 부르고 녹음한 노래 테이프가 있었다. 인근의 명산을 주제로 한 노래였다. 녹음된 테이프의 노래를 자랑스럽게 들려주었다. 내가 들어도 제법 잘 부른 것 ..

노르웨이 가는 길 (3/3)/그래서 여행은 독주(毒酒)에 중독되는 현상이다

노르웨이 가는 길 (3/3) 청솔고개 드디어 여행 중 월요일 아침을 두 번째 맞는다. 여행 열흘째, 당장 귀향한대도 크게 바쁠 게 없는 게 은퇴자의 처지 아닌가. 이건 하나의 기쁨이기도, 여유이기도 한 것. 아침에 다행히 날이 좀 갠다. 호수의 물안개를 배경으로 일행들의 모습을 기록해 둔다. 플롬 산악열차 탑승 코스 가는 길은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24.5km 라르달 터널을 지난다. 터널이라야 자연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암반을 그냥 뚫어서 굴을 만들어 놓은 정도다. 이게 무척 인상적이다. 오전 8시 좀 지나서 뮈르달 역에 도착. 여기는 자연이 줄 수 있는 모든 아름다움, 웅장함, 위대함의 총화다. 바위, 폭포, 계곡, 구름, 그리고 인간들의 탄성이 하나 되어 조화를 이룬다. 플롬 노선을 따라 야생 그대..

여정(旅情) 2020.05.27

노르웨이 가는 길 (2/3)/여사(旅舍)의 차창에서 비치는 물방울은 여전히 객수(客愁)를 돋운다

노르웨이 가는 길 (2/3) 청솔고개 새벽에 일어나서 창을 통해 멀리 가까이 빙원과 설원을 바라보았다. 어제는 백야의 희미한 상태에서 보았지만 새벽 기운의 명징(明澄)함으로 더욱 맑게 씻어진 계곡의 산뜻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저 멀리는 만년설산과 게이랑에르 고지대이어서 풍광이 시시각각 바뀐다. 모처럼 국내 친구 몇몇에게 여기 이번 여행의 감동이 집약된 이 산장에서 보이는 풍경을 담은 사진을 한두 장씩 전했다. 새벽에 한 번 일어나 주변을 산책하지 못한 아쉬움이 내내 남는다. 산장 같은 비데세터호텔을 떠나오면서도 자꾸 고개를 들어 다시는 올 수 없을 전설로 남을 이 숙소를 보고 또 본다. 산장 바로 옆의 협곡에는 눈 녹은 물이 만들어내는 폭포 소리가 지축을 흔든다. 주변에 야생 블루베리가 널려 있다고 ..

여정(旅情) 2020.05.25

노르웨이 가는 길 (1/3)/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북 노르웨이의 이름 없는 이 협곡에서의 하룻밤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감동과 아쉬움을 남긴다

노르웨이 가는 길 (1/3) 청솔고개 여객선 터미널에서 우리가 타고 갈 ‘DFDS’로고가 선명히 그려진 크루즈의 위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후 3시 반, DFDS SEAWAYS 크루즈에 탑승. 길이 169m, 넓이 28.2m, 승객 수 2,026명, 룸 수 637개, 450대의 차량 탑재 가능, 레스토랑, 면세점, 바, 수영장, 사우나, 헬스클럽 등을 갖추고 있다. 여행의 막바지라 아쉬움과 안도감이 같이 생긴다. 이 여객선을 밤새도록 타고 노르웨이 오슬로에 도착하게 된다. 크루즈의 규모나 부대시설은 보기에 이전에 승선해 본 실자라인 이상인 것 같다. 다시 크루즈 여행이다. 여행의 낭만에 대한 나의 기대가 부풀어 간다. 배가 출발하자 코펜하겐의 건물과 부두, 해안과 섬들이 멀어져 간다. 잔뜩 흐린 날씨로..

여정(旅情) 2020.05.25

길 위에서의 상념들/엊저녁에 출발한 크루즈는 스웨덴(SWEDEN)의 스톡홀름(Stockholm) 가기 위해서 발트 해(Baltic Sea)의 보트니아 만(Bottniska viken) 입구까지 미동도 없이 편안하게 실어다 준다

길 위에서의 상념들 청솔고개 인천 공항 가는 길. 오전 10시 20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도로 옆은 어느새 천지에 미만한 아카시아 꽃이다. 이번 여정을 마치고 나면 저 아카시아 꽃도 자취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영종도를 대낮에 이렇게 맑고 훤히 보기는 참 오랜만인 것 같다. 끝없이 펼쳐진 갯벌, 맑고 깊은 하늘과 구름이 아름답다. 새삼스레 나의 봄 여행의 낭만이 솟구친다. [2016년 5월 14일, 러시아 북유럽 여행 1일 째] 오후 2시 50분에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오후 3시 10분 김포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인천 공항 가는 길은 시골의 정취가 아직 물씬 풍기는 정겨운 우리네 마을 그대로다. 논에는 제법 큰 모 포기들이 무성하다. 육지와 섬 영종도를 잇는 대로라서 도로와 다리가 거대하고 ..

여정(旅情) 2020.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