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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비명(碑銘)/혹 낮은 머리 뉘일 데 없어 창공 중에 부유하다가도

비명(碑銘) 청솔고개 내 잠들어 가없이 떨어지거들랑 찬 가슴에 두 손을 모으게 하여 곤한 눈 겹을 쓸어주오 달빛이 없다하더라도 깜빡이는 별빛 같은 옥색 바다가 뵈는 바람 부는 그 언덕을 비추어 주오 밤새 찬 이슬이 허공을 향해 울부짖는 내 백랍(白蠟) 같은 영혼, 그 흰 옷 자락을 촉촉이 적시어도 나는 기어이 비상하여 한 떨기로 스치는 겨울바람이 되리라 혹 낮은 머리 뉘일 데 없어 창공 중에 부유하다가도 어느 가을날 휙 돌아오는 골목길에 흩날리는 한 줌의 티끌이 되더라도 내 한하지 않으리라 [1978년 봄, 강원도 한 진중에서] 문득 나의 청년 시절, 강원도의 군 복무 시절의 나날은 절대고독의 하루하루이었기에, 나도 절대적으로 묘비명 하나는 남겨 놓아야 할 것 같았었다. 그때의 기록을 다시 들여다 본다...

간병록 3/날은 이리도 좋은데……. 내 때문에 니가 수고 많다

간병록 3 청솔고개 6313호 병실에서 (2020년 4월의 끝자락) 매일 큰집에 가서 아버지가 챙겨드리고 나올 때 자주 하시던 아버지 말씀, “날은 이리도 좋은데……. 내 때문에 니가 수고 많다.” 귀에 쨍하다. 이제 자칫하면 그 말씀도 못 하실 것 같다. 못 들을 것 같다. 우리 아이, 아내, 동생들…….가족들도 알아보시지 못하면 어떡하나, 생각하니 갑자기 뜨거운 눈물이 쏟아진다. 3대(三代) 여행 이튿날, 통영 욕지도 가는 길(2019년 4월의 끝자락) (전략)아버지는 차를 배에 태워서 가는 게 무척 신기하신 듯했다. 아버지와 손자는 내려서 승선하고 난 차를 몰아서 배에 실었다. 뱃전에 올라보니 비바람이 몰아치고 제법 출렁거린다. 4~50분 정도 지나니 욕지도 항이 보인다. 내려서 보니 점심시간 펜션..

아... 아버지! 2020.05.01

사월의 단상/ 꽃이 피는 사월이 손을 흔들며 내 생애에게 작별을 고한다

사월의 단상, "가장 불행하게 여기는 것은, 내가 언젠가는 이른 봄 날 새벽, 연분홍 꽃봉오리가 터 오름을 보고도, 늦은 봄날, 한 떨기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을 보고도, 아무런 가슴 설렘도, 가슴 뜀도, 슬픔도, 애연함도, 어떤 감성도 모두 상실하게 되는, 그러한 나 자신을 보게 되는 것이리라." 청솔고개 꽃이 피는 사월이 손을 흔들며 내 생애에게 작별을 고한다, 올봄에도. 아흐레째, 여덟 밤을 병원 보조 침상에서 잤다. 새삼스레 다시 한 번 내 한 몸 누일 터가 반의반 평도 필..

‘내 생애의 낙화유수(落花流水)’/낙화표풍(洛花漂風)…… 지는 꽃잎이 물위에 떠서 흐르기도 하고 바람에 나부끼기도 한다 혹은 바람에 흔적 없이 표표(漂漂)히 흩날리는 깃발……

‘내 생애의 낙화유수(落花流水)’ 청솔고개 사람은 낙화유수 인정은 포구/ 보내고 가는 것이 풍속이더냐 영춘화 야들야들 피는 들창에/ 이 강산 봄소식을 편지로 쓰자 인생사는 낙화해서 유수처럼 흘러가 되돌릴 수는 없지만, 결국 닿는 곳은 포구이니, 그곳은 사람의 정이 넘친다는 희망의 메시지다. 사람의 풍속은 ‘가는 사람 잡지 말고 오는 사람 막지 말라’고 했거늘, 봄맞이꽃들이 어우러진 들창 가에서 이 강산 봄소식을 그리운 이에게 편지로 보내드리고 싶다는 열망을 노래하고 있다. 올해도 또 4월의 끝자락, ⁰‘꽃은 피고 지고 세월이 가도 (지는 꽃에 대한) 그리움은 가슴마다 사무쳐 오네’ 그래서 아래는 그간 틈틈이 내가 기워서 펼쳐 보이는 ‘내 생애의 낙화유수(落花流水)’ 내 생애 조각조각을 땀땀이 기워서 지어..

흙과 땅 (2/2)/육질(肉質)은 탈골(脫骨)이 되어 땅에 흘러내려 흙의 성분으로 화하는 모습도 보았다

흙과 땅 (2/2) 청솔고개 나는 거의 매일 한 시간 정도 가까운 공원을 뛰거나 산책을 하면서 땅을 밟는다. 직립보행이란 인간의 원리대로 생활하니 몸은 더욱 가벼워지고 마음은 편안해지고 자유로워지는 것 같다. 나는 뛰면서 주로 땅을 쳐다보고 땅과 대화한다. 주말에는 아내와 같이 소금강산 너머 성지골이라는 샘터에 소풍 삼아 물을 길러 간다. 철따라 샘터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봄에는 정겨운 진달래, 화사한 산수유, 여름엔 애틋한 달맞이꽃, 가을은 억새꽃, 겨울은 솔숲과 대숲 사이로 불어오는 천년의 바람이 나를 유혹한다. 특히 봄철, 4월쯤에는 샘터가 있는 산꼭대기에 올라가는 길은 거의 환상적이다. 몇 년 전 산불로 키 큰 나무들은 모두 넘어져 있어 마치 태산준령이 고사목(枯死木)을 보는 듯하였다. 일부는 ..

흙과 땅 (1/2)/나는 화단을 일굴 때 가장 먼저 흙 속에 묻혀 있는 종잇조각, 비닐 조각, 스티로폼 부스러기 등을 골라낸다

흙과 땅 (1/2) 청솔고개 “여보!. 이 나뭇잎 좀 빨리 내다 버려요. 너무 지저분해요. 아내의 성화가 빗발친다. 나는 여유 있는 목소리로 “그건 우리 집 식구들의 양식인데 왜 내다버려요?” 라일락, 감나무, 살구나무가 꾀 크게 자라서 나뭇잎이 질 때면 아내는 영락없이 이렇게 짜증을 낸다. 그럴 때면 나는 낙엽귀근(落葉歸根)의 원리를 또 설교한다. 땅은 생명체이기 때문에 영양분을 먹여야 한다. 영양분이란 바로 자기 몸에서 난 잎들이 져서 만들어진다고. 이렇게 18년 동안 우리 집 뜰은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들을 하나도 버리지도 않고 북돋워 주었더니만 족히 한 자는 넘게 복토(覆土)가 되어 흙이 마당 보도블록으로 흘러내릴 지경이다. 그리고 지금도 이 땅에 뿌리박고 사는 우리 나무 식구들에게 자양분을 공급하..

봄의 전설/ 찌깨벌레, 칠기, 문디이, 땡피

봄의 전설                                                                             청솔고개    먼 훗날 내가 들은 내 동생 실종의 전말에서, '아! 나비도 쫓고 나도 쫓던 그 큰머슴 아재의 참꽃방맹이의 추억담'은 이렇게 끝이 나고는, 또 다른 우리들의 봄의 전설이 이어진다.    숨메산에 뻐꾸기 울음이 제법 깊어지면 보리가 다 자라고 이삭이 팬다. 우리 악동들은 이때만 되면 너나할 것 없이, 이 산에 들어가서 오래된 참나무 밑 둥이 썩어서 흙 거름처럼 된 곳은 모두 뒤진다. 우리에게는 요술 같고 보석 같은 전설의 장난감, ⁰찌깨벌레 수색 체포 작전 수행하기 위해서다. 검고 윤이 나는 그놈들의 입아귀를 보고 딱 벌어져 찌깨처럼 생겼다고 해서..

간병록 2/1950년 늦가을, 마산 훈련소 신병 훈련을 마친 아버지 소속 국군 5사단은 지리산 중산리 교동마을까지 걸어와서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에 투입됐다

간병록 2 청솔고개 꼭 1년 전 오늘은, 우리 집 삼대(三代) 여행의 마지막 날. 70년 전, 1950년 늦가을, 마산 훈련소에서 신병 훈련을 마친 아버지가 소속된 국군 5사단은 지리산 중산리 교동마을까지 걸어와서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에 투입되었다. 아버지의 그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 루트를 더듬으려고 떠난 여행이다. 오늘이 그 여행길의 셋째 날로, 첫날은 산청군 교동 마을로 추정되는 중산리 골짜기에서 일박하고 그 다음 날 통영 욕지도 들어가서 이박 째 묵고, 통영으로 나와서 우중에 케이블카도 타보고 귀향한 것이다. 다음은 그 날의 기록이다. (전략) 88고속도로는 신록으로 한층 푸르러져 간다. 여기 전북 지역을 거쳐서 인월나들목으로 빠져나왔다. 아버지는 신록의 산야를 보시고는 연신 감탄사를 내 뱉으신다...

아... 아버지! 2020.04.25

잡초론/불붙을 듯이 달궈진 돌밭, 자갈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벋어나는 돌냉이이다

잡초론 청솔고개 우리 집 뜰에는 이맘때면 돌냉이가 지천으로 벋어 있다. 온 화단의 흙을 덮어 버린다. 아내나 다른 사람들은 지저분하니 걷어내 버리라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돌냉이 뿐만 아니라 민들레 대궁, 속새, 약쑥, 쇠비름……. 등 이름 모를 잡초들이 아침저녁으로 뿌려주는 물을 머금고는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요즘 화단 꾸미기에는 너무 인공적인 맛이 나는 것 같다. 처음 보는 이색적인 화초, 나무를 구해다가 자로 재듯 심는다. 물론 화단 가꾸기는 개인의 기호에 따를 것이니 이것을 두고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나는 어쩐지 그런 도식적, 인공적인 조경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어려서는 시골에서 농사를 거들면서 자랐다. 들길 따라 지천으로 피어난 들꽃이나 들풀들은 내 마음의 안..

외갓집 가는 길/그 후 지금까지도 엄마와 같이 손잡고 외갓집 가는 길은 아직도 꿈에 한 번씩 나타나 보인다

외갓집 가는 길 청솔고개 어제 아버지가 심한 설사로 또 입원하셨다. 담당의사는 탈수 증상으로 섬망 증세를 보인다고 한다. 아버지는 병상에서 괴로운 듯,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여보, 여보…….” 하고 소리치신다. 그리운 당신의 아내를 찾으시는 것이다. 문득 울엄마가 생각난다. 울엄마와 같이 외갓집 갔던 길이 생각난다. 외갓집은 우리 집에서 십리 남짓, 두 ⁰모랑지만 돌아가면 산 밑 천변에 있다. 외갓집과 관련된 가장 뚜렷한 기억은 딱 두 가지. 하나는 예닐곱 살 때, 외갓집 ⁱ죽담에 놓인 토종벌에 귓불을 두어 번 쏘였다가 혼비백산했던 일, 또 하나는 외갓집 앞 물가에서 거위한테 쫒기다가 물린 기억, 그 후 외갓집은 정말 가기 싫었었다. 기억하기 싫은 것, 첫 순위였다. 그래서 그 후 외가에 잘 가지 않았던..

아... 아버지! 2020.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