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碑銘) 청솔고개 내 잠들어 가없이 떨어지거들랑 찬 가슴에 두 손을 모으게 하여 곤한 눈 겹을 쓸어주오 달빛이 없다하더라도 깜빡이는 별빛 같은 옥색 바다가 뵈는 바람 부는 그 언덕을 비추어 주오 밤새 찬 이슬이 허공을 향해 울부짖는 내 백랍(白蠟) 같은 영혼, 그 흰 옷 자락을 촉촉이 적시어도 나는 기어이 비상하여 한 떨기로 스치는 겨울바람이 되리라 혹 낮은 머리 뉘일 데 없어 창공 중에 부유하다가도 어느 가을날 휙 돌아오는 골목길에 흩날리는 한 줌의 티끌이 되더라도 내 한하지 않으리라 [1978년 봄, 강원도 한 진중에서] 문득 나의 청년 시절, 강원도의 군 복무 시절의 나날은 절대고독의 하루하루이었기에, 나도 절대적으로 묘비명 하나는 남겨 놓아야 할 것 같았었다. 그때의 기록을 다시 들여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