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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죽음에 이르는 병/무덤 위나 바위 위에 내 등을 대고 누워 있으면, 거짓말 같이 몸은 물론이거니와 마음까지 편안해진다

죽음에 이르는 병 청솔고개 내 청춘 시절, 키에르 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을 불안하게 읽었던 기억이 오늘따라 불현듯 솟구친다 그 땐 몰랐더니 지금 내가 그 병을 심하게 앓고 있다 지금 내가 죽음에 이르는 병을 얻어서 불안해하고 있다 삼불화두(三佛話頭)니 망념(妄念)이니 포장하고 미화해 보지만 정녕 그 병이다 하루하루, 한 순간 한 순간 그 병은 나를 죽음으로 이르게 할 거다 내 젊은 시절은 소금기 저벅이는 포구(浦口)를 걸어서 모래 먼지 휘몰아치는 사구(砂丘)에 다다른 길 이제 늘그막, 시원한 미루나무 그늘이 있는 어떤 신작로를 터벅터벅 걸어왔다가 그 병에 감염되었다 장미의 가시로 남아서 내 영혼을 헤집고 있다 병증으로 마음이 지옥불로 녹아내리고 있다 노보리베츠의 들끓어 오르는 철 지옥 칠흑 속의 ..

마음의 밭 2020.05.23

상실(喪失)과 소유(所有)/다만, 그 길 위에서 한 순간 섬광처럼 번뜩이는 감흥, 감동, 감성이면 된다

상실(喪失)과 소유(所有) 청솔고개 다음은 2016년 5월 18일 아침 러시아 북유럽 여행 5일 째 생긴 일. 아침 8시에 호텔에서 출발. 오늘은 어제 오후에 보기로 했다가 시간이 늦어 못 본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의 몇 군데 명소를 보고 바로 배를 타고 핀란드 헬싱키로 가야 한다. 그런데 아침에 내가 여행 중 치명적 실수를 해 버렸다. 물병 마개를 제대로 막지 않고 그냥 무심코 가방을 눕혀 놓고 식사하고 왔더니 노트북에 물이 스며들어가 화면이 보이지 않는다. 당장 사용하지 못하는 것보다 노트북 속에 그동안 내가 저장한 필수적인 자료가 모두 망가질까봐 정신이 아뜩했다. 오늘 여행이고 뭐고 눈에 보이는 게 없을 정도다. 주변에 급히 도움을 청했더니 여기는 그런 가전제품 수리하는 곳이 없고, 있다하더라도 멀리..

여정(旅情) 2020.05.22

끝없이 이어진 길/보일 듯 말듯한 지평선이, 키 큰 나무로 가려진 대 평원을 쉼 없이 달린다

끝없이 이어진 길 청솔고개 새벽 5시에 기상. 여행 중에는 늘 식사 시작 두 시간 전에 깨야 안심이 된다. 이 호텔 객실이 1,200 여개 된다는 말 그대로 미로 같기도 하고 달팽이 속 같기도 하다. 내부 통로를 이용하는 게 참 어렵다. 모두들 식사하러 왔다 갔다 하는 데 헤맨다. 호텔 아침 식사는 늘 멀리 떠나는 여행자의 설렘이 배여 있다. 날이 어제와는 달리 아주 청명하다. 대신 좀 쌀쌀하다. 어제 비 온 뒤라서 그런 것 같다. 긴 소매 티셔츠나 남방셔츠가 필요하다. 길가 민들레꽃밭의 민들레가 더욱 샛노래 보인다. 네바 강의 물빛은 그냥 청록 빛으로 넘실댄다. 먼저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네바 강의 강폭이 가장 넓어지는 하구의 삼각주 지대에 있는 토끼들이 뛰 놀던 늪지대에 축주한 요새다. 표트르 대..

여정(旅情) 2020.05.20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봄/일생동안 단 한 순간 스쳐간 사랑도 그 의미를 부여하면 한없이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봄                                                                            청솔고개   여행 3일째. 아직까지도 시작에 불과. 10일이나 남은 여정(旅程)을 생각하니 무슨 부자라도 된 것 같은 심경이다. 그러나 만 하루 만에 이 모스크바를 떠나려하니 마치 톨스토이, 고골리, 푸시킨, 체호프, 차이코프스키 등 세계적인 거장들과 한꺼번에 헤어지는 아득함 같은 걸 진하게 느낀다. 정말 아쉬운 마음으로 모스크바를 떠난다. 이 거장 역사의 도시를 단 이틀도 제대로 머물지 못한 게 참 아쉽다.    엊그제 내렸던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공항에서 다시 비행기를 탔다. 얼마 안 있어 내 문학적 영감의 큰 줄기인,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의 ..

여정(旅情) 2020.05.19

모스크바의 거리/우리는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모스크바의 지하철 역 키예프역[끼옙스까야메트로]까지 환승해서 갔다

모스크바의 거리 청솔고개 오월은 봄 여행의 최적기다. 따스한 봄 햇살에 기분 좋게 불어오는 5월의 바람, 가는 데마다 우거진 녹음. 모든 게 풍요롭고 기분이 좋은 계절이다. 나는 퇴직 후 비로소 자유롭게 가장 여행다운 5월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처음이다. 5월 여행이 너무나 신기하고 실감이 나지 않았다. 비로소 자유인임을 깨달았다. 4년 전, 꼭 이맘때다. 2016년 5월 14일부터 25일까지 러시아의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에스토니아,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 각국의 주요 여행지를 방문했었다. 잘 알려진 여행 명소에 대한 감상과 기록, 정보와 사진은 나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남겨 놓았을 테니, 나는 주로 나만의 여행지에 대한 거리와 배경, 자연 풍광에 대해 한 순간 스쳐지나가는..

여정(旅情) 2020.05.18

나의 ‘인연’1 /그 아이도 어느 하늘 아래서 지금 나처럼 세월의 나이를 먹어가면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한번만이라도 만나보고 싶다

나의 ‘인연’1 청솔고개 블로그에 올릴 나의 노래 ‘詩人의 노래’에 관련된 자료를 찾다가 40년도 더 전, 내게 한 아픔과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애제자 k가 나한테 보낸 편지가 눈에 띄었다. 그 와 관련된 내 일기의 기록도 찾아보았다. 내가 국립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새내기 국어교사로 초임 발령을 받은 곳은 같은 도에 속한 곳이지만 나는 처음 들어보는 지명이었다. 대학 소재지에서는 멀지 않은 곳이었지만 내 고향에서는 직통 교통편이 없는 곳이었다. 나의 첫 사회생활은 무척 서툴고 외로웠다. 더군다나 교사 발령 2년 째, 난 군 입대 영장을 받고 6월 말 입대할 예정이었다. 물론 입대를 앞두고 담임은 맡지 않았다. 그 때 내가 교과를 담당했던 고 1생들에게는 난 열혈 청년교사였다. 나는 세련된 것이란 전혀 찾..

(詩) 詩人의 노래/사랑하고 싶은 자는 영원히 사랑하게 내버려 두고 남은 자는 잠 들어라

詩人의 노래 청솔고개 밤마다 호올호올 내리는 별들의, 서늘한 눈물 속에 피어나는, 천상(天上)의 꽃들을 본다 한 떨기 꽃바람에 취해 아득히 자꾸만 멀어져가는 모습들 무진(無盡) 세상에서 그리운 이 여읨이 이토록 설운 일이거늘 밤마다 열화(熱火)로 타오르는 가슴은 고통으로 끓어오르고 무진(無盡) 세상에서 불어드는 바람과 티끌로 마침내 그 센 입술마저 갈증으로 타들어 간다 그리하여, 이별하고 싶은 자는 이별하게 하고, 무시(無時)로 꿈꾸고 싶은 자는 꿈꾸게 하라, 한밤에 사랑하고 싶은 자는 영원히 사랑하게 내버려 두고 남은 자는 잠 들어라 [1978년 5월 진중에서 씀] 나의 꿈은 작가입니다. 작가는 이상주의자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이상주의자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이상을 추구합니다. 이상을 ..

36막내들이여-삼륙통신 4(2010.5.15.토)/여러분 막내에게 “같이 가자~”, “같이 가야지~”를 지금도 되뇌고 있습니다

다음은 지금부터 딱 10년 전, 내가 현직의 마지막 담임교사(고등학교 3학년) 하면서 우리 반 아이들한테 낭송하면서 띄운 편지입니다. 오늘 스승의 날 맞이하여, 이를 통해 그때의 소회를 되새겨 볼까 합니다. 청솔고개 36막내들이여-삼륙통신 4(2010.5.15.토) 나는‘스승’이라는 호칭은 너무 권위적이고 고답적인 같다고 생각합니다. ‘교사’의 날 정도가 적절할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스승의 은혜라는 노래가사에‘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는 너무 지나친 표현입니다. 현실감과도 거리가 있습니다. 이날을 만나면, 오늘날 교사의 위상, 교사를 보는 주변의 시선과 더불어 다소 씁쓸함을 느낍니다. 물론 여기에는 우리 교사들의 책임도 큽니다. 오늘은 여러분들의 관심, 축하, 정성만 생각하겠습니다. 불가에서는 이 세..

(詩) 사모(思慕)/일몰의 한 순간 돌아와 앉아서 너의 모습을 생각하면 나의 약한 가슴은 새처럼 떤다

오월이면 떠오르는 ‘나의 분신(分身)’을 위한 두 번 째 노래입니다. 다시 옛 편지함을 뒤적이며 그 시절 주고받은 사연을 들춰보았습니다. 한 글자, 한 글귀마다 이 ‘목마른 그리움으로 부르튼 무거운 입술’의 ‘짙은 외로움’에게 가없는 위로, ‘안식’을 느끼게 해 주었던 그 빛바랜 사연들이 차곡차곡 세월에 묻혀 있었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봅니다. 그 시절, 이 ‘짙은 외로움’에게는 그 ‘그리움’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시절, 나는 여리디 여린 ‘그리움’에게 손잡아주고 머리 쓰다듬어 주면서 ‘괜찮아, 괜찮아’하고 마음을 달래주고 감정을 추슬러 다독여 줄 줄을 몰랐습니다. 오로지 나만을 위해 위로 받기와 외로움 호소에 너무나도 불안해하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때는 나만의 불안한 청춘시절이어서 그..

(詩) 분신(焚身)/가는 목덜미, 열일곱 살 소녀 나의 분신(分身)이여

나에게는 나의 분신(分身)을 위해 분신(焚身)의 열병과 유혹에 내 영혼을 빼앗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내 영혼을 불사르려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40년도 더 전 오월. 철조망을 부여잡고 송홧가루를 마시며 동부전선의 이 고지(高地) 저 능선(稜線)을 누비고 헤맸던 나의 열혈(熱血) 군 시절이었습니다. 이른바 C병장으로 불리던 시절에 한 ‘그리움’으로 향한 나의 노래입니다. 분신(焚身) 청솔고개 새벽의 청아한 하늘 끝에서 숲으로 난 작은 길을 휙 돌아서면 나는 한 떨기 흩어지는 바람을 맞는다 바람은 어디로부터 근원하여 또는 마르고 붉은 강심(江心)에서 잿가루로 흩날리지만 새벽까지 세차게 울어대는 개구리의 울음으로 밤새워 통곡하는 운명에 잉태하여 언젠가는 꽃잎 되어 거침없이 흩어진다 내 사랑했던 이들이여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