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밭 82

다시 '슬픈 미소'/ 아내는 활짝 웃는다, 외롭고도 슬프리만치 흐드러지게 피어나 어떤 사연 많은 혼령들로 여겨졌던, 하얀 이팝꽃너울처럼

다시 '슬픈 미소' 청솔고개 오늘 아침 요양보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요양병원에 아내를 데리러 갔다가 담장의 줄장미를 보니 불현듯 40년 전 5월의 봄이 생각난다. 새빨간 줄 장미 꽃 더미가 아침 햇살에 불꽃처럼 피어오르는 걸 보니, 다시 조용필님의 ‘슬픈 미소’가 떠오른다. “돌아서면 잊혀 질까 세월가면 잊을 수 있을까 슬픔은 흘러흘러 가슴을 적시네 장미꽃 피는 날엔 돌아오마던 당신…….”. 조용필님은 장미꽃 피는 날에 돌아오마 하고 했던 당신을 잊지 못해, 그 깊고도 서늘한 슬픈 미소를 떠올리면서 이 노래를 열창했겠지, 하면서 나는 속으로 되뇌어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나의 젊은 시절 한때, 내게 무슨 슬픔과 한이 그리 많았던가. 그 한과 슬픔의 실체는 무엇이었던가. 한 세대도 지난 지금 여전히 ..

마음의 밭 2021.05.25

나의 자전거 인생 4/ 세 번째 자전거 사고는 정말 극적이어서 나의 자전거 인생에 어떤 영감을 주는 것 같다

나의 자전거 인생 4 청솔고개 내 자전거와 접촉한 운전자를 보내주고 바로 친구와 만나서 같이 점심을 먹었다. 오늘따라 봄볕이 참 좋아서 시내를 빠져나왔다. 근처 공원 산책하러 가는데 2,30미터를 걸으면 심하게 다리가 저려온다. 잘 걷지를 못하고 자전거를 잡고 잠시 서있거나 아니면 근처 벤치에 앉아 쉬었다. 보통 오후가 되면 오전에 몸이 충분히 예열되어서 다리 저림이 덜 한데 오늘은 유독 심하게 느껴졌다. 아까 사고 직후 바로 병원 갔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쑥 치민다. 쉽게 결정한 것에 대한 후회의 감정이다. 30분 정도 걷는데 대 여섯 번은 쉬었다. 하는 수 없이 더 걷지 못하고 친구와 헤어져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이미 내 마음은 사고의 충격이 제대로 온 것 같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

마음의 밭 2021.03.24

나의 자전거 인생 3/ 자전거와 차와의 충돌이 이런 거로구나. 결국은 한 번 올 게 왔구나

나의 자전거 인생 3 청솔고개 엊그제 일어난 세 번째 사고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그날 친구와 오랜만에 점심 약속이 있어 시간 맞춰 가고 있었다. 신호등이 없는 다리 끝 횡단보도를 건너려다 일단 정지를 하였다. 차 한 대를 먼저 보내고 뒤에 이어오는 차와는 틈이 좀 있어서 안심하고 지나가는데 순간, “툭~“ 하면서 내 자전거 앞바퀴가 승용차 오른쪽 앞부분에 살짝 부딪치면서 자전거와 내 몸이 왼쪽으로 넘어졌다. 왼쪽 무릎이 땅에 부딪친다. 무릎을 중심으로 온몸에 약간의 충격이 전해진다. 순간 속으로 늘 걱정하던 “자전거와 차와의 충돌이 이런 거로구나. 결국은 한 번 올 게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즉시 차가 정지하고 운전자가 당황한 표정으로 급히 내려서 “괜찮습니까? 많이 다치지는 않았는지요?”하고 ..

마음의 밭 2021.03.23

나의 자전거 인생 2/ 나와 평생 고락을 같이한 나의 자전거는 나의 애마(愛馬)임에 틀림이 없다

나의 자전거 인생 2 청솔고개 평생 자전거 안장을 말안장처럼 여기면서 생활한 나로서는 자전거에 얽힌 많은 에피소드가 있다. 중학교에 들어가자 다리가 좀 길어져서 내 자전거가 마련됐다. 나의 애마(愛馬)가 생긴 것이다. 나는 자전거 타기를 통해서 비로소 자유를 몸으로 실감하게 되었다. 매년 방학만 되면 아버지가 솔가해서 우리 식구는 모두 시내 셋방의 문을 잠가놓고 이 십리 남짓 떨어진 고향 큰집에 가야했다. 나를 비롯해서 학교 근무하시는 아버지도 방학이니, 당시로서는 부모님이 이 때라도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셔야 한다는, 자식의 도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학교에서 보충수업을 받아야 했다. 수업에는 빠질 수 없어서 보충수업이 있는 날은 매일 자전거로 왕복 60리 길을 달렸다. 신작로..

마음의 밭 2021.03.22

나의 자전거 인생 1/ 달리면 마음을 어지럽히던 우울감도 자전거 바퀴의 부드러운 미끄러짐이 주는 쾌적함, 귓가를 가볍게 스치는 바람결에 묻히고 날아가 버린다

나의 자전거 인생 1 청솔고개 내가 자전거 페달에 발바닥을 딛고 홀로타기를 시작한 지 올해로 만 59년이 된다. 나의 자전거는 나의 그림자, 나의 영혼, 나의 소중한 동반자다. 시내에서 나의 자전거 타기 원칙은 이렇다. 심한 비바람, 눈보라의 날씨가 아니면 자전거로 이동한다. 태워드려야 할 어르신이 기다리고 있거나 실어야 할 무겁고 부피가 큰 짐이 없으면 자전거로 이동한다. 자전거 이동의 가장 큰 매력은 주차에 대한 부담이 없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 이맘때쯤 나는 자전거 타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너무나 타고 싶었다. 유난히 키가 작은 나는 다리가 짧아 아버지의 자전거 안장에 엉덩이를 걸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당시 우리 또래 아이들이 어른 자전거 타는 방식을 따라 나도 연습해 보았다..

마음의 밭 2021.03.21

진정한 소유 4/오래된 통에는 베틀 ⁰바디와 ¹대꼬바리 등 옛 물건이 꽂혀 있다.~ “완전한 정리는 완전히 버리는 것이다.” 진정한 소유는 버림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진정한 소유 4 청솔고개 피아노가 놓여 있는 남쪽 방은 아버지의 힐링장소이다. 25년 전 퇴직 직후, 아버지는 한때 2년 동안인가 통도사 부설 불교 대학에 입학하셔서 법사 공부를 열정적으로 하셨다. 수료하실 때는 웬만한 염불 독경은 능숙하게 염송하시는 걸 한 번씩 들은 적이 있다. 그 때 수료식 때 법사복장을 하고 찍은 사진이 대형 액자 속에 담겨져 이 방의 벽에 걸려 있고 법사 복장도 바로 옆에 잘 걸려 있다. 그 옆에는 해마다 추념식 때 받은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새겨진 ‘현충일, 추모’의 리본도 하나도 버리지 않으시고 고이 모아서 걸어 놓으셨다. 아버지의 평생 염원을 헤아릴 수가 있겠다. 건너 방으로 옮겨서 우선 손쉽게 정리할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해 넘긴 달력 뒷면에 내가 좋아하는 ‘사랑’..

마음의 밭 2021.03.20

진정한 소유 3/아버지의 사범학교 졸업장, 육군대장 백선엽(白善燁) 명의의 육군하사명예 제대증서, 문교부장관 명의 교원자격증, ‘八○○환을 給함’으로 기록된 최초 임지를 지정한 교원..

진정한 소유 3 청솔고개 또 큰방에 들러서 서랍장을 열어보았다. 아버지의 자료 중 이 생애 기록장만큼은 매우 소중하니 반드시 보존해야 한다고 평소 생각해 왔다. 아버지도 틀림없이 이와 같은 생각이실 것이다. 제일 두꺼운 대학노트, 기업에서 업무용 수첩에 기록돼 있는 기록의 한쪽을 살짝 들춰보았다. 종서로 써 내려간 필체가 아주 정갈하고 반듯하다. 이것에 아버지의 평소 성품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또한 아버지께서 당신의 삶을 순간순간 얼마나 소중히 여기셨나 하는 것을 체감한다. 그래서 보관 상태를 확인도 할 겸 한 번씩 들춰본다. 그 때마다 이건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은데 다른 것들은 또 어쩌랴 하는 생각이 들면 아득해진다. 서쪽 방에는 또 소중한 자료가 있다. 아버지의 사범학교 졸업장, 육군대장 백선엽(..

마음의 밭 2021.03.19

진정한 소유 2/ 손에 잡히고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진정한 소유라는 생각이 든다

진정한 소유 2 청솔고개 옥상이자 급조된 이층 공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으로는 아내가 처녀 시절에 한 땀 한 땀 공들어 새긴 자수 작품 액자가 새까만 때가 낀 채,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우리의 혼인 이후부터 처소에 늘 함께했던 소중한 기념물이었는데, 세월이 흐르니 이렇게 퇴출된 것 같아서 마음이 짠하다. 산속 눈밭에 사슴 가족이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평화로운 풍경을 담은 대형 자수다. 아주 눈에 익은 그림이다. 그 옆에는 더 작은 자수 액자가 또 하나 놓여 있다. 큰 차양의 모자를 쓰고 있어서 엄마인지 누나인지 얼굴은 안 보이는 한 여자가 어린 소년과 다정스레 나란히 풀밭에 걸터앉아 푸른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다보고 있다. 언덕 왼쪽에는 빨간 지붕을 한 집 한 채가 그림같이 자리 잡고 있다. ..

마음의 밭 2021.03.14

진정한 소유 1/ 양철기와로 덮여진 2층의 들창을 통해서 끝없이 이어지는 산, 들, 무덤, 길, 연못, 논, 밭, 골목이 주는 느낌

진정한 소유 1 청솔고개 오랜만에 큰집을 들렀다. 그새 포근한 날씨가 이어졌다고 마당에서 빈집을 지키고 있던 키가 큰 동백나무가 꽃을 한 송이 피웠다. 나머지 대여섯은 눈망울을 살짝 틔우고 있었다. 이번 겨울 동안 적막강산 같은 우리 집을 지킨다고 참 애썼다. 꽃 이마라도 쓰다듬어주고 싶다. 그 옆에는 조로증이 들었는지 처음부터 늘어져 옆으로 퍼져서 캐내 버리려다가 아버지가 끈으로 이리저리 달아매놓은 잎이 아주 기다란 소나무도 잘 버티고 있다. 애기 동백도 나도 질세라 하나둘씩 빼꼼히 실눈을 뜨고 있다. 여기도 봄볕이 벌써 달다. 나는 몇 년 전 이곳의 지진으로 몇 군데 벽의 틈이 벌어졌다면서 당국에 신고까지 한 이후로 생각했던 집수리가 나의 인생 과제로 대두하는 것 같다. 머리가 좀 복잡해진다. 수리도..

마음의 밭 2021.03.13

신체화(身體化) 증상/이래도 몸의 아픔을 가지고 마음의 아픔을 상쇄하려고 하는 어리석은 고집을 계속할래

⁰신체화(身體化) 증상 청솔고개 마음이 심하게 아프면 몸으로 전이(轉移)가 돼서 몸이 아픈 증상을 신체화 증상이라고 한다. 나는 아직은 마음이 덜 심하게 아파서 그런지 이런 증상까지는 겪어보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는 자주 역(逆) 신체화(身體化) 증상의 유혹에 빠지는 것 같다. 며칠 전 산행에서 나는 그런 욕구를 강하게 느꼈다. 며칠 전 산행에서는 들머리에서 좀 늦게 출발했다. 4시가 지나니 짧은 겨울날이라 벌써 어둑어둑한 것 같다. 그날 나는 이 길을 걸으면서 이 길을 내 마음의 길이라고 여겨 보고 싶었다. 전에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었다. 그날은 이 길을 통해서 내 마음의 길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었다. 어디에 돌부리가 험하게 나 있고, 어디에 나무뿌리가 얼기설기 엮어져서 걸리기 쉬운 지..

마음의 밭 2021.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