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래, 나의 편지 90

(詩) 가을날의 동화 6, '가을에 생각함', '가을 언덕'/흩날린 상념의 홀씨를 주어 담는다 맨발로 가자 옥빛 가을이 머무는 언덕으로

가을날의 동화 6, 시 2편 가을에 생각함 청솔고개 내가 언제 어디서부터 와서는 이리 서성이는지 휘익 바람이 불어 오는 곳에다 그 아득한 유년의 꽃밭 민들레꽃으로 흩날린 상념의 홀씨를 주어 담는다 노랑민들레 그 한 송이에 실린 연둣빛 꿈 이 가을에는 마주하는 또 하나의 단애 너머 오로지 세사로 부랑하는 녹색의 장원을 찾아 헤맴이여 가을 언덕 청솔고개 은빛으로 부서지는 따가운 햇살의 위대한 광휘처럼 사랑은 그렇게 오는가 가을은 그렇게 오는가 가녀린 고추잠자리가 별처럼 사랑스럽고 별이 내리는 곳에 함초롬히 이슬 머금은 창백한 들국화 송이 송이들 가자 한 겨울 눈밭으로 눈 부시는 빛이 있는 그해 가을 언덕으로 빠알간 지붕에는 잿빛 비둘기 한 쌍이 졸고 문득 불망의 그 여인이 짓던 수선 같은 미소가 어린다 한숨..

(詩) 古木頌/내 병든 영혼을 쓰다듬는 생명소

古木頌 청솔고개 당신 앞에서면 문득 나는 터질 것만 같은 울음으로 울먹이는 가여운 아이가 됩니다 당신은 연둣빛 넓은 잎을 서걱입니다 밤새워 토닥이는 장마 비에 나는 통곡하는 심사로 당신을 지킵니다 그것은 바로 天上에서나 울리는 태고의 말씀 우주의 울림 내 병든 영혼을 쓰다듬는 생명소입니다 지금은 참 호젓한 나만의 시간이다. 도서관 서재에서 동쪽 창을 내다보면 아득한 단애가 마치 태고의 정적미를 자아낸다. 하늘가에 자란 소나무 그 너머에는 푸른 영일만이 이 가을비에 젖어 있겠지. 오늘은 수업이 없어 종일 음악 듣고 책 공급하고 교재연구하면서, 신동아 기사 읽으면서 보냈다. 참으로 오랜만에 허여된 자유로운 시간과 공간. 참으로 많이 절망하고 한숨 쉬고 가슴 졸이며 보내온 그간의 세월이 아니었던가? 이제 나의..

(詩) 마른 호수/마른 풀 내음으로 가득 찼고

마른 호수 청솔고개 그해 가을 마른 호숫가에서 고독한 이가 서성이는데 호수엔 드러난 붉은 흙만 가득하고 한 방울의 물밖에 가을은 그녀의 흩날리는 스카프처럼 다가와서 고추잠자리 날음으로 소리 없이 가버리는 것 가을은 마음 없는 아이가 창백한 들국화 떨기떨기 사이로 은 백양처럼 화사한 미소를 허락하는 것 마른 호수엔 마른 풀 내음으로 가득 찼고 언덕에서 불어오는 한 점의 바람 가을을 날린다 호수는 내 안처럼 말라 비었고 슬퍼도 슬퍼도 한 방울 눈물도 없는 호수 마른 호수 [1977. 9. 7. 오후 진중 호변에서 노래함] 2020. 9. 14.

(詩) 들국화는 피었는데/한 떨기 슬픔으로 피어오르는가

들국화는 피었는데 청솔고개 영아 너는 듣는가 그해 가을 이루지 못한 나의 사랑이야기를 오늘도 해는 떠오르고 송이송이 구름은 솜처럼 피어나는데 나의 사랑은 한 점 바람에 옥색 들국화로 피어난다 길은 멀어 하늘가에 노을처럼 그리움이 모이고 옥빛 영혼은 안개처럼 흩어진다 이윽고 별빛이 눈발로 내리는 밤 나의 가여운 영혼아 어느 거친 산야에서 한 떨기 슬픔으로 피어오르는가 영혼은 어디메서 마른 은하의 강변에서 호올 호올 눈 내리는 언덕 오솔길에서 왔는가 머물 곳이 없고 언제나 헤매는 신세 내 사랑은 눈보라에 시달려도 한 떨기 꽃으로 피어나고 영아 들국화는 피었는데 듣는가 나의 사랑이 꽃이 되어 꽃잎으로 흐르는 얘기를 [1977. 9. 7 오후 진중 호변에서 노래함] 2020. 9. 13.

(詩) 蓮花/무연의 눈물은 흐르는가

蓮花 청솔고개 험한 세상 살아가는 歷程에서 피로한 내 영혼 뉘일 곳 없어 덧없는 서성임만 길나그네처럼 가없이 가없이 어느 일몰의 순간 떠도는 영혼은 은 백양이 눈부시는 갈잎의 호수 언덕받이에서 한 송이 떠서 흐르는 白蓮 꽃봉오리에 사뿐히 내려 앉아 쉬일까 진홍의 노을이 머물러 한 하늘이 다시 열리고 꽃잎처럼 별이 지고 무연의 눈물은 흐르는가 깊이도 모를 만큼 심연에서 돋아난 한 송이 함초롬한 生命 白蓮花 억겁 전에 인연하여 한 알 좁쌀 같은 씨앗이 잔설 스친 봄날 새벽에 그 입김으로 날려 와 거센 물결에 휩쓸리고 껍질 깨지는 아픔으로 인고하나니 싹은 트고 발을 내리고 마침내 눈물로 맺힌 꽃봉오리의 반개한 미소에 나그네의 눈길이 머무는데 마음 없는 소녀 가슴마냥 접어 두었던 白蓮花 잎 함박웃음 펴는 날 [..

내 생애 ‘마지막 수업’ 그 5일의 기억 8/(詩) 감포행-우리 떠남이 결코 욕되지 않고

내 생애 ‘마지막 수업’ 그 5일의 기억 8 청솔고개 나의 노래하나 낭송으로 청솔고개 마지막 희망편지를 마치겠습니다. 나의 ‘감포행’입니다. 감포행 청솔고개 떠날 때가 되면 떠나는 사람이어야 한다, 우리는. 갯가에는 겨울 해거름에 마른 바람이 불어오고 또다시 서성이는 내 영혼의 그림자 털털거리는 버스에 누이고 떠나간다.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고 마시지 않아도 흠뻑 취하는데 몸 가누지 못하고, 스러져 실려 가는 한 세상임에랴 마침내 눈 뜨면 한가슴으로 다가오는 겨울 들녘 반도의 허리는 점점이 응혈되고 한 서리는데, 겨울 햇발보다 더 포근한 흙먼지로 단장한 마른 아카시아 수풀 얼룩덜룩 색 바랜 슬레이트 지붕 선술집 봉노 싸늘히 식어가고, 이지러진 문살 닫힌 삽짝에 인적은 드물다. 파릇한 천년의 댓잎 바람에 ..

나의 암울 시대를 건너는 법 1/이런 노래들은 들을수록 내가 한껏 치유되는 느낌이 든다

나의 암울 시대를 건너는 법 1 청솔고개 고향 친구와 밥 한 끼 같이하면 으레 반주 한 잔씩 한다. 그 때 단골 안주로 등장하는 것은 살아가는 이야기다. 그 중에서도 청춘 시절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아무래도 누구나 한 생애 살아오면서 가장 치열하고 인상적인 삶의 고비를 지나왔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리라. 앞으로 닥칠 일이나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일보다는 자연스레 지난 날 이야기가 많이 회자되는 것은 그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이제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갈 시간이 훨씬 적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친구와의 그런 대화는 늘 내게 위안을 준다. 이제 그 친구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온다. 해질 무렵 혹은 밤늦게 혼자 걸어서나, 아니면 자전거 타고 집에 오면서 온갖 상념에 잠긴다. 대개 술이 한 잔 ..

(詩) 장마/진종일 한 달 열흘 나의 비를 기다린다 중병환자다

장마 청솔고개 언젠가 아득한 어릴 때부터 나는 갈증에 시달렸다 병증의 이름은 나도 모른다 그냥 한없는 갈증이다 장마철 하늘을 뒤덮는 소나기를 맞으며 나는 나의 병을 치유하는 법을 배웠다 갈증을 풀었었다 진종일 한 달 열흘 나의 비를 기다린다 중병환자다 시인의 파초다 장마는 나의 집중 치료기간 지루하지 않은 것 한없이 기다려지는 것 흥건히 젖어드는 지붕 헤뭉개질 듯한 베리빡 흙담을 휘감아 돌아드는 호박잎의 질긴 생명의 힘이 비를 맞아 후두둑후두둑 진한 생명의 소리 모락모락 피어나는 생명의 기운 펄펄 날리는 먼지를 잠재운 마당의 물길은 내 작은 호수 미꾸라지도 용트림하고 송사리도 목감는다 허연 배때기를 뒤집는 송어의 자맥질 댓바람소리 댓바람에 비 뿌리는 소리에는 내 유년의 꿈이 영글고 천년의 비바람에 살찌운..

(時調) 일천바위에서 낙우송 숲을 바라보다/오늘도 이 바위에서 피리 부는 신선되랴

일천바위에서 낙우송 숲을 바라보다 청솔고개 일 천 번 오르고파 내 ⁰일천바위더냐 일 천 명을 살렸다고 일천바위라더냐 오늘도 이 바위에서 피리 부는 신선되랴 자부룩한 소깝 초원 천상의 바람 따라 안개 얹혀 구름 타고 산새처럼 날아보랴 하늘가 흰 구름 너머 태백준령 동해 청파 봄에는 두견화며 풍진만리 송홧가루 골 우네로 이슬 젖은 한여름 ¹낙우송 숲 딱따르 딱따구리가 마른 등걸 후벼 파네 찬 이슬로 젖은 들국 함초로이 고개 떨궈 키 큰 나무 그 사이로 서광마냥 빗살햇살 저 빗살 타고 날으면 마음은 곧 고향 골목 이제는 흘러갔네 구름처럼 떠나갔네 흐르는 강물에다 그 바람도 놓아주랴 물처럼 저 바람처럼 거스를 수 없는 세월 2020. 6. 27.

(時調) '그날'-라고(羅古) 법사, 울 아부지 /칠십 년 전 산화하신 갓 스물 전우 영전

'그날' -라고(羅古) 법사, 울 아부지 청솔고개 먼저 가신 벗들보단 네 배는 더 산다고 여한 없다 욕심 없다 라고(羅古) 법사 평생 화두 어쩌다 요양병상에 세월만 기다리셔 삶은 계란 먹고 싶다 간청하듯 전화하니 울 아부지 그 기백은 세월 따라 허물어져 옛 기력 회복 기대는 희망 고문 통증 지옥 일제 강점 수탈 만행 해방 후 이념 희생 좌우익 물어뜯던 격랑의 그 시대도 분연히 뛰어넘어서 평생을 쌓으신데 사범학교 다니다 사범 되는 꿈은 접고 경비대 지원 후 마산 훈련소 신병 교육 오늘이 육이오 동란 바로 그날 일흔 돌 유엔 군번 유엔 군복 휘황 번쩍 찬란케도 지리산 공비 토벌 빛나는 전공 세워 사선을 넘고 넘어서 금천까지 진격 감격 꿈같은 북진통일 천추의 한 민족통일 일사퇴로 허물어져 전우 시체 밟고 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