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래, 나의 편지 90

(詩) 다시는 오지 말아야지/차라리 입을 다물거나 오월의 잔혹한 태양 아래서는

다시는 오지 말아야지 청솔고개 차라리 입을 다물거나 오월의 잔혹한 태양 아래서는 갈증(渴症)처럼 욕망에 몸뚱아리를 핥이며 핏발선 눈으로 지킨 기인 밤을 고이 눈을 감고 있었지 가장 신성한 듯이 실거머리 입술을 마지막 보루처럼 지키면서 어디로 갔을까, 그미는 온기 남은 동전마저 날렵한 입질로 물어가고선 동굴처럼 칙칙한 어두운 내음을 흘려 두고선 이름도 묻지 않는 그미는 욕망의 긴 터널 입구에서 기나긴 서성임은 결코 취하지 않아서였던가 새벽에는 짙은 운우(雲雨)로 한 마리의 지친 들개처럼 뒷다리를 질질 끌면서 나는 마지막 자유를 향유했다 그렇다 새벽에는 탈출해야 한다 이 욕망의 동굴을 눈을 감을 거나 절망을 외면해서인가 내 순수(純粹)의 기인 머리카락을 끝없이 흩날리면서 발정한 까투리의 깃털처럼 나의 눈에는..

(詩) '流刑地에서', ‘문학의 힘과 역사의 힘’ (2/4)/센머리 지바고는 이 밤에도 至純의 라라를 생각하려나,『의사 지바고(DOCTOR ZHIVAGO)』를 읽고

『의사 지바고(DOCTOR ZHIVAGO)』 ‘문학의 힘과 역사의 힘’ (2/4) 청솔고개 流刑地에서/ 청솔고개 침엽수림 하늘가에 닿아 雪原은 더욱 아득한 太白峻嶺 밤낮으로 끊임없이 긴 장례(葬禮) 행렬(行列) 마냥 죽어 포개진 나무들 일렬종대(縱隊)로 누워서 어디론가 어디론가 실려 가는데 弔哭도 없이 울리는데 도색(塗色)한 G. M. C의 숨 가쁜 호흡 일렬횡대(橫隊)로 이어진다. 하루에도 열두 번 겹겹이 포개진 흐려 한없이 낮은 하늘을 쳐다보며 갈매기 날으는 남국을 오가는 마음이나 길은 멀어 아득한 천 리 만 리 異國같은 곳에 해사한 갈래머리 少女 포근한 웃음에 가슴 떨군다. 運命을 생각하고 祖國을 따스하게도 가슴에 안으며 또 다시 이름도 없는 自由를 찾아 나서랴 너는 또 다른 이름의 脫出者 센머리 ..

(詩) 詩人의 노래/사랑하고 싶은 자는 영원히 사랑하게 내버려 두고 남은 자는 잠 들어라

詩人의 노래 청솔고개 밤마다 호올호올 내리는 별들의, 서늘한 눈물 속에 피어나는, 천상(天上)의 꽃들을 본다 한 떨기 꽃바람에 취해 아득히 자꾸만 멀어져가는 모습들 무진(無盡) 세상에서 그리운 이 여읨이 이토록 설운 일이거늘 밤마다 열화(熱火)로 타오르는 가슴은 고통으로 끓어오르고 무진(無盡) 세상에서 불어드는 바람과 티끌로 마침내 그 센 입술마저 갈증으로 타들어 간다 그리하여, 이별하고 싶은 자는 이별하게 하고, 무시(無時)로 꿈꾸고 싶은 자는 꿈꾸게 하라, 한밤에 사랑하고 싶은 자는 영원히 사랑하게 내버려 두고 남은 자는 잠 들어라 [1978년 5월 진중에서 씀] 나의 꿈은 작가입니다. 작가는 이상주의자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이상주의자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이상을 추구합니다. 이상을 ..

(詩) 사모(思慕)/일몰의 한 순간 돌아와 앉아서 너의 모습을 생각하면 나의 약한 가슴은 새처럼 떤다

오월이면 떠오르는 ‘나의 분신(分身)’을 위한 두 번 째 노래입니다. 다시 옛 편지함을 뒤적이며 그 시절 주고받은 사연을 들춰보았습니다. 한 글자, 한 글귀마다 이 ‘목마른 그리움으로 부르튼 무거운 입술’의 ‘짙은 외로움’에게 가없는 위로, ‘안식’을 느끼게 해 주었던 그 빛바랜 사연들이 차곡차곡 세월에 묻혀 있었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봅니다. 그 시절, 이 ‘짙은 외로움’에게는 그 ‘그리움’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시절, 나는 여리디 여린 ‘그리움’에게 손잡아주고 머리 쓰다듬어 주면서 ‘괜찮아, 괜찮아’하고 마음을 달래주고 감정을 추슬러 다독여 줄 줄을 몰랐습니다. 오로지 나만을 위해 위로 받기와 외로움 호소에 너무나도 불안해하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때는 나만의 불안한 청춘시절이어서 그..

(詩) 분신(焚身)/가는 목덜미, 열일곱 살 소녀 나의 분신(分身)이여

나에게는 나의 분신(分身)을 위해 분신(焚身)의 열병과 유혹에 내 영혼을 빼앗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내 영혼을 불사르려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40년도 더 전 오월. 철조망을 부여잡고 송홧가루를 마시며 동부전선의 이 고지(高地) 저 능선(稜線)을 누비고 헤맸던 나의 열혈(熱血) 군 시절이었습니다. 이른바 C병장으로 불리던 시절에 한 ‘그리움’으로 향한 나의 노래입니다. 분신(焚身) 청솔고개 새벽의 청아한 하늘 끝에서 숲으로 난 작은 길을 휙 돌아서면 나는 한 떨기 흩어지는 바람을 맞는다 바람은 어디로부터 근원하여 또는 마르고 붉은 강심(江心)에서 잿가루로 흩날리지만 새벽까지 세차게 울어대는 개구리의 울음으로 밤새워 통곡하는 운명에 잉태하여 언젠가는 꽃잎 되어 거침없이 흩어진다 내 사랑했던 이들이여 그..

(時調) 이팝과 계화/목화송이나 소복의 흰색이 연상되는 이팝의 흰색에는 왠지 사람과 만물의 혼령이 스며들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팝과 계화 청솔고개 아카시아 꽃 피기 앞서 시가의 가로수에 밤새 이팝이 소복소복 내려앉아 있다. 오월의 맑은 햇살에 이팝이 정월달에 내린 눈 이불처럼 포근하고 소담스럽다. 봄 햇살 아래 퍼져나는 물안개처럼 피어오른다. 도시는 갑자기 환해져 오월의 태양에 하얀 폭죽이 터져나가는 것 같다. 오월의 한낮 양광에 퍼져나가는 이팝의 맑은 흰색은 도심을 신비롭게 한다. 목화송이나 소복의 흰색이 연상되는 이팝의 흰색에는 왠지 사람과 만물의 혼령이 스며들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파도처럼 퍼져나가 뭉개 뭉개 흰 구름송이로 피어나는 벚꽃의 흰색과는 또 다르다. 이팝의 도시는 아주 신비롭고 이국적인 풍광과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주 영적이며 시적이다. 그래서 그 꽃말이 ‘영원한 사랑’이며 그 학명을 풀이하면 '하얀 눈꽃'이..

(詩) 비명(碑銘)/혹 낮은 머리 뉘일 데 없어 창공 중에 부유하다가도

비명(碑銘) 청솔고개 내 잠들어 가없이 떨어지거들랑 찬 가슴에 두 손을 모으게 하여 곤한 눈 겹을 쓸어주오 달빛이 없다하더라도 깜빡이는 별빛 같은 옥색 바다가 뵈는 바람 부는 그 언덕을 비추어 주오 밤새 찬 이슬이 허공을 향해 울부짖는 내 백랍(白蠟) 같은 영혼, 그 흰 옷 자락을 촉촉이 적시어도 나는 기어이 비상하여 한 떨기로 스치는 겨울바람이 되리라 혹 낮은 머리 뉘일 데 없어 창공 중에 부유하다가도 어느 가을날 휙 돌아오는 골목길에 흩날리는 한 줌의 티끌이 되더라도 내 한하지 않으리라 [1978년 봄, 강원도 한 진중에서] 문득 나의 청년 시절, 강원도의 군 복무 시절의 나날은 절대고독의 하루하루이었기에, 나도 절대적으로 묘비명 하나는 남겨 놓아야 할 것 같았었다. 그때의 기록을 다시 들여다 본다...

‘내 생애의 낙화유수(落花流水)’/낙화표풍(洛花漂風)…… 지는 꽃잎이 물위에 떠서 흐르기도 하고 바람에 나부끼기도 한다 혹은 바람에 흔적 없이 표표(漂漂)히 흩날리는 깃발……

‘내 생애의 낙화유수(落花流水)’ 청솔고개 사람은 낙화유수 인정은 포구/ 보내고 가는 것이 풍속이더냐 영춘화 야들야들 피는 들창에/ 이 강산 봄소식을 편지로 쓰자 인생사는 낙화해서 유수처럼 흘러가 되돌릴 수는 없지만, 결국 닿는 곳은 포구이니, 그곳은 사람의 정이 넘친다는 희망의 메시지다. 사람의 풍속은 ‘가는 사람 잡지 말고 오는 사람 막지 말라’고 했거늘, 봄맞이꽃들이 어우러진 들창 가에서 이 강산 봄소식을 그리운 이에게 편지로 보내드리고 싶다는 열망을 노래하고 있다. 올해도 또 4월의 끝자락, ⁰‘꽃은 피고 지고 세월이 가도 (지는 꽃에 대한) 그리움은 가슴마다 사무쳐 오네’ 그래서 아래는 그간 틈틈이 내가 기워서 펼쳐 보이는 ‘내 생애의 낙화유수(落花流水)’ 내 생애 조각조각을 땀땀이 기워서 지어..

먼 산에 아지랑이 2/ 품안에 잠자고 옛 동무는 봄이 온 줄 왜 모르시나요, 때로는 퍼질러 주저앉아서 찔레 꽃송이를 따서 도랑물에 띄우기도 한다. 때로는 참꽃 꽃다발이나 엉겅퀴, 꿀풀 다..

먼 산에 아지랑이 2 청솔고개 나는 이 노래가사를 흥얼거리며, 혹 이 노래를 불러 본 적이 있었는지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보곤 한다. 친구가 혹 가물가물 기억이라도 되살리면 내가 더 좋다. 원곡의 국적이 어딘지 몰라도, 사연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을 주체하지 못해 노래 절 수를 자꾸 보태 가을 노래까지 덧붙여 구전되어 오는 이 노래는 들을수록 더욱 애잔하고 절실하다. 나는 이 노랫말과 곡조에 취해 다시 어린 시절에 젖어 본다. 먼 산에 아지랑이 품안에 잠자고/ 뒷동산에 흐르는 물 또 다시 흐른다. 앞산에는 꽃이 피고 벌 나비는 꽃을 찾는데/ 옛 동무는 봄이 온 줄 왜 모르시나요. 먼 산에 아지랑이 품안에 잠자고/ 산골짜기 흐르던 물 또 다시 흐른다. 고목에도 잎이 피고 옛 나비가 꽃을 찾는데/ 가신님..

이 봄의 ‘낙화유수’/계곡 물 위에는 유유히 흐르는 꽃잎들이 소용돌이 속으로 말려들어가고 있다

이 봄의 ‘낙화유수’ 청솔고개 며칠 전 산행하고 내려오는데 산 벚꽃이 지기 시작하니 내 마음이 무단히 서러워서 아이한테 겹벚꽃을 이야기를 했더니, 조금 관심을 표한다. 아이는 원래 꽃에 대해서는 별무관심이다. 암자 앞에 굽이쳐 작은 폭포를 이루고 있는 계곡으로 산 벚꽃이 폴폴 눈처럼 지고 있다. 그러더니 휙, 하고 한 줄기 봄바람이 불어오니 살랑살랑, 나풀나풀 하고 표표히 날리다가 계곡 안쪽으로 휩쓸려 물위에 진다. 이건 낙화풍진(洛花風塵)이랄까. 이미 계곡 물 위에는 유유히 흐르는 꽃잎들이 소용돌이 속으로 말려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낙화유수(落花流水)’이러니.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에/ 새파란 잔디 얽어지은 맹세야 세월에 꿈을 실어 마음을 실어/ 꽃다운 인생살이 고개를 넘자. 그래서 나도 질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