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749

(詩) 나의 노래 2편, '사랑은', '기도'/메밀꽃내음 싸한 언덕 너머

나의 노래 2편 청솔고개 43년 전, 나의 20대 후반에 이 가을날들을 지나면서 난 무엇을 희구하고 생각하며 느꼈을까. 무엇을 하면서 그 많은 날들을 보냈을까. 불현듯 그 날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맘속으로 추억하던 끝에 그 때 기록을 뒤져보았다. 그 때, 입대한 지 만 1년 남짓 되던 시기였다. 중동부전선 진중에서의 생활은 고독과 갈망의 나날이었다. 그래서 그때의 진중 기록은 내게 가장 소중하고 치열하였었는데, 보안 규정상 전역하면서 마지막 날 저녁에 부대 배출대 페치카에 태워버렸다. 내 딴에는 전역에 지장이 있을까봐 선제 조치한 것이었다. 나의 3년 동안의 그 소중한 기록의 폐기와 상실은 씻을 수 없는 아픔과 쓰라림이었다. 아직도 그 상실감이 남아 있다. 그래도 그때 어쩌다 나의 심중을 단편적으로 ..

가을날의 동화 8, 우리를 슬프게 하는 축제의 뒤끝/무지개를 좇다 놓쳐버린 악동처럼 애잔한 마음이 더하여져서 그때 운동장 한 구석에서 정말로 한번은 크게 울어버렸던 기억

가을날의 동화 7, 우리를 슬프게 하는 축제의 뒤끝 청솔고개 가을이 깊어간다. 이즈음에는 반드시 가을 운동회가 열린다. 당시 학교 운동회는 곧 마을 축제다. 우리 학교에서 운동회 하면 같은 면의 골짜기 안쪽 두 학교에서도 한두 시간 수업만 하고 아이들이 막 몰려온다. 구경도 하고 동네 대항 경기에 참여하기도 하고 응원도 해야 한다는 명분이다. 이래서 근처 마을뿐만 아니라 온 면의 축제로 발전 된다. 이웃 학교에 운동회 때문에 수업을 조정할 수 있었던 그 때의 일상에는 느림의 미학, 유연성과 자유로움, 여유 등이 넘쳐나고 있었다. 운동회 전 과정이 아련히 떠오른다. 사전 연습과 준비, 당일 축제의 열기, 끝 난 후 허망함과 쓸쓸함은 지금도 내 가슴에 아련히 남아 있다. 축제는 끝났다. 키 큰 연분홍, 진분..

(詩) 가을날의 동화 7, 단애(斷崖)/너도 그렇게 젖을 수 있구나

단애(斷崖) 청솔고개 내가 너를 마주하면 너는 뛰어 넘을 수 없는 무한(無限) 너는 오늘 따라 가을비에 쓸쓸히 젖어 있다 너도 그렇게 젖을 수 있구나 죽도록 보고 싶은 사람에게 한 장의 엽신이라도 띄어 보내고 싶은 가을 날 저녁 절벽에는 모진 생명이 꽃을 피웠으나 그 붉은 모습은 그냥 불모지일 뿐 모두들 어디 갔나 어디로 갔나 보고 싶다 그냥 달려가 보고 싶다 그런데 그들의 실체는 떠나고 싶다 이 단애를 뛰어넘어 어디로든 무작정 [1977. 가을 어느 날, 진중에서] 2020. 9. 19.

(詩) 가을날의 동화 6, '가을에 생각함', '가을 언덕'/흩날린 상념의 홀씨를 주어 담는다 맨발로 가자 옥빛 가을이 머무는 언덕으로

가을날의 동화 6, 시 2편 가을에 생각함 청솔고개 내가 언제 어디서부터 와서는 이리 서성이는지 휘익 바람이 불어 오는 곳에다 그 아득한 유년의 꽃밭 민들레꽃으로 흩날린 상념의 홀씨를 주어 담는다 노랑민들레 그 한 송이에 실린 연둣빛 꿈 이 가을에는 마주하는 또 하나의 단애 너머 오로지 세사로 부랑하는 녹색의 장원을 찾아 헤맴이여 가을 언덕 청솔고개 은빛으로 부서지는 따가운 햇살의 위대한 광휘처럼 사랑은 그렇게 오는가 가을은 그렇게 오는가 가녀린 고추잠자리가 별처럼 사랑스럽고 별이 내리는 곳에 함초롬히 이슬 머금은 창백한 들국화 송이 송이들 가자 한 겨울 눈밭으로 눈 부시는 빛이 있는 그해 가을 언덕으로 빠알간 지붕에는 잿빛 비둘기 한 쌍이 졸고 문득 불망의 그 여인이 짓던 수선 같은 미소가 어린다 한숨..

가을날의 동화 5, 회의와 고뇌/이제 영원한 침묵(沈默)을 희구(希求)하고 있다

가을날의 동화 5, 회의와 고뇌 청솔고개 나이가 들어가면서 지난날의 감성이나 감동이 자꾸 사라진다. 이 때문에 자꾸 불행해지는 느낌이 든다. 치열한 삶의 의미가 희미해져 간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과는 다르다. 좋은 마음이 다 상실되어 가는 것이다. 존재감이 약해지고 있다. 회의와 고뇌가 없는 삶은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게 아니다. 멸실과 죽음으로 가는 길이다. 특히 자연의 변화에 대해서, 여행이나 가족이나 일상에 대해서 지금까지 지녀왔던 감흥이 자꾸 줄어들까 봐 불안하다. 그래서 지난 날 내 마음의 행로를 다시 들여다본다. 다음은 내 젊은 시절 가을 날 한 때, 그 어지러운 마음에 대하여, 아주 치열하고 어찌보면 자의식 과잉 기록이다. 들여다보기 부끄럽기도 하고 스스로가 가여워진다. 그래도 그때로 한번..

마음의 밭 2020.09.17

‘빗속을 둘이서’/연민의 정을 느끼고 측은지심을 품는 게 사는 길이다

‘빗속을 둘이서’ 청솔고개 “너의 맘 깊은 곳에 하고 싶은 말 있으면 고개 들어 나를 보고 살며시 얘기 하렴 정녕 말을 못하리라 마음 깊이 새겼다면 오고가는 눈빛으로 나에게 전해주렴 이 빗속을 걸어갈까요 둘이서 말없이 갈까요 아무도 없는 여기서 저 돌담 끝까지 다정스런 너와 내가 손잡고 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 [출처, '금과 은'의 노래 '빗속을 둘이서' 가사에서] 가을비가 이어서 내리니 무연히 쓸쓸해진다. ‘너와 내가 손잡고’ ‘다정스런 둘이’ 함께 ‘저 돌담 끝’까지 가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정감이 절절하게 울려펴진다. 저 돌담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딱히 뭐가 있어서라기보다 그냥 가보는 것이리다. 그렇다. 삶이란 이처럼 쓸쓸할 때, 특히 가을비 내리는 날이면 그냥 둘이서 말없이 같이 가보는 ..

마음의 밭 2020.09.16

(詩) 古木頌/내 병든 영혼을 쓰다듬는 생명소

古木頌 청솔고개 당신 앞에서면 문득 나는 터질 것만 같은 울음으로 울먹이는 가여운 아이가 됩니다 당신은 연둣빛 넓은 잎을 서걱입니다 밤새워 토닥이는 장마 비에 나는 통곡하는 심사로 당신을 지킵니다 그것은 바로 天上에서나 울리는 태고의 말씀 우주의 울림 내 병든 영혼을 쓰다듬는 생명소입니다 지금은 참 호젓한 나만의 시간이다. 도서관 서재에서 동쪽 창을 내다보면 아득한 단애가 마치 태고의 정적미를 자아낸다. 하늘가에 자란 소나무 그 너머에는 푸른 영일만이 이 가을비에 젖어 있겠지. 오늘은 수업이 없어 종일 음악 듣고 책 공급하고 교재연구하면서, 신동아 기사 읽으면서 보냈다. 참으로 오랜만에 허여된 자유로운 시간과 공간. 참으로 많이 절망하고 한숨 쉬고 가슴 졸이며 보내온 그간의 세월이 아니었던가? 이제 나의..

(詩) 마른 호수/마른 풀 내음으로 가득 찼고

마른 호수 청솔고개 그해 가을 마른 호숫가에서 고독한 이가 서성이는데 호수엔 드러난 붉은 흙만 가득하고 한 방울의 물밖에 가을은 그녀의 흩날리는 스카프처럼 다가와서 고추잠자리 날음으로 소리 없이 가버리는 것 가을은 마음 없는 아이가 창백한 들국화 떨기떨기 사이로 은 백양처럼 화사한 미소를 허락하는 것 마른 호수엔 마른 풀 내음으로 가득 찼고 언덕에서 불어오는 한 점의 바람 가을을 날린다 호수는 내 안처럼 말라 비었고 슬퍼도 슬퍼도 한 방울 눈물도 없는 호수 마른 호수 [1977. 9. 7. 오후 진중 호변에서 노래함] 2020. 9. 14.

(詩) 들국화는 피었는데/한 떨기 슬픔으로 피어오르는가

들국화는 피었는데 청솔고개 영아 너는 듣는가 그해 가을 이루지 못한 나의 사랑이야기를 오늘도 해는 떠오르고 송이송이 구름은 솜처럼 피어나는데 나의 사랑은 한 점 바람에 옥색 들국화로 피어난다 길은 멀어 하늘가에 노을처럼 그리움이 모이고 옥빛 영혼은 안개처럼 흩어진다 이윽고 별빛이 눈발로 내리는 밤 나의 가여운 영혼아 어느 거친 산야에서 한 떨기 슬픔으로 피어오르는가 영혼은 어디메서 마른 은하의 강변에서 호올 호올 눈 내리는 언덕 오솔길에서 왔는가 머물 곳이 없고 언제나 헤매는 신세 내 사랑은 눈보라에 시달려도 한 떨기 꽃으로 피어나고 영아 들국화는 피었는데 듣는가 나의 사랑이 꽃이 되어 꽃잎으로 흐르는 얘기를 [1977. 9. 7 오후 진중 호변에서 노래함] 2020. 9. 13.

(詩) 蓮花/무연의 눈물은 흐르는가

蓮花 청솔고개 험한 세상 살아가는 歷程에서 피로한 내 영혼 뉘일 곳 없어 덧없는 서성임만 길나그네처럼 가없이 가없이 어느 일몰의 순간 떠도는 영혼은 은 백양이 눈부시는 갈잎의 호수 언덕받이에서 한 송이 떠서 흐르는 白蓮 꽃봉오리에 사뿐히 내려 앉아 쉬일까 진홍의 노을이 머물러 한 하늘이 다시 열리고 꽃잎처럼 별이 지고 무연의 눈물은 흐르는가 깊이도 모를 만큼 심연에서 돋아난 한 송이 함초롬한 生命 白蓮花 억겁 전에 인연하여 한 알 좁쌀 같은 씨앗이 잔설 스친 봄날 새벽에 그 입김으로 날려 와 거센 물결에 휩쓸리고 껍질 깨지는 아픔으로 인고하나니 싹은 트고 발을 내리고 마침내 눈물로 맺힌 꽃봉오리의 반개한 미소에 나그네의 눈길이 머무는데 마음 없는 소녀 가슴마냥 접어 두었던 白蓮花 잎 함박웃음 펴는 날 [..